[한국원자력신문 특별기획 ‘전문가 6人 서면좌담회’]
국내 전력산업계 ‘KEPIC 소중한 유산’ 이견 없이 동의
지속적인 보급 통해 타산업계부터 中企까지 저변 확대

“우리 손으로 직접 발전설비를 만들어 냅시다.”
1980년대 후반 당시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한 국내 전력설비에는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의 표준이 적용됐었다. 이는 언어상 문제, 다른 나라의 제도 활용에 따른 불합리성과 과다한 비용의 해외 지출 등 문제를 야기 시켰으며 기술자립과 국제경쟁력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됐다. 결국 우리만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기술기준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전력산업계에도 대들보 구실을 하는 단체표준이 하나 있다. 바로 전력산업기술기준(Korea Electric Power Industry Code, KEPIC)이다. KEPIC은 전력설비의 재료, 설계, 제작, 시공, 시험, 검사, 운전 및 보수 등에 필요한 기술 및 제도적인 요건을 집대성한 전력산업계 단체표준이다. 1987년 기술독립의 필요성에 의해 개발된 KEPIC은 국내의 많은 전력설비에 적용되며 기자재 품질향상 및 전력설비 안정성에 큰 기여를 해왔다.
특히 국내 원전수출의 효시인 UAE 원전 건설에 KEPIC이 전면 적용됨에 따라 KEPIC의 국제적 확산을 위한 기반이 마련됐고, 시장 지배력이 강한 사실상국제표준(ASME)에 적극 대응할 만큼의 위치에 올랐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해외 전력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도록 KEPIC이 다루는 분야에 대해 활용성이 높은 표준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기술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이 KEPIC 인증에 대한 부담과 거부감을 해소시키고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지원방안도 숙제로 남아있다.
이에 한국원자력신문은 오는 9월 1일~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2015 KEPIC-Week’ 개최를 맞아 KEPIC의 지난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더불어 KEPIC의 바람직한 발전방향 등을 논의하는 <전문가 서면좌담회>를 진행했다.
이번 서면좌담회는 ▲김범수 한국수력원자력 원전품질검증센터장 ▲성기호 성일에스아이엠(SIM) 부장 ▲손영호재료연구소 원자력공인검사단 단장 ▲양성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품질평가실 박사 ▲이동수 두산중공업 품질보증팀 상무 ▲이철우 한국전력기술 품질보증팀 처장(가나다 순) 등 6명의 패널들에게 6가지 일괄질문을 하고 이메일을 통해 답변을 받아 정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음을 밝혀둔다. <편집자 주>  

김범수=1995년도에 만든 KEPIC 심벌은 원자력잠수함에 KEPIC을 탑재한 모양을 그린 것으로 국가와 산업계를 위하여 무궁무진하게 미래를 향해 뻗어 나가라는 의미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원자력잠수함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6개국만 보유하고 있으며 음식이 제공되는 한 거의 무제한 시간의 잠항을 할 수 있다. 그야말로 기술적으로나 화력적으로 무적함대인 것이다. 우선적으로 KEPIC을 전력산업계 뿐만 아니라 일반산업계의 각 종 플랜트에도 사용해야 한다. 또한 그동안 각 국내 산업별로 KEPIC을 참고로 기준을 개발하려 하는데 이는 국가적인 낭비이며, KEPIC과 내용 차이가 나면 제작사 등 산업계 혼돈이 가중되어 경제성과 경쟁력이 떨어 질 것이다. 미국 원전의 경우를 보면, 원자력 코드에 각 산업계의 기술기준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KEPIC에서는 해외 원전코드 및 일반산업계 코드를 다양하게 접목하여 개발했기 때문에 타 일반산업분야에서 KEPIC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단시간 내에 한국 전반에 걸쳐 산업계 보호 및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해외 원전뿐만 아니라 해외 일반산업 프로젝트에도 KEPIC을 적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국가 및 산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전기협회 또는 KEPIC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 및 산업계 차원에서 누구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할 때이다.

