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안전규제 혁신 “선제적 R&D와 성과중심 소통에서 시작된다”
상태바
원자력 안전규제 혁신 “선제적 R&D와 성과중심 소통에서 시작된다”
  • 한국원자력신문
  • 승인 2016.05.23 16: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문가칼럼]양지원 한국원자력안전재단(koFONS) 원자력안전부 연구관리팀장

▲양지원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연구관리팀장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제1회 국가과학기술전략회의에 이어 17일 2016 제7회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ALC) 개회식 기조연설에서도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과감한 혁신이 필수적임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과거에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는 기술경쟁에서 뒤지고, 개도국에는 가격경쟁에서 밀려왔지만, 일본의 엔저 공세와 중국의 기술발전으로 ‘신(新) 넛크랙커’ 상황인 현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개혁, 규제개혁, 선도형 R&D 시스템으로의 전환 등 지속적인 국가 혁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18일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는 규제개혁이 미래먹거리를 책임질 수 있는 신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규제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게 박차를 가하겠다고 선언했다.

원자력 안전규제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통해 도출된 기술기준에 따라 국가 안보 및 국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므로, 이렇게 박대통령이 연이어 강조한 국가 혁신의 핵심 분야인 R&D, 공공, 규제 모두가 융합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자력 분야의 특수성과 오랫동안 추진되어온 기존 진흥 위주 정책으로 인해 우리나라 원자력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그 역할에 대한 국민적인 이해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원자력 분야의 특수성은 많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첫인상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원자력은 물리, 화학, 기계, 재료 등 과학기술 전 분야가 융합되는 거대과학이자 각 분야 극한기술들이 집대성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전공자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각 분야 전문용어들이 적지 않을 정도다. 이렇게 일반 국민들이 쉽게 그 정보를 접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우니 심지어 폐쇄적인 분야로 비추어지기까지 한다. 하물며 안전철학, 기술정책, 법령, 기준 등 기술과 정책을 아울러야 함과 동시에 안보 차원의 보안정보까지 다루는 원자력 안전규제 분야는 일반적인 기술개발이나 산업 보다 더욱 이해와 소통이 어렵다.

또한 기존의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원자력 분야에서 가장 어렵고 최신인 내용만을 다루는 R&D 분야는 더욱 이해하고 소통하기가 어려운 분야이다. 하지만 원자력 안전규제에서 가장 중요한 축의 하나가 안전규제 R&D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혁신적인 미래형 원자로나 안전기술을 개발했다고 하자. 신 기술이 적용되고, 원자로가 실제로 가동되고, 전력을 생산하여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안전기준을 만족시키도록 설계·건설되었는지 검토받아 인허가를 통과해야만 한다. 하지만 사전에 안전규제 R&D를 통해 혁신적인 기술을 검토할 수 있는 체계가 미리 마련되지 않았다면 인허가 신청을 할 수 조차 없다. 또한 1 나노미터 수준의 규제기준이 마련되어 있다고 해도 실제 1 나노미터로 제작된 것인지 검사할 검증기술(예를 들자면 0.1 나노미터 단위의 측정기술)이 없다면 인허가 심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아무리 좋은 신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규제기술이 없다면 그 기술은 아예 시장에 나올 수 없거나, 이러한 규제검증 기술이 개발된 후에야 비로소 시장에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즉, 안전규제 R&D는 모든 새로운 기술이 태어나면 치러야 하는 인허가 및 심검사라는 시험의 문제지를 만들고, 제출된 답안지를 채점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R&D이다. 문제가 유출되거나 시험결과가 조작되지 않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R&D가 수행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따라서 안전규제 R&D에서도 규제 독립성은 필수적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우리나라는 원자력 안전 확보에 핵심적인 규제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 원자력 안전규제를 책임지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신설하고 원자력 안전, 방사선 안전, 북핵문제, 핵비확산 및 핵안보 등 원자력 안전관련 전 분야를 포괄하는 안전규제 R&D 사업인 “원자력안전연구” 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 중이다.

기존 원자력 진흥을 위한 원자력연구개발 기금으로 수행되던 사업재원을 일반회계로 전환하여 재원의 독립성을 확보하였으며, 진흥측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추진하던 사업을 ’13년 1월부터는 한국원자력안전재단을 연구관리 전문기관으로 지정하고 이를 통해 추진함으로써 추진체계의 독립성까지 강화했다. 이렇게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제시한 규제 독립성의 주요 부분 중 사업·재원·추진체계의 독립은 완료되었지만 아직까지 선진국 수준의 기술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외국기술을 수입·운영하거나 그 기술을 국산화하는 등 다른 나라 사례와 규제기준을 참고하여 규제를 할 수 있었던 예전과는 달리 노후원전 해체, 사용후핵연료 관리, 미래형 원자로 등 곧 다가올 새로운 규제수요는 우리나라 고유 상황과 특성을 반영해야 하거나 전 세계 선진국들이 공동으로 고민하고 있는 난제 수준의 현안들인 경우가 많다.

