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호 조달청 정보기획과장
주변에서 흔히 회자되던 두 가지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요즘은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지만 ‘군대’와 ‘시집살이’는 대화의 단골메뉴였다.

대부분의 남성은 의무 수행을 위해 군대를 가게 된다. 군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소위 ‘갈굼‘이라는 것이 있다. 상급자가 계급을 이용 하급자를 못살게 구는 일이다. 하급자는 상급자를 욕하며 안 좋은 것,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하면서도 본인이 상급자가 되면 이를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또 여성의 경우 결혼 후 생각하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이유로 시어머니로부터 ’갈굼’을 받아 고통스런 시집살이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정작 본인이 시어머니가 되면 또 다시 며느리를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 남성과 여성의 대표적 ‘갈굼’ 사례는 흔히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로 우리들에게 알려져 있고 어떤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지기도 한다.

최근 우리 조달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과 관련하여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어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을’의 보호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조달청이 지난 2013년 말부터 도입하고 있는 하도급지킴이 또한 이러한 정책의 일환이다. 인출제한은 하도급자의 몫에 대한 체불이 발생되지 않도록 발주자와 도급자간 협의를 통해 설정하는 하도급자 보호 장치이다.

최근의 보도를 보면 도급대금이나 임금의 체불이 하도급자에서 다음 단계로 지급되는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보완책의 일환으로 2차, 3차 지불관계에 대해서도 인출제한기능을 개발했다. 이는 당사자간 합의가 있는 경우 적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인출제한 확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을’이라고 하여 보호받았던 하도급자가 ‘갑’의 지위로 상황이 바뀌면서 그들에게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자재, 장비업체의 지급대금이나 노무자의 임금에 대한 인출제한 방침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음을 본다. 인출제한 장치가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도입할 때는 환영하더니 그 아래 단계에 있는 자신의 을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마치 앞에서 예를 든 ‘욕하면서 닮는다’는 예와 무엇이 다른가?

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위해 대기업을 대상으로 필요성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던 그동안의 노력들이 다소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왜 그런 어려운 일들을 해야 했던가하는 자괴감도 든다. 물론 하도급 업체가 원도급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운 여건에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받아야 하지만 남에게는 줄 필요도 없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만 보호 받아야 한다는 생각, 나보다 더 어려운 약자에 대한 보호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그런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상생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은 상대적이다. 갑이 을이 되고 을은 또 다시 다른 상대방에 대해 갑이 되는 법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쪽의 협조를 받으면 다른 한쪽에 대해서는 협조를 해 줘야 하는 것 아닐까? 갑과 을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진정한 상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본 기고는 2016년 5월 23일 공감코리아(www.korea.kr) 정책기고에 게재된 내용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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