성기호=미국은 원전건설을 중단한지가 30년 이상으로 최근 개발된 기술수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사에서 개발된 소반경 벤드 또한 30년 전 기술이 반영된 기술요건에는 벤딩 반경의 규제와 벤딩 전 두께가 과도하게 반영돼 신규원전에 적용할 수 없는 요건이었지만 최신기술을 반영해 ASME 코드를 개정한 사례가 있다.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적용 할 수 있는 제도가 활성화 되지 않는다면 신기술 개발의욕이 저하돼 업계를 선도할 수 없고 한국형 원전 수출 경쟁력 또한 확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기업의 개선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와 신기술의 기술요건 반영을 위한 위원회 개최를 정례화해 실용적인 기술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손영호=KEPIC이 타 플랜트산업에 확대 적용될 수도 있겠지만 타 산업분야의 관계 법령 및 규제, 환경 등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전력산업에 더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 가동 중인 원전의 노후화 및 경년열화로 인한 주요기기의 보수/교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지속적인 원전의 안전성 확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보수/교체 활동은 신규 원전의 제작 및 설치 보다 더 많은 제약조건을 갖고 있으며, 특수한 기술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보수/교체 조직에 대한 인증제도(NR 제도)가 운영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가동 원전의 안전성 및 보수/교체 활동에 대한 신뢰성 향상을 위해서는 NR제도가 운영돼야 한다. KEPIC이 민간단체표준이기는 하지만 특수한 일부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공적인 성격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KEPIC이 살아있는 표준으로서 한 단계 더 진화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개선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제도화하려는 노력과 신기술에 대한 R&D 결과를 기술기준에 반영하려는 노력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현재 연말부터 KEPIC 표준용접절차시방서 및 미지정재료에 대한 등가표개발에 대한 연구과제가 착수됐고 이에 대한 결과를 KEPIC에 반영해 산업계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더 나아가 ASME 등재 추진도 가능하다고 본다. 발전산업분야의 국가 기술개발과제에 KEPIC이 R&D 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한다면 기술기준에 최적화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 가능하다. R&D 결과의 기술기준 반영시기 단축, 결과물의 활용성 증대 및 기술 선점을 가능하게 하는 큰 장점을 갖고 있으므로, KEPIC도 국가R&D과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양성호=그 가능성을 달리 보고 있다. MDEP(다국간설계평가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경험을 언급하면서 2007년 MDEP 참여국이 10개국일 때 각국은 원자력 코드를 보유하였거나 미국코드를 준용하고 있었는데, 당시 인증제도가 있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뿐이었다. 현재 미국의 인증제도는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반면 원자력 부품산업은 글로벌화한지 오래됐다. 따라서 아무리 자국의 독자적인 코드가 잘 개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부품을 자국에서 조달하지 못하는 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인증제도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는 참조기준과 동일한 수준의 코드내용의 유지가 독자적인 코드제정보다는 현실적이며, 따라서 코드 조화에 적극 동참하여 동등한 코드로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동수=지난 6월 12일 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를 2017년 6월 영구정지(폐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원전 해체 기술을 원천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는 수명이 다해 가동을 중지한 원전이 약 155기(6월 기준)에 이르며, 이 중 해체된 원전은 19기이고 나머지는 향후 해체가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의 원전 영구 정지 기술은 선진국의 약 70% 정도 수준으로 파악되며, 특히 고리원전 방식인 가압경수로(PWR) 해체 기술을 확보한 곳은 미국이 유일한 상황(총 19기 중 PWR 방식이 7기)이다. 이렇듯 향후 원전 해체 시장은 날이 갈수록 그 규모가 성장할 기대되며 그 중요성 또한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원전 해체 기술을 조속히 확보하고 안전성이 뒷받침되어 고리 1호기를 해체를 성공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장의 기반을 다지는 초석이 될 것이므로 대한민국 독자 기술을 바탕으로 원전 해체 분야에 대한 기술기준을 수립하여 KEPIC에 반영 및 적용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KEPIC 코드의 세계화를 위해서 기존 분야에 대해 산업계 Needs를 반영한 기술기준의 보완과 개발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UAE 원전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 원전 사업 중 기존의 해외 표준(ASME, IBR, GS-R-3 등) 적용이 결정되지 않은 국가에 대해 KEPIC 에 대한 사전 홍보를 통해 다양한 국가의 원전 건설에 KEPIC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철우=KEPIC은 국내원전은 물론 한국형원전의 수출을 위한 기술적 첨병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UAE 원전수출 경험을 바탕으로 KEPIC의 국제무대 진출을 본격화해야 할 시점이다. UAE 원전사업 수주 및 기타 지역 사업개발 경험에 비추어 몇 가지 KEPIC의 진화를 제안하자면 첫째는 원전 기술규격요건으로 채택이 확대되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술기준 적용을 위한 KEPIC의 가이드라인 또는 대체 기술기준을 개발해야 한다. UAE 사업 수행 시 IAEA GS-R-3 적용에 힘겨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둘째는 KEPIC Electrical System 기술기준인 KEPIC-E가 미국의 IEEE에 기반하고 있는데 국제표준은 IEC의 기술기준체계로 옮겨가는 추세인데 이에 대한 대응방안이 조속히 수립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KEPIC 개발 및 적용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인력풀을 구축하고 이를 활용하며 또한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적 기술교육의 확대를 제안한다. 이것이 KEPIC을 정착시키고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김소연 기자=1980년대 후반 KEPIC 개발 초기에는 산업계의 해외표준 선호와 새로운 시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유로 ‘우리만의 기준’을 개발하는데 회의적이었다. 그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려 본다면.
김범수 센터장=KEPIC 출범은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전력기술을 중심으로 국내 고유 기술기준의 필요성이 인식되어 1987년부터 원자력분야를 개발했고 전력산업 전반으로 개발범위를 확대하기로 하고 명칭을 전력산업 기술기준(KEPIC)으로 정했다. 아울러 1995년도에 전기협회가 기술기준 전담기구로 선정됨에 따라 지금까지 전력산업에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기준을 부단한 노력으로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원자력 및 화력발전소를 포함한 전력산업 전반에 KEPIC이 명실상부한 적용 기술기준으로 자리매김을 해 왔으며, 이에 따라 해외 원전인 UAE 원전 건설, 시운전 및 운영업무를 한국이 주도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성기호 부장=시대나 상황과는 상관없이 ‘변화’라는 것은 안정된 ‘현재’에 대비돼 성공이 확실하지 않다면 회의적인 시각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전의 경험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원전산업은 이런 측면에서 현재도 보수적이며 어쩌면 원전안전성을 위해 필요한 공감대일 수 있다. 하지만 기술자립이라는 대명제 앞에 기술요건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할 기술자립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며, 현재 원전산업의 성공적인 성장을 있게 한 의미있는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손영호 단장=기술기준 또는 표준의 개발은 설계, 제조, 시험 및 검사 등 기술적인 부분과 품질보증, 자격인증 등 제도적인 부분을 포함하여 발전산업 전반에서 요구되는 기술력과 전문가가 확보된 상태이어야 가능하며, 기준 또는 표준에서 규정하고 있는 요건의 기술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지식 또한 확보 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해외표준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다시 말해 기술자립이 어느 정도 완성된 시기라기보다는 해외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기술을 벤치마킹하는 시기였으며, 해외표준의 적용에 익숙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해외표준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만의 기준’ 개발과 적용은 산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우리만의 기준’ 개발에 회의적인 이유는 당시 우리의 기술수준과 전문가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고 또한 발전 산업계의 보수성이 워낙 강해서 새로운 시도 또는 변화에 대한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양성호 박사=당시를 돌이켜 보면 새로운 시도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기 보다는 우리만의 기준을 개발해 원자력산업에 적용하는데 대한 두려움이 앞섰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우리는 관련 산업의 기술수준이 원전 선전국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고 미국과 프랑스 코드를 준용한 경험만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프랑스처럼 참조기준을 글자그대로 참조만 하여 독자적인 형식의 코드를 개발하는 것도 고려 대상이었지만 결국 학제와 법제, 그리고 문화의 차이 때문에 개인 및 업체 인증 제도를 포함하는 일반요건만 그렇게 하고 설계코드는 참조기준과 동일하게 번역했는데 그 때의 그러한 결정은 ‘정말 잘 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원자력 부품의 글로벌화를 미리 예견하였던 것처럼.