선진국과의 협력 등 다소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할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새로운 규제수요 분야들은 국내의 현실적인 시급성 때문에라도 우리가 주도적으로 연구하여 해결해야만 한다. 즉, 우리나라 고유의 독자적인 규제기술을 시급히 개발하지 않으면 국가 차원의 중요과제들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며, 국가차원의 화두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변화하기 위한 선제적인 대응이 가장 필요한 분야 중의 하나가 원자력 안전규제 R&D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14년 6월, 원자력 안전규제 분야 고유의 기술분류 체계와 분야별 주요 R&D 로드맵을 담은 「제1차 원자력안전 연구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국가차원의 미래 규제수요에 적기 대응하기 위한 틀과 전략을 제시한 바 있으며, ’17년부터는 현재 수립 중인 원자력 안전 분야 최상위 국가 계획인 「제2차 원자력안전종합계획」에 R&D 부문을 포함시켜, 국가 원자력 안전 분야 전체를 선도하기 위한 안전규제 분야의 혁신을 안전규제 R&D를 중심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원자력 안전규제 기관 중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인정받는 美 NRC는 ADAMS(Agencywide Documents Access and Management System)라는 문서·정보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규제기술이나 현안별로 작성된 기술보고서가 어떻게 채택·반영·수정되었는지 그 이력까지 관리 및 공개하고 있다. 법령부터 기술기준상 수치 하나의 변화까지 국가의 원자력 안전규제 하나하나가 어떠한 기술적 근거와 이력을 가지고 이루어졌는지 모든 국민이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심지어 후쿠시마 이후 전 세계가 떠들썩했던 원전 안전성 강화 조치 때에도 美 NRC는 이렇게 수십 년 간 축적·관리되어온 기술보고서들을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문서·정보 관리시스템이 곧 그 나라 원자력 안전규제의 기술력과 저력,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 안전규제 전 분야를 아우르는 R&D 사업인 “원자력안전연구” 사업의 대표적인 연구성과를 안전규제에 과학기술적 근거를 제공하는 핵심 기술기반인 “원자력안전기술보고서(N-STAR: Nuclear Safety Technique Analysis Report)”와 “정책제안”으로 설정하고 이를 지속적·체계적으로 관리·활용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수년간 연구개발이 종료된 후에야 R&D의 성과가 공개되었으나 새로운 규제를 만들거나 안전규제를 혁신하기 위한 안전규제 R&D의 특성을 고려하여 공개·활용할 필요성이 있는 주요 연구성과를 이슈페이퍼 형태로 정리한 안전기술보고서(N-STAR)를 대폭 확대하고 연간 4회 평가·공개를 통해 R&D의 성과가 최대한 신속히 안전규제 혁신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질적성과 중심의 ‘14년 5월 R&D 성과평가법 개정, R&D 주체간 역할분담 및 산업생태계 구축 등을 담은 ’15년 5월 R&D 혁신방안, 금년 국가과학기술전략회의 등 국가 R&D 주요 정책방향에 부응할 수 있도록 ‘15년 말, “원자력안전연구 성과지표 및 사업관리 체계 개편(안)”을 마련하여 원자력안전기술보고서(N-STAR), 정책활용도, SCI 논문의 표준화된 영향력 지수(mrn IF: Modified Rank Normalized Impact Factor)를 중심으로 사업 성과지표를 전면 개편하고 출연연과 유관 산학연간 업무의 차별성·연계성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관리 체계 또한 개편했다.

대국민 공개를 원칙으로 연구성과 활용·확산의 핵심인 안전기술보고서(N-STAR)는 SCI 논문 심사와 같이 Peer Review 형태의 질적평가를 통과한 보고서만 연구성과로 인정하고, 정책제안은 정책반영과 함께 그 이력을 관리하여 정책활용도 측면에서, SCI 논문도 양적 성과 보다는 기술분야별 상위 저널에 게재될 수 있는 우수 논문 중심으로, 연구성과별로 그 질적수준을 지속적으로 제고할 계획이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출연연, 대학 등 연구주체별 차별화·연계를 강화하고 진흥 대비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한 원자력 안전규제 분야 R&D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 대학, 기업 등 다양한 유관 산학연 우수 전문가를 활용하여 핵심 요소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기반 연구”와 출연연 중심 규제 실증 성격의 “규제화 연구”로 과제별 성격을 차별화하는 한편, 기획단계부터 구체적인 성과물을 중심으로 과제간 연계체계를 구축하고 연구수행 과정에서도 유관 과제간 상호 모니터링 및 협력을 강화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제시하고 있는 지침에 따르면 새로이 원전을 도입하고자 하는 원전도입국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하는 것이 원자력 안전규제 시스템이다. 현재 대부분의 원전도입국들은 미국의 것을 그 기준으로 삼고 있다.

즉, 원전수출 이전에 수출되는 것이 안전규제 시스템이며, 안전규제의 수준이 곧 그 나라 원자력 기술의 수준이란 것이다. 원전도입국 중에서 세계 5번째 원전수출국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가, 진정한 원자력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독자적으로 설계, 건설, 운영, 해체, 사용후핵연료 관리까지 원전 전주기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원자력 안전규제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처음 언급했던 바와 같이 R&D는 국가혁신에 필수 요소이지만, 지금은 R&D 그 자체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변화된 원자력 안전규제 R&D를, 더 나아가 원자력 안전규제가 원자력 분야 국가혁신을 선도해야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