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후쿠시마 원전 사고 5주기, 반성과 성찰Ⅱ
분야별 전문가 6人…원자력계 역할과 향후 방향 제언

인류의 원자력 역사(歷史)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4호기) 사고 이후 최대의 참사로, 생생한 교훈을 기록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한지 5년이 지나고 방사성물질의 영향을 조금씩 관찰할 수 있게 된 현재 상황을 두고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것만큼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오염수 유출이나 토양 방제, 폐기물 처분과 같은 여러 문제들이 남아있어 후쿠시마는 여전히 안심하기는 이른 단계이다. 다만 지나친 걱정도 지나친 안심만큼이나 좋지는 않으니 사고의 영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세계 각국은 기술적인 조치 이전에 안전 기준을 전면 재검토하고 안전규제를 위해 새로운 대안을 내놓고 있으며, ‘자연재해’에서 출발한 사고가 ‘인재’라는 대형사고로 발전한 사실에 근거해 ‘사람중심(원전종사자)의 안전문화’를 고민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5년 간 과거의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어 기존 원전의 안전성을 재검토하고 관리 매뉴얼을 현실적으로 재정립하고 있는 원자력계의 역할과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각 분야별 전문가 6인의 고견을 지면에 담아냈다. <편집자 주>

▲ 신고리원자력발전소 1,2호기 전경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후쿠시마 사고 5년, 새로운 안전개념의 모색=김무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지난 5년은 후쿠시마 사고의 교훈을 국내 원자력산업계 및 규제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과 성찰의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단기조치로 국내 원자력시설의 안전성을 재점검하고 50개의 안전성 증진사항을 도출하였고, 설비보완, 심층연구 등을 순차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또한 중기조치로 월성1호기와 고리1호기에 대한 노후원전 스트레스테스트를 통하여 만년 빈도의 극한 자연재해에 대한 대응능력을 정밀진단 하여 안전개선사항들을 이행토록 조치했으며, 2016년 부터는 가동원전 전체로 확대하여 추진 중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중대사고 법제화를 통해 설계기준초과 등의 사고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는 등 규제체계 전반의 개선을 이루었다.
IAEA와 OECD/NEA 등 국제기구는 지난 5년간 후쿠시마 사고 데이터를 집대성하여 사고의 교훈을 도출하고 각 회원국의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외부사건 대응, 설계기준초과 사건고려, 비상대응 등 설비 및 운영의 측면에서 개선해야 할 사항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 보고서의 기본적인 관점은 후쿠시마 사고는 원자력계가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하다”는 기본가정에 빠져 안전문제를 적시에 개선하지 못한 문화와 제도상의 취약점이라는 것이다. 국제 원자력안전 정책방향을 IAEA 사무총장에 제시하는 국제현인그룹 INSAG(International Nuclear Safety Group)은 후쿠시마 사고의 근본원인을 일본의 안전체계가 효과적이지 못했던 데에서 발생한 제도적 실패(Institutional Failure)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원자력산업계 뿐 아니라 규제기관과 이해관계자 모두가 지속적인 안전개선의 추구를 공통의 목표로 삼고 현재의 제도적 측면의 결함에 대한 문제제기와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안전성 확보 체계를 강화해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를 제도적 심층강화(Institutional Strength in Depth)라고 하는데, 향후 국제 상호검토에서도 각국이 이러한 개념에 따라 원자력안전체계의 효과성을 평가하고 미흡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요구될 전망이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는 후쿠시마 사고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고 실제 규제체계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 해 왔다. 특히 지역주민과 대중 등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규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원전 운영자가 문제점을 스스로 발견하고 근본원인을 파악하여 적극적으로 개선하도록 사업조직의 업무 수행체계를 점검하며, 그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과정 중심의 규제’가 그 중 하나이다. 또한 안전문화 원칙을 제정하고, 향후 이를 기반으로 자체 안전문화를 평가하고 증진해 나갈 계획이다. 제도적 심층강화 개념의 등장은 또 다른 중대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늘 묻고 질문하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원자력 안전체계를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정신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특히 원자력산업계와 규제자는 이해관계자와의 소통과 참여를 통해 안전 최우선의 목표가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개방성과 투명성을 핵심가치로 삼아야 할 것이다.