이동수 상무=KEPIC 개발 초기에는 산업계의 외국표준 선호,기존 관행에 안주하려는 경향, 새로운 시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분위기로 인해 국내 기준을 개발하는데 회의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KEPIC이 개발되어 적용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설계 및 문서의 개정이 수반되므로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관계기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한수원과 전기협회의 KEPIC 핵심멤버들은 지금의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등 정부를 포함하여 원자력산업계를 설득하여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이에 따라 1996년도부터 OPR1000 노형인 울진 5ㆍ6호기 건설에 최초 적용을 시작하여 신고리 1ㆍ2호기에 KEPIC을 전면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철우 처장=원전 기술자립과 표준화라는 목적 하에 KEPIC을 개발하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당시 국내 원전산업을 독점하는 한국전력공사의 사내표준화 일환으로 치부되고, 미국은 물론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 원전선진국의 기술기준 중에서 특정 미국의 기술기준을 모체로 한다고 하니 당시 정치/경제상황에서의 회의론 대두는 당연히 설득해야만 하는 큰 과제였음이 분명하다. 전기협회를 KEPIC 개발 및 유지기관으로 지정하고 국내 한국형 원전개발/상품화 정책과 Power System분야의 사실상 국제표준인 미국 ASME Boiler and Pressure Vessel Code 선택의 불가피성 설파가 회의적 분위기를 극복하는데 유효했다고 판단된다. 또 KEPIC 개발 원칙에 따라 국산화 되었거나 국산화가 임박한 기자재의 기술기준을 우선적으로 개발하여 원전 기자재의 국산화율을 점차적으로 높인 것이 전력산업계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소연=지금까지 KEPIC 적용으로 경제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기술자립이라는 측면에서 더 큰 시너지를 발휘했다고 평가된다. 원전 건설/운영 및 기자재 제작 현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KEPIC 적용 사례는 무엇이며, KEPIC의 신규 적용에 따른 어려움은 없었나.
김범수=일부 시각에서는 KEPIC을 단순히 영문을 번역한 기술기준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고유 기술기준인 KEPIC은 국가와 산업계를 기술적으로 보호하고, 국제 경쟁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KEPIC은 기술표준으로써 국제적인 기술기준들과 동일하거나 유사하게 개발, 관리돼야 하기 때문에 미국 또는 유럽의 기술기준을 우선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바탕으로 국내의 기술기준 운영경험을 피드백해 우리나라의 고유 기술기준을 만들어 나가야 실질적인 경쟁력을 갖는 것이다. 최근에 발생한 재료 코드 불일치 건도 KEPIC에 등재되지 않아 사용에 불편함을 느낀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실제 사용 경험을 KEPIC에 피드백 했더라면 우리 고유 기술기준을 향상시키면서도 산업계 편리성을 충분히 도모할 수 있었으나 아직도 우리는 KEPIC의 위력과 편리성을 모르는 것 같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백치인 것 같다.

