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문화재단, 공학도 대상 ‘원전 안전 토론회’ 개최
전문가 “원전 사고보다…비리스캔들 국민신뢰 추락” 원인

▲고리원자력발전소 전경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내 원자력계는 원전의 안전에 대해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와 같은 중대사고의 방지를 위해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데 ‘과연 원자력은 안전한 것인가’ 그리고 안전하다면 ‘왜 많은 국민들이 신뢰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에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사장 김호성)은 전문가로 구성된 ‘원자력에너지 미래포럼’과 함께 지난달 31일 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에서 원전 안전을 주제로 토론회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토론회는 원자력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과 미래포럼 위원, 원자력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후쿠시마 원전 사고 5년, 우리나라 원전 안전한가?’ 주제로 후쿠시마 사고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향후 원자력계가 나아갈 방향을 논의했다.

토론회에 앞서 김호성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원자력이 전력공급의 주요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안전성에 대해 전문가들이 말하는 과학기술적 확률과 대중이 인지하는 간극이 매우 크다”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리스크 관리를 위한 제언과 소통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주제발표자로 나선 박윤원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前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는 필리핀 바탄(Bataan) 원전 사례를 통해 “원전 안전성이 두려워 포기하기 보다는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바탄 원전은 고리원전 2호기와 동일한 모델로 1986년에 완공했지만 1986년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국민적 반발로 가동이 무산됐고 이후 우리나라에도 자문을 구하며 원전을 가동하고자 했지만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자 결국 원전을 포기하고 관광지로 개장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북한의 미사일공격과 같은 인위적 재해가 아닌 국한 자연재해에 의한 사고 가능성은 극히 낮고 이에 대해서는 충분히 기술적인 보강이 이뤄졌다”며 “그러나 인위적인 요소, 즉 실수나 판단착오 등에 의한 작은 고장이나 사건이 중복해서 발생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발생한 국내 원전의 불시정지 16건을 살펴보면 모두 작은 고장이나 설비의 오작동에 의한 것이다.

박 교수는 “중대사고의 가능성은 철저히 줄여야겠지만 앞으로 인적오류, 조직적 결함 등을 줄이도록 안전문화에 대한 투자와 강조가 이어져야 할 것”이라며 “더불어 후쿠시마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나미가 덮친 동일한 재앙에서도 안전하게 정지하고 사고로 진전되지 않았던 일본의 나머지 50기 원전으로부터 성공교훈을 얻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전문화 확립과 쌍방향 소통 패러다임 변화 등 제언
이어서 패널토론에서는 김진우 미래포럼 위원장을 좌장으로 ▲허균영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원전, 곁에 둘 만큼 안전한가?’을 ▲이태준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심리적 동상이몽’을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개발부원장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안전성 확보 5대 과제와 안전 연구·정책’을 ▲김응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보다 안전한 원자력을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발제와 토론을 이어갔다.

허균영 교수는 ‘원전이 안전하냐’ 문제가 아닌 ‘우리 곁에 놓고 사용할 만큼 가치가 있느냐’를 놓고 고민해 봐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허 교수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다른 발전소가 원전을 대신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워낙 큰일이라서 원전의 ‘안전과 위험’을 따지기 이전에 ‘필요와 불요’를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라면서 “이는 우리나라가 그리 풍족한 조건의 나라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고 이후 설계개선, 품질개선 등의 하드웨어 측면의 안전 강화 노력에 더불어 원자력 산‧학‧연‧관의 연구 협력과 비상상황 발생시 중요 의사결정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100% 안전한 원전은 없다. 그러나 원잔 사고를 막을 장치는 나날이 개선되고 있으며, 실제로 원전 사고가 났을 때에 우리가 제대로 상황을 판단한다면 불필요하게 손해보는 부분은 크게 줄일 수 있고 그러면 원전을 사용하면서 얻는 득실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태준 교수는 “원자력에너지의 공적 가치와 경제적 활용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인식과 판단은 점차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그러나 국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수용성과 공감대가 극단적으로 이원화된 양상을 보이게 된 시점은 2013년 불거진 ‘원전비리’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에 따르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가 원자력에 대한 필요성과 불안감의 극간을 벌려 높은 대표적인 필요조건이면 국내 원전 기자재 시험성적서 위조와 품질기준 미달 부품의 납품 과정에서 드러나 비리스캔들은 원자력에 대한 국민들의 심리적 극간을 최고조로 극대화시킨 충분조건이라는 것.

그러면서 그는 “정부와 원자력계는 원자력의 사회적 수용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낡은 프레임에 사로잡혀 있으며, 일시적이고 단선적인 이벤트성 커뮤니케이션에만 급급해 있다”며 “이제는 ▲전문성(expertise) 표출 ▲정직성(honesty) 증명 ▲호의성(benevolence) 지속 등 소통의 자세를 가다듬어 쌍방향 대칭적 관계중심으로 ‘소통 패러다임’을 변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백원필 부원장은 후쿠시마 사고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극한 자연재해로 인한 최초의 원전 중대사고 ▲다수 호기에서 동시에 중대사고가 발생해 장기간 지속 ▲방사성물질의 대량 외부 방출로 광범위한 토양 및 해양 오염 등 3가지를 꼽았다.

백 부원장은 “사고의 원인은 중요 의사결정이 과학기술적 지식이 아닌 안전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정치‧경제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라면서 “국내 원전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최상의 지식에 기반한 심층방어’와 해야 할 ‘올바른’ 일을 ‘제대로’ 이행하는 자세(Do the ‘Right’ Things ‘Right’)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전 안전성의 향상은 하드웨어 측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소프트웨어 측면의 보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원자력분야의 글로벌 리더 그룹으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기존의 산업, 행정, 기술 체계의 장점은 적극적으로 살리면서도 책임있는 리더로서의 자세 전환과 이에 걸맞은 역량 강화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응수 교수는 “지금까지 원자력 현장에서의 사고는 기술적 요소와 인적 요소가 결합돼 발생했다”며 “현장에서 기술적인 개선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종사들이 현장에서 형성해 나가는 문화도 필수적이다. 결국 ‘인간-기술-조직(제도)’의 3개축이 유지돼야 안전성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서울대 및 경희대에서 원자력을 전공하는 재학생이 참여해 국내 원전의 안전강화 기술과 정책, 소통 등에 대한 활발한 현장토론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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