◆원자력안전 ‘방폐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렸다=송명재 IAEA 국제공동협약 부의장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본의 후쿠시마원전 사고 발생 5주년을 기해 “후쿠시마-기나긴 복구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생생한 비데오 간행물을 내놓았다. 그 비데오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2011년 3월11일. 일본은 거대한 지진의 습격을 받았다. 지진은 무서운 해일을 일으켰고 강력한 파도는 순식간에 후쿠시마시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1만 5천 여 명이 희생되었고 6천명 이상의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지진과 해일은 후쿠시마 제1 원전의 모든 전기를 끊었고 원자로 냉각 장치는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원자로는 과열되었다. 핵연료가 녹아내렸고 수소 가스가 방출되었다. 그리고 연이어 폭발이 일어났다. 방사성물질이 대기로 누출되었고 또 바다로 흘러들어가 10만 명 이상의 주변 주민들이 대피를 하였다. 이 사고는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래 최악의 원전 사고가 되었다.”
일본 정부는 일본 내의 모든 원전 운영을 즉각 중단시켰다. 원전 사고가 다시 한 번 더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지구상의 모든 원전에 대한 안전 점검이 시작되었다. 종전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인재이었다면 이 번 사고는 자연 재해가 인재로 이어지는 또 다른 유형의 사고라고 평가되었다. 다시 말해서 원전의 안전이 설비와 기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사고 발생 후 지난 5년 동안 많은 안전 점검과 조치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른 평가와 자성이 일어났다.
IAEA의 사용후핵연료 및 방사성폐기물 안전에 관한 국제공동협약은 그간의 사고 조치 현황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대처 방안에 대해 지난해 5월 비엔나에서 대 규모 국제회의를 개최하였다. 그 회의에서 안전 소프트웨어의 개선 대책이 논의 되었다.
먼저 사용후핵연료 안전 관리 개념이 바꾸어져야 했다. 특히 사용후핵연료 냉각 계통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계기 및 방사선 감시 장치의 보완도 생각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보관 시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막대한 양의 방사능 오염수를 처리하는 일이다. 게다가 사고 처리 및 복구 시에 발생되는 각종 방사성폐기물의 양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이를 보관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안은 지금까지 생각 못했던 새로운 숙제이다.
사고 복구 시에 발생될 수 있는 막대한 양의 방사성폐기물 처리 처분 대책이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방사능 제염 기술과 방사성폐기물의 부피를 혁신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이 시급하다. 또 비상 대응 체제와 주민과의 소통에 대한 실천적 가능성이 검토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방사성폐기물을 보다 완벽하게 관리하고 대형사고 발생에 대비한 방사성폐기물의 보관 및 처분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원자력의 안전은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해 방사성폐기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

◆원자력 안전의 새 옷을 입다=윤청로 한국수력원자력 품질안전본부장
최근 인공지능 바둑기사 알파고와 인류 최고의 바둑기사 이세돌의 대결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세돌의 전승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알파고의 완승이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진 듯 했고 급속도로 발전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연일 매스컴을 도배했다.
극단적인 기사 중에는 가까운 미래에 인간이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을 것이란 추측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대하여 막연한 불안감만 가지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학기술 발전의 주체가 사람이듯이 발전의 혜택도 결국 사람이 누리게 된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인간의 통제권 아래에서 창조적으로 활용한다면 인공지능은 과거의 수많은 발명품들처럼 인류에게 더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직업병인가. 원자력 산업 현장에서 35년을 몸담아 온 필자에게 알파고와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민들에게 두려움의 존재로 재부각된 원자력발전소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과학기술의 산물인 최첨단 원자력 발전소가 오히려 인류를 최악의 재앙속으로 몰아 넣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쏟아져 나왔다. 후쿠시마의 모습을 실시간 중계로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5년이 지났다. 동일본 대지진이 쓸고 간 후쿠시마 현지는 상처는 컸지만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치유가 진행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 산업계의 안전성을 한층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수원 임직원들도 원전 안전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재정립하는 발판으로 삼았고 자연재해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도록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원전을 만들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먼저 한수원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내 전 원전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고리 원전의 경우 쓰나미에 의한 발전소 침수를 예방하기 위해 해안방벽을 7.5m에서 10m로 증축했고 비상디젤발전기실 등 침수 가능지역에 침수 방지용 방수문 설치를 추진하고 있으며, 방수형 배수펌프를 확보했다.