성기호=신한울 1‧2호기에 벤딩 배관을 적용할 때의 사례가 떠오른다. 엘보우와 동일한 반경을 가진 벤드의 제작요건이 불분명하여 기술요건에 대한 해석서 수급이 필요해 KEPIC에 요청하여 긴급하게 위원회 소집 후 처리해 ‘소반경 벤딩배관’을 적용했다. 만약 ASME에 해석서를 요청했다면 처리기간이 최소한 3개월 길게는 1년까지 소요돼 개발된 신기술을 신한울 1‧2호기에 적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안에 대한 적절하고 긴급한 조치는 국내 기술기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실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KEPIC의 적용은 어려움보다는 오히려 활용성과 접근성이 뛰어나 적용성이 뛰어나다. KEPIC은 영문인 해외기술기준보다 의미가 명확해 오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줄일 수 있으며, 질의에 대한 대응이 해외기술기준에 비교하여 상당히 효율적이다.

손영호=국내 현장에서 KEPIC을 적용함에 따른 문제점들이 피드백이 되어 후속판 및 추록에 반영됨으로써 KEPIC의 품질이 많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KEPIC이 개발되어 원전현장에 적용되기 전과 후는 기술자립의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KEPIC이 ASME를 모태로 개발되어 일부 제도적인 요건을 제외한 기술적 요건이 ASME와 동일하기 때문에 KEPIC의 신규 적용에 따른 어려움은 크게 없었다. KEPIC이 적용되기 전 ASME 기술기준을 적용할 때에는 일부 기술기준 전문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현장 기술자들이 기술기준을 보기 보다는 절차서나 도제식으로 전해 받은 경험을 통해 업무를 수행해 기술기준 요건의 이해도 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를 다소 겪었으나 KEPIC이 적용된 이후에는 KEPIC을 보면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많은 현장 기술자들의 기술기준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제고되어 원전의 품질이 제고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가동중 원전에 대한 기술기준으로 KEPIC MI가 적용되면서부터 ASME Sec.III 품목에 대한 보수/교체활동을 KEPIC MN 품목으로 대체가 가능해져 기자재수급에 많은 도움이 됐다.

양성호=어차피 원어로 된 코드를 산업계에서 사용하여 왔기 때문에 각자가 나름의 해석을 하고 있는 측면이 있었고 저는 해석의 평준화를 위해 당시 이곳저곳으로 코드 강의를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던 차에 KEPIC이 탄생함에 따라 큰 시너지를 발휘하였던 것 같다. 저는 당시 그것을 체감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증제도는 독자적으로 운용하게 되었는데 당시 원자력법에 따른 생산업허가를 민간 주도의 KEPIC 인증으로 전환하는데 대해 정부의 실무자들 간에도 찬반이 엇갈렸다. 그러나 대세는 코드의 국산화이었고 KEPIC 인증제도가 그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허가가 민간인증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증을 받는 업체 입장에서는 KEPIC 인증을 받는 것이 이중규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반발이 심했다. 결국 생산업허가업체에 대해서는 취득일 기준 3년간(당시 생산업허가는 법적 유효기간이 없었음)은 KEPIC 인증을 유예했던 기억이 있다.

이동수=두산중공업은 국내 유일의 원자력발전소용 핵심 기자재 제작 전문회사이며, 원자로, 증기발생기를 비롯한 원자로설비와 터빈‧발전기등 원자력 주요기자재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전 계측제어설비(MMIS) 및 원자로 냉각 펌프(RCP)에 대해서도 개발을 완료하여 100%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지난 7월에 신한울 1‧2호기에 납품을 완료했다. 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 Man-Machine Interface System)은 인간의 두뇌와 신경에 비유되는 핵심 기술로, 원전 운전을 감시, 보호 및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두산중공업은 관련 코우드 및 표준(KEPIC EN 및 IEEE)을 바탕으로 미국, 프랑스, 일본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MMIS 개발에 성공해 원전계측분야의 우월한 기술능력과 품질로 선진국의 동종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개발 과정에서 원전계측제어시스템의 KEPIC EN 적용 및 국산화를 위해 2년 여 동안 10만 페이지 분량의 절차서를 만들었고 시스템설계에서부터 검증, 제작, 시험에 이르는 전 과정을 일괄 수행하였던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향후 원전계측제어분야의 선진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보안과 인간공학과의 융합을 추구하여 좀 더 안전화된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개선과 국산화 개발을 지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철우=1996년 1월 산업자원부로부터 KEPIC이 전기사업법에 의한 기술기준으로 고시된 후 울진 5‧6호기 건설 시 최초로 적용되는 시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전기술은 원전 구조물, 계통, 기기의 설계 및 기자재 구매용 설계시방 작성 시 원전수출국의 기술기준을 모체로 한 회사 표준기술문서를 KEPIC으로 전환하는 선봉대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먼저 과거 기술기준을 KEPIC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우선이었다. 문제는 KEPIC의 번호체계 변환으로 인해 해당 KEPIC 조항을 찾아내고 KEPIC 기술적사항의 번안 상 문제점은 없는지 검토하고, 해당 조항에서 인용한 타 기술기준은 발행되었는지 확인하는 등 KEPIC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큰 노고를 요구했다. 또 KEPIC의 자격인증제도 요건에 따라 KEPIC 제조자 및 설계자 자격인증을 취득하는 데에도 선행 사례가 없기에 국내 사업주 계약관행이 KEPIC 제도와 상이한 경우 처리방법, 사업주의 품질보증요건과의 상충사항에 대한 조치방법, 품질보증계획의 이행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시범사업의 수행범위 결정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한 수 있도록 한 대한전기협회의 협력에 감사드린다.

김소연=최근 몇 년 사이 화력발전설비의 KEPIC 적용범위가 주기기 뿐만 아니라 유지정비 및 친환경 분야 등으로 다변화(트렌드에 맞는) 된 전력시장에 맞게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KEPIC의 다양한 분야 적용 확대만큼 중요한 점은 현장의 KEPIC 전문가 양성을 통한 발전품질 강화로 생각되는데.
성기호=화력발전설비의 운전환경은 원전보다 오히려 가혹해 기술기준의 적용과 활용성 측면과 전력기술기준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설비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KEPIC의 적용확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원전이외의 분야에서는 KEPIC 이라는 단어가 아직 생소한 것도 사실이어서 원자력산업 이외의 KEPIC 전문가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KEPIC이 원전이외에도 적용하여 저변이 확대하여 인력풀을 늘이는 것도 방법이다. 저변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활용성이 커야하고 활용성을 높이기위해서는 규제관점에서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준수하기만 하면 품질을 만족할 수 있고 생산성도 고려되는 합리적인 전력기술기준이 돼야 한다.

손영호=원자력발전이나 화력발전용 설비의 설계기술은 각 분야의 특성에 맞게 확보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설계가 아무리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기기의 제작, 설치 및 유지정비과정에서 기술기준 불일치사항이 발생하면 결국 발전 품질의 저하를 초래할 수 있으니 현장 엔지니어의 기술기준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압력용기, 펌프, 밸브 및 배관류 등과 같은 기기의 제작, 설치 및 유지정비에 대한 요소기술(재료, 용접, 비파괴검사 등)과 검사철학은 두 분야에서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기술기준 및 분야별 실무과정 등 기 구축된 원자력 분야의 교육훈련프로그램을 응용해 화력발전설비에 활용한다면 KEPIC 전문가 양성 및 역량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현장의 전문가들이 기술기준 제개정 등과 관련한 KEPIC의 기술 분야별 각종 위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도 병행돼야 함은 물론 현장 기술자 각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각 기업의 KEPIC 전문가 양성에 대한 의지도 매우 중요하다.

양성호=코드는 그것을 이해하고 준수하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드의 이해는 이를 제정하고 관리하는 조직과 이를 이행하는 조직 간의 소통과 협력이 없이는 어렵다. 우리는 여건 상 아직까지 1년에 한 번 KEPIC Week를 통해서 소통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욱 자주 Week 행사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조만간에 반기별로, 더 나아가서는 분기별로 말이다. 물론 1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행사에 비해 그 규모는 작을지라도 그때그때 현안을 해소하는 측면에서는 자주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동수=원자력 KEPIC 분야의 경우 전기협회를 비롯해 각 공인검사기관, 발전사업자 및 두산중공업과 같은 주요 기자재 제작업체들이 자체 인원뿐만 아니라 관련 협력사의 임직원까지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운용함에 따라 해당 인력들이 다년 간 충분한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여 원자력 사업에 KEPIC 코드가 적용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KEPIC의 화력발전 분야의 경우도 전기협회, 발전사업자 및 주요 제작업체를 중심으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수립하여 기술 및 품질 분야와 관련된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관련인력들의 역량 향상과 기술 개발이 선행돼야 KEPIC 조기 적용이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철우=KEPIC은 표준으로서의 특성상 관련 기업 및 종사자의 KEPIC 적용과 이를 통한 사내 표준화 노력 없이는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 없다. 기술기준의 양적확대도 중요하지만 기술기준 적용 확대를 통한 기업 경쟁력 제고가 궁극적 목표여야 한다고 판단된다. 한전기술의 사례를 언급하면 KEPIC 적용 활성화 및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통한 원전수출 확대를 위해 ‘Code 전문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Code 전문가는 KEPIC 뿐만 아니라 해당 참조 기술기준의 개정동향 파악, 개정사항 전파, 원전사업 수행에 필요한 특정 기술기준의 개정발의, 주관기관의 위원회 위원활동 확대 등의 책무를 부여받고 대신 이에 소요되는 시간 및 비용에 대한 회사지원을 받게 된다. 이러한 노력도 전문가 양성을 위한 기업 자체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된다.