그리고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및 사용후연료저장조에 비상 냉각수 외부주입 유로를 설치하였고 격납건물손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피동형 수소제거설비 및 격납건물 여과배기설비를 도입 중에 있다. 또한 사고대응에 임하는 요원보호 및 지휘·통제에 필요한 비상대응거점 마련을 추진하는 등 후쿠시마 후속대책을 이행함으로써 원자력 안전성을 한층 더 진일보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안전성 확보를 위한 설비 보강도 중요하지만, 다수 호기를 한 몸처럼 관리할 수 있는 표준화된 통합운영체계 구축도 중요하다. 한수원은 지난해 7월 신월성 2호기의 상업운전 개시를 통해 24개 원전을 운영하는 세계 3번째 규모의 원자력 발전사업자가 됐다. 다수호기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운영하기 위해 원전운영의 주요 프로세스를 표준화했으며, 전원전 24시간 상시감시를 담당하는 발전운영종합상황실도 신설하였다. 이를 통해 국내 원전 안전운영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설비 및 원전 운영체계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졌다 해도 설비를 운영하는 원전 종사자의 사고대응능력과 안전문화에 대한 의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한수원은 발전소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중대사고에 대한 지침서를 추가 보완하였고 중대사고에 대한 교육훈련을 강화함으로써 종사자의 사고대응능력을 향상시켰으며, 안전의식제고 측면에서는 종사자 全생애주기 안전문화 교육체계를 수립하여 신입직원부터 실무자, 관리자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맞춤형 교육을 수행함으로써 조직내에 안전문화가 깊이 뿌리내리도록 힘쓰고 있다.
한수원은 이처럼 지난 5년간 원전의 안전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성에 최우선을 두고 원전을 운영해왔으며, 앞으로도 안전한 원전 운영을 위해 품질, 안전, 재난, 비상관련 시스템을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한 점이 있으면 제일 먼저 개선해 나갈 것이다.
알파고가 세간의 걱정과 달리 인류에게 희망의 빛을 주는 인공지능으로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과 같이 우리나라 원자력산업도 국민모두가 안심하며 평안하게 삶을 영위하도록 크고 작은 노력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안전문화, 더 깊이있게 다뤄져야=박윤원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을 논할 때 우리는 항상 TMI,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3대 중대사고를 거듭 되돌아보곤 한다. TMI 원전사고는 주급수계통이 정지되더라도 증기발생기를 통한 원자로 냉각이 가능하도록 하는 보조급수계통을 운전 중에 보수를 하는 바람에 적시의 노심냉각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원자로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무리한 시험을 수행하다가 원자로심의 출력폭주가 발생하여 일어난 사실상 노심의 폭발 사고였다. 후쿠시마에 대해서는 최근에 IAEA를 비롯한 여러 조사 보고서가 공통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 동경전력사의 안전문화결여에 대한 사항이다.