김소연= 2012년 원자력산업계 비리스캔들 이후로 원전 기자재의 품질제고(이는 전력산업계 모두에 해당됨)를 위한 KEPIC의 역할과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이에 원자력산업계는 “KEPIC 자격인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자발적 반성이 나오고 있지만, 반면 “제도 강화만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산업계 전반의 역량 향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업계의 역량향상 역할도 함께 하는 KEPIC 자격인증 제도가 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성기호=중소기업의 경우 인력풀이 상대적으로 넓지 않아서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자격인증’ 심사 시 기업의 일부 책임자만 심사에 참여하여 진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문가의 부재 시 품질이 약화 될 수밖에 없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격인증 심사제도’를 인증을 취득하는 통과의례만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증을 취득하기 위한 인력교육으로도 활용해야 한다. 인증 심사 전 의무적인 교육이수항목을 추가하고 인증 심사 시 책임자가 아닌 실무자 위주로 심사를 진행하여 역량을 평가한다면 기업과 원전산업계의 역량향상도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것으로 생각된다.

손영호=기존의 KEPIC 자격인증 제도가 미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올바르게 이행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잘 몰라서 못 지키는 것과 잘 알면서도 안 지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전자는 업체의 역량강화를 통하여 개선할 수 있지만 후자는 있어서는 안 되는 사안이며, 의식의 개혁이 없이는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산업계의 역량향상과 관련해서 KEPIC처에서 품질보증 관련 교육과정을 기술 분야별로 구분하고 강좌 수를 확대하여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육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역량향상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인증심사와 관련해 심사의 정도가 심사원과 업체에 따라 달라지지 않도록 균질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KEPIC처에서 인증심사에 대한 지침서를 좀 더 자세하게 수립해 심사원과 신청업체에 제공한다면 균질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KEPIC 인증업체에 대한 사후관리는 좀 더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인증업체의 경우, 최초 인증 취득 후 매 3년마다 갱신 심사를 받게 되는데, 기기 제조자 인증서를 보유한 인증업체의 경우에는 공인검사를 수검하며 매년 감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사후관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재료업체의 경우에는 공인검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주기적인 감사나 모니터링 등을 통한 보다 적극적인 사후관리 방안이 수립돼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양성호=규제전문기관에 몸담고 있는 기술자로서 항상 KEPIC 자격인증제도의 강화를 역설해왔지만 인증이 3년 주기이기 때문에 인증제도 강화는 오히려 진입장벽으로 인식돼 한시적일 뿐이라는 한계를 실감했다. 인증제도가 과거에는 국내 원전산업육성을 위한 제도로 이용됐으나 이제는 원자력산업계에 안전문화를 체질화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비리방지와 부품 품질향상이 달성하는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KEPIC 인증 심사결과를 합격과 불합격으로만 결정하지 말고 점수 또는 등급제로 운용해 공인검사기관이나 협회의 감사 주기를 결정하는 인자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인증취득 점수(또는 등급)는 대외비화해 업체간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이동수= KEPIC 인증 취득 업체가 KEPIC 적용 사업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주요 업종별 코드 적용 성공/실패 사례, 다양한 이슈사항에 대한 해결 사례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수립/운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참고해 KEPIC 적용 과정에서의 이슈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관련인원의 역량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돼 KEPIC 적용이 활성화 될 것이다. 또한 이와 병행해 KEPIC 코드를 쉽게 검색하여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도 수립돼야 한다. ASME 의 경우는 동시 접근 허용인원이 제한되는 전자문서로 된 코드를 발행해 관련 업무 수행 인원이 쉽게 코드를 검색,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 있다. 이를 참조해 KEPIC 관련업무 수행인원이 코드 적용역량 향상의 기반을 강화해주면 관련인원의 KEPIC 적용 역량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철우=KEPIC의 조직 및 개인 인증제도 중 개인 인증제도인 KEPIC QAR의 등록기술자 자격인증제도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원전비리 이후 최근에는 KEPIC 재료 적용 문제점들이 다수 대두되고 있다. 원전의 압력경계 재료는 기술기준에서 허용한 재료만을 선택해 사용해야하며, 이는 설계시방서 및 설계보고서의 인증을 담당하는 등록기술자에 의해 확인돼야 한다. 전기협회에서 자격부여한 제3의 등록기술자에 의해 설계시방서 및 설계보고서가 인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문제는 지속되는가. 또 등록기술자의 자격인정 후 유지보수교육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아울러 등록기술자가 본 인증업무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할당 받지 못한 것은 아닌가. 등록기술자가 제기한 의견이 묵살되는 환경은 없었는가” 등 등록기술자의 기술능력 제고 및 운영에 대한 대한전기협회, 사업주, 고용주 등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김소연=KEPIC 인증을 취득하려는 국내 중소기업들의 경쟁은 뜨겁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열악한 사업환경에서 KEPIC의 문턱은 여전히 높고, 인증을 취득하는 것 보다 이를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실정이다. 중소기업이 KEPIC에 대한 부담과 거부감을 해소시키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발전사업자를 포함해 제조 및 시공사(대기업 발주자)의 지원방안에 대해 제언한다면.
성기호=충분한 자원이 확보되고 경험과 능력을 갖춘 업체라면 인증취득이나 인증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협회에서 도움을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찾아가는 서비스처럼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상담하고 소개하는 역할 등이 조금은 아쉽다. 또한 중소기업진흥청이나 각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테크노파크의 지원제도등도 적극 활용하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지만 아직은 일부 기업만 혜택을 받고 있어 관련 홍보도 필요해 보인다. 현재 협회에서 ‘e-BOOK 시스템’으로 기술기준이 실시간 열람 가능하도록 개발 중으로 알고 있는데 조기에 완료해 실무에 바로 사용할 수 있다면 인증을 준비하는 업체 또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손영호=KEPIC 인증 취득은 원전 안전등급 기자재를 납품하기 위한 기본 요건이다. 인증 신청업체는 KEPIC 기술기준의 요건을 준수하는 품질시스템계획 또는 품질보증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해당 품목을 제조할 수 있는 이행능력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심사를 통하여 검증을 받고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KEPIC 인증 취득은 중소기업의 영업 전략이나 홍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경쟁업체에서 자격을 취득한다고 해서 경쟁적으로 취득할 필요는 없다. KEPIC에 대한 부담과 거부감이 크다는 것은 결국 인증취득에 소요되는 비용에 대한 부담과 우수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KEPIC 인증을 취득했다는 것은 그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것이고, 하청을 주는 발전사업자나 대기업에서도 품질관리 능력이 뛰어난 우수한 중소기업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결국 최종 제품의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므로 하청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 자문 및 지원과 인증비용의 일부를 지원한다면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양성호=중소기업의 부담은 큰 맘 먹고 투자해서 인증서를 취득하여도 주문을 받지 못하면 기술인력과 품질체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인증취득에 정부의 경제적 지원 제도가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인증 후에는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인증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술적 지원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인증서 취득 후 일정기간동안 원자력 수주가 없어 그 체계를 운용하지 않으면 금방 기술적 능력을 잃어버린 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자력 문호를 개방하여 기술적 능력 있는 업체를 다수 양성하는 것 보다는 소수 정예 업체를 만들어 능력을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민간기업인 제조 및 시공사가 앞장서야 할 일이라고 본다.

이동수=기존의 KEPIC 인증제도와 병행하여 중소업체들이 KEPIC 인증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행할 수 있는 인원 및 조직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중소업체에 대한 지원/육성 정책이 있었으면 한다. 예를 들면 두산중공업의 경우 협력사와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운용하면서 관련 협력사의 KEPIC 인증 취득 지원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또한 직업훈련 컨소시엄사업단을 통해 협력사 인원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제작업체 수준에서 추진하기에는 대상 업체 및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전기협회를 주축으로 발전사업자, 주요 제조업체 등의 역할을 분담해 KEPIC 인증 취득 업체에 대해 코드 교육, 코드 적용 사례 전파, 관련 인원에 대한 교육, 자격부여 지원 등의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정책을 통해 중소업체가 KEPIC 에 대한 충분한 수준의 역량과 경험을 축적 및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중소업체의 KEPIC 코드 활용이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소연=국내 원전수출의 효시인 UAE 바라카 원전 건설에 KEPIC이 전면 적용됨에 따라 KEPIC의 국제적 확산을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 이제는 ASME의 모방단계에서 벗어나 그 동안에 우리만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원전 해체 분야는 물론 다른 플랜트산업에도 확대 적용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새로운 도전으로 진화해야(표준개발)하는 KEPIC에게 숙제를 던진다면.
김범수=1995년도에 만든 KEPIC 심벌은 원자력잠수함에 KEPIC을 탑재한 모양을 그린 것으로 국가와 산업계를 위하여 무궁무진하게 미래를 향해 뻗어 나가라는 의미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원자력잠수함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6개국만 보유하고 있으며 음식이 제공되는 한 거의 무제한 시간의 잠항을 할 수 있다. 그야말로 기술적으로나 화력적으로 무적함대인 것이다. 우선적으로 KEPIC을 전력산업계 뿐만 아니라 일반산업계의 각 종 플랜트에도 사용해야 한다. 또한 그동안 각 국내 산업별로 KEPIC을 참고로 기준을 개발하려 하는데 이는 국가적인 낭비이며, KEPIC과 내용 차이가 나면 제작사 등 산업계 혼돈이 가중되어 경제성과 경쟁력이 떨어 질 것이다. 미국 원전의 경우를 보면, 원자력 코드에 각 산업계의 기술기준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KEPIC에서는 해외 원전코드 및 일반산업계 코드를 다양하게 접목하여 개발했기 때문에 타 일반산업분야에서 KEPIC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단시간 내에 한국 전반에 걸쳐 산업계 보호 및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해외 원전뿐만 아니라 해외 일반산업 프로젝트에도 KEPIC을 적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국가 및 산업계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전기협회 또는 KEPIC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 및 산업계 차원에서 누구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할 때이다.