한 가지 예로, 동경전력 자체적으로 지진에 의한 쓰나미 가능성을 자체적으로 연구한 결과, 2008년도에 이미 후쿠시마에서 쓰나미가 16m 이상이 될 수 있다는 내부보고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동경전력이 취한 결정은 우선 이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규제기관과 비밀리에 협의하면서 재평가를 하도록 한 것이었고, 결국 이로 인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고 만 것이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일본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을 지낸 아츠유키 스즈키 교수는 그의 최근 논문 <Managing the Fukushima Challenge>에서 “원자력발전소가 3ㆍ11의 쓰나미와 같은 극한적인 자연위험도에 대해서도 적절히 보호될 수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하면서 그 예로 일본에서 3ㆍ11 쓰나미 발생당시 후쿠시마원전을 제외한 모든 원전은 안전하게 대처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후쿠시마 원전이 가지고 있는 안전문화의 결여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동일한 규모의 극한 자연재해 앞에서 다른 원전은 안전하게 조치를 취했지만 후쿠시마는 그렇지 못했던 이유를 제공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동경전력이라고 이전에 안전문화라는 것을 모른 척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안전문화를 “일하는 방식의 문제” 혹은 “안전에 대한 마음자세” 등으로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안전문화가 실제 현장에서 의미있게 다루어지려면 이러한 추상적 접근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여 취약점을 찾아내 끊임없이 개선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에 발생한 고리 1호기의 전원상실(SBO) 사고는 안전문화의 결여가 가장 심각한 원인이었다는 것을 IAEA 조사단이 지적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이 사건 이후에 우리나라에서도 안전문화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규제기관과 사업자 모두 안전문화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안전문화는 지금까지 한두 가지 지표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과연 지금 잘하고 있는가를 확신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단기간에 성과를 보려고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캐치플레이즈, 전시성 행사 등 가식적인 요소에 치우칠 수 있다. 그것보다는 발전소에서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체계화하여 꾸준히 조사·분석하여야만 경향을 파악할 수 있고 개선점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에 다양한 안전시설을 추가하였기 때문에 지금 가상할 수 있는 중대사고에 대한 하드웨어 관점에서는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보강이 이루어졌다.
시설에 대한 투자는 최소한 설비라도 남기 때문에 금방 표시가 나지만 사람에 대한 투자는 사실 바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는 모든 안전대책을 논할 때 어떤 시설을 추가하고 보강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3대 중대사고의 공통점은 취약한 안전문화였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제는 사람에 대한 투자, 결국 안전문화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더 깊이있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원자력안전도 결국은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방사선 보다 두려운 것은‘망각’이다=심기보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정책조사단장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다량의 방사선, 방사성물질이 환경으로 누출됐다. 원전은 몇 번의 이러한 큰 사고를 겪으면서 어느새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원전 사고로 누출된 방사선을 맞은 사람들은 암에 걸려 다 죽었을까? 방사선을 조금만 쬐어도 암에 걸리는 것일까? 병원 등 일상 생활속에서 받는 방사선과는 다른 것일까?…
먼저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건강 영향을 보자.『UN 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 2008년』보고서,『체르노빌포럼: 2003~2005』보고서에서 종합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급성방사선증이 발병한 원전 종사자와 긴급작업자 134명 가운데 28명은 사고 후 수개월 안에, 19명은 2006년까지 사망했다. 일반인의 경우 갑상선 암 발생률이 크게 증가하여 1991년부터 2005년까지 6848건 증례가 보고되었다. 그 가운데 2005년까지 갑상선암으로 15명이 사망하였다. 그밖에는 방사선 피폭으로 귀결지을 수 있는 건강장해의 증거는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한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건강 영향은 어떨까. UN 방사선영향과학위원회(UNSCEAR)에서는 사고로 피폭된 사람들에 대하여 방사선 피폭에 기인할 수 있는 암 통계에 유의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작업자의 경우 현재의 지식과 정보에 기초하는 한 방사선 피폭에 기인하는 건강 영향의 식별 가능한 증가는 예측되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럼 체르노빌 원전은 현재 어떤 상태일까? 폐로작업과 우크라이나 서쪽지역의 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동쪽지역과 키예프로 보내는 송전기지, 전력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 국영 특수기업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는 하루 2800명의 근로자가 사고처리 및 송전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2011년 12월부터는 100km 떨어진 키예프에서 시작한 일반인의 유료 견학코스까지 운영한다.