성기호=미국은 원전건설을 중단한지가 30년 이상으로 최근 개발된 기술수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사에서 개발된 소반경 벤드 또한 30년 전 기술이 반영된 기술요건에는 벤딩 반경의 규제와 벤딩 전 두께가 과도하게 반영돼 신규원전에 적용할 수 없는 요건이었지만 최신기술을 반영해 ASME 코드를 개정한 사례가 있다.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적용 할 수 있는 제도가 활성화 되지 않는다면 신기술 개발의욕이 저하돼 업계를 선도할 수 없고 한국형 원전 수출 경쟁력 또한 확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기업의 개선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와 신기술의 기술요건 반영을 위한 위원회 개최를 정례화해 실용적인 기술기준이 되기를 바란다.

손영호=KEPIC이 타 플랜트산업에 확대 적용될 수도 있겠지만 타 산업분야의 관계 법령 및 규제, 환경 등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전력산업에 더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내 가동 중인 원전의 노후화 및 경년열화로 인한 주요기기의 보수/교체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지속적인 원전의 안전성 확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보수/교체 활동은 신규 원전의 제작 및 설치 보다 더 많은 제약조건을 갖고 있으며, 특수한 기술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보수/교체 조직에 대한 인증제도(NR 제도)가 운영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가동 원전의 안전성 및 보수/교체 활동에 대한 신뢰성 향상을 위해서는 NR제도가 운영돼야 한다. KEPIC이 민간단체표준이기는 하지만 특수한 일부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공적인 성격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KEPIC이 살아있는 표준으로서 한 단계 더 진화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개선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제도화하려는 노력과 신기술에 대한 R&D 결과를 기술기준에 반영하려는 노력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현재 연말부터 KEPIC 표준용접절차시방서 및 미지정재료에 대한 등가표개발에 대한 연구과제가 착수됐고 이에 대한 결과를 KEPIC에 반영해 산업계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더 나아가 ASME 등재 추진도 가능하다고 본다. 발전산업분야의 국가 기술개발과제에 KEPIC이 R&D 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한다면 기술기준에 최적화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 가능하다. R&D 결과의 기술기준 반영시기 단축, 결과물의 활용성 증대 및 기술 선점을 가능하게 하는 큰 장점을 갖고 있으므로, KEPIC도 국가R&D과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양성호=그 가능성을 달리 보고 있다. MDEP(다국간설계평가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경험을 언급하면서 2007년 MDEP 참여국이 10개국일 때 각국은 원자력 코드를 보유하였거나 미국코드를 준용하고 있었는데, 당시 인증제도가 있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뿐이었다. 현재 미국의 인증제도는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반면 원자력 부품산업은 글로벌화한지 오래됐다. 따라서 아무리 자국의 독자적인 코드가 잘 개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부품을 자국에서 조달하지 못하는 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인증제도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는 참조기준과 동일한 수준의 코드내용의 유지가 독자적인 코드제정보다는 현실적이며, 따라서 코드 조화에 적극 동참하여 동등한 코드로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동수=지난 6월 12일 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를 2017년 6월 영구정지(폐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원전 해체 기술을 원천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는 수명이 다해 가동을 중지한 원전이 약 155기(6월 기준)에 이르며, 이 중 해체된 원전은 19기이고 나머지는 향후 해체가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의 원전 영구 정지 기술은 선진국의 약 70% 정도 수준으로 파악되며, 특히 고리원전 방식인 가압경수로(PWR) 해체 기술을 확보한 곳은 미국이 유일한 상황(총 19기 중 PWR 방식이 7기)이다. 이렇듯 향후 원전 해체 시장은 날이 갈수록 그 규모가 성장할 기대되며 그 중요성 또한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원전 해체 기술을 조속히 확보하고 안전성이 뒷받침되어 고리 1호기를 해체를 성공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장의 기반을 다지는 초석이 될 것이므로 대한민국 독자 기술을 바탕으로 원전 해체 분야에 대한 기술기준을 수립하여 KEPIC에 반영 및 적용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KEPIC 코드의 세계화를 위해서 기존 분야에 대해 산업계 Needs를 반영한 기술기준의 보완과 개발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UAE 원전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 원전 사업 중 기존의 해외 표준(ASME, IBR, GS-R-3 등) 적용이 결정되지 않은 국가에 대해 KEPIC 에 대한 사전 홍보를 통해 다양한 국가의 원전 건설에 KEPIC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철우=KEPIC은 국내원전은 물론 한국형원전의 수출을 위한 기술적 첨병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UAE 원전수출 경험을 바탕으로 KEPIC의 국제무대 진출을 본격화해야 할 시점이다. UAE 원전사업 수주 및 기타 지역 사업개발 경험에 비추어 몇 가지 KEPIC의 진화를 제안하자면 첫째는 원전 기술규격요건으로 채택이 확대되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술기준 적용을 위한 KEPIC의 가이드라인 또는 대체 기술기준을 개발해야 한다. UAE 사업 수행 시 IAEA GS-R-3 적용에 힘겨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둘째는 KEPIC Electrical System 기술기준인 KEPIC-E가 미국의 IEEE에 기반하고 있는데 국제표준은 IEC의 기술기준체계로 옮겨가는 추세인데 이에 대한 대응방안이 조속히 수립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KEPIC 개발 및 적용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인력풀을 구축하고 이를 활용하며 또한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적 기술교육의 확대를 제안한다. 이것이 KEPIC을 정착시키고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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