2015년 노벨문학사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체르노빌 사고 후에는 신화만 남았다. 체르노빌 괴담, 공포와 소문, 사람들은 방사선이 아닌 그것 때문에 죽었다. 이제 체르노빌 공포를 판다. 새로운 상품을 사기 위해 그들의 고통을 판다”고 얘기하고 있다.
사실 현재 전 세계 인구 중 176만 명이 연간 평균 10mSv 이상 자연방사선을 받고 산다. 5.0mSv~10mSv는 1000만 명이 넘는다. 이 정도 선량 피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편 원폭 피폭자를 대상로 한 연구 결과에서도 5mSv 이하에서는 고형암 발암률이 0.03125%로 측정이 거의 불가능다고 밝혀져 있다.
원전은 사고로 인한 방사선의 인체 영향과는 별도로 현실적, 심리적인 두려움이 있다. 원전 사고로 초래된 국가 차원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및 일상의 개인생활까지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사회기반의 파괴가 두려움의 근본적 원인이다. 따라서 원전 사고를 단순히 방사선에 대한 불안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결국 원전만큼 안전성에 대한 요구가 강한 것도 없다. 방사선은 기본적으로 두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원전이 전력공급의 옵션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안전성 강화를 바탕으로 한 원전의 안전운영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갈수록 해마다 흐릿해져가는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선의 흔적을 되쫒아가며 안전 운영의 시스템을 재차 점검해보는 수밖에 없다. 가장 두려운 것은 방사선이 아니고 ‘망각’이라는 체르노빌 주변 지역주민의 지적을 이참에 다시 되새겨야 할 것이다. 

◆‘최고’라는 자만심 벗어나 ‘초심’으로 돌아가야=이석우 한국원자력신문 편집국장
2011년 3월11일 금요일 동일본서 강도 9.0 대지진 발생으로 산더미 같은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으로 들이닥치면서 대재앙의 서막을 일으킨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발생한 수소폭발과 방사능 누출로 고농도의 방사성 물질과 오염수가 쏟아져 나오자 일본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즉각 사고 수습에 나섰지만 정부 관계자나 원전전문가 역시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아직도 우와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1차적인 원인은 9.0 규모의 대지진으로 인한 거대한 쓰나미가 덮치면서 원전주변지역의 1만5천여명의 주민이 죽거나 실종되는 자연재해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은 원전의 내부전력과 외부전력이 모두 끊어지고 발전소 내 비상용 발전기마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원자로 냉각기능이 정지되어 원자로 내의 연료봉이 녹는 노심용융 상태의 대 참사를 일으킨 전형적인 인재(人災)사고라고 단정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원자로의 수증기를 식혀서 물로 만들어야 했지만 원자로 내의 방사성 물질이 묻은 수증기가 그대로 외부로 누출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특히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원인과 사후 수습방안에 대한 사고 현장 정보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계속 은폐하고 급급한 변명만 내놓은 것도 사실이다.
도쿄전력은 지난 5년 동안 핵 연료가 녹아내린 사실이 없다고 계속 주장하다가 지난 2월에 노심용융 사실을 인정하는 입장을 피력하여 일본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산적도 있다.
우리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세계 최고의 원전운영’, ‘세계 최저의 원전정지 기록’, ‘세계 최단의 원전건설 공기’ 등 항상 ‘세계 최고’라는 일등감과 자만심을 빠진 적도 있었다.
이러한 우리의 자만심은 ‘원전 안전우선’이라는 기본정신을 스스로 저 버리고 초심에서 벗어나 나태해져 옛 속담처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참사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기본정신과 초심의 마음을 잃지 않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국내 원전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자연재해는 물론 원전 가상 사고에 대비하여 다각적인 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원전 안전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다 해도 이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아주 사소한 실수나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큰 문제가 아닌데 그냥 지나가고 될 거야’, ‘후임 교대자가 잘 처리하겠지’라는 타성의 적은 안전의식은 자연재해가 원인으로 발생한 최악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보다 더 큰 ‘원전 인재 참사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UAE 원전 수출에 이어 대한민국이 원전 5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전 안전기본’을 지키고 ‘나 스스로부터 안전의식을 갖자’는 마음자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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