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자원硏, 안심사회 만들기 위한 과학적 해법 모색 재조명
원전, 건설부지 지질조사부터 구체적 절차‧평가항목 실시

“지진은 예측이 어렵고, 같은 강도라도 대도시일수록 지진에 취약하기 때문에 내진설계가 돼 있지 않은 국내 대도시의 경우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50만 건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는데 그 중 90% 이상이 환태평양대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 구마모토현, 에콰도르 무이스네 등 환태평양 지진대를 중심으로 강진이 발생하면서 지진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반도는 ‘불의 고리’로 지칭되는 환태평양 지진대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올해 들어 리히터 2.0~3.5 규모의 지진이 30여 차례나 발생하면서 ‘더 이상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ㆍ이사장 이상천)가 주최하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원장 김규한)이 주관하는 ‘제8회 국민안전기술포럼’이 ‘지진재해 대비기술 어디까지 왔나?’라는 주제로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특히 이번 포럼은 국내 지진 발생현황 및 특징을 진단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조기경보, 내진설계, 방재 및 복구 시스템 등 과학적 해법을 찾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의 토론을 진행됐다.

먼저 기조발표에 니선 이희일 지자연 책임연구원은 지진발생 사례와 특징을 설명하고, 공항·철도·발전시설 등에 적용해 본 지진재해 대비기술과 함께 현재 개발 중인 지진 조기경보 시스템을 소개했다.

이희일 책임연구원은 “1978년부터 기상청에서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을 관측한 결과, 지난 38년간 피해를 줄 수 있는 최소 규모의 지진인 리히터 규모 5.0이상의 지진은 지금까지 6회가 있었다”면서 그 중 큰 피해를 준 지진은 ▲지리산 쌍계산 지진(1936) ▲홍성 지진(1978) ▲영월 지진(1996) ▲오대산 지진(2007) 등 4번이 있었다.

그는 “영월 지진의 경우는 규모가 4.5였음에도 제주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지진파를 느낀 반면, 홍성 지진은 5.0에 달했음에도 광역적인 지진파를 느끼지 않았다”면서 “결국 지진은 어느 지역에서 발생하느냐 하는 지질학적 특성에 따라 전파가 달라 피해양상도 달라진다”고 밝혔다.

◆매년 50만건 지진발생…90% 환태평양 지진대에서 강진
실제로 우리나라는 평균 중하위 정도의 지진활동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1988년에 내진설계 기준이 처음으로 마련돼 그 전에 지어진 건물의 경우 강제조항이 없어 내진설계가 안 된 건물이 서울 지역에 82%나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진 발생 시 굉장히 큰 피해가 예상되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내진 설계 기준을 정할 때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가장 큰 지진이 어땠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발생한 지진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역사서에 언급된 지진을 과학적으로 재현해보면 올바른 내진설계에 대한 비용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지질학적으로 지진에 그렇게 위험한 나라는 아니지만 사회 구조의 특성상 지진에 대해 굉장히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정부와 시설물 관리 주체는 안전에 대한 인식이 없다. 우리 국토에 대한 지질학적 정보마저도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 큰 지진을 겪어보지 않아서 경험과 전문가가 부족한 점도 문제이다. 이 연구원은 “메르스 같은 질병이 발생해야 치료법도 개발하고 전문의도 양성할 수 있는데, 지진은 발생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보니 내진설계 기준 설정에 필요한 정보와 관련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것”이라면서 “지질은 지질학적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풍토병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현실에 비춰볼 때 국내에는 명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진재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진관측 및 분석 기술 ▲지진 예측 기술 ▲내진 설계, 시공, 보강, 성능평가 기술 ▲지진 조기 경보기술 ▲지진재해 관리‧복원력 강화기술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진예측 기술의 경우 일본은 고베 지진 이후 1조원의 연구비를 들여 많이 연구했으나 지금도 지진을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따라 연구가 중단됐다.

이처럼 지진은 예측불가하고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지진 조기경보 기술’이 필요하다. 지진은 진앙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p파가 도달한 이후 s파가 도달하기까지 5~20초의 여유가 있다. 이 사이에 인명을 대비시키고 국가 안전 시설물 차단을 하는 등의 조취를 취해서 2차적으로 안전을 확보하는 기술이 바로 조기경보 기술인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은 2002년에 여객 청사 1, 4, 5층과 활주로에 지진 계측기를 설치해 관재탑에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2006년에는 고속철도(KTX) 경부선과 호남선에 매 12㎞마다 지진계를 설치해 선로변에 이상 진동이 감지되면 열차에 정지 또는 서행 신호가 가도록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지진이 발생하면 화재, 질병, 수질 오염 등 2차 피해도 크게 발생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화재다. 1995년 일본 고베지진도 화재에 의해 많은 피해가 있었다. 이에 따라 지진 발생 시 가스 배관을 잠그면서 화재 확산을 방지할 수 있도록 대전, 마산?창원, 울산의 도시가스 공급망에는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과 신속 지진 분석 및 밸브잠금 시스템을 시범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지진조기 경보시스템의 핵심 기술은 각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경보시간을 단축하고 지진 신호를 빨리 확인하는 신호 처리 기술이 핵심이고 생활 잡음에 의한 오경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향후 과제”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우리나라는 인구밀도가 높은데다 도시화율이 높고, 난개발이 많아 내진설계가 미비하여 어떤 재난이 발생했을 때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취약하다”며 “재해 복구 복원력을 강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지진재해에 대비한 융합기술개발을 통해 안전한 사회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수원, 원자로 충격 흡수 ‘면진장치’ 개발 완료
이어 신중호 지질자원연구원 부원장을 좌장으로 전문가 패널들의 발표와 토의가 진행됐다. 각계 전문가들은 ▲첨단 내진설계기술 적용 사례 ▲국가 기반시설물(Life Line)의 내진기술 ▲건축물 내진설계의 최근 동향 ▲바람직한 지진방재?복구 정책 ▲원자력 시설물의 지진대응 등에 대해 논의했다.

먼저 유영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도시연구소장은 “건설 분야의 내진설계 기준을 개선하고 내진설계‧보강 핵심기술 개발을 통해 지진 피해를 막도록 하다”면서 “내진설계에 있어 출연연의 융합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정방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는 “내진 문제는 내진 설비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지진 발생 시 피해를 빠르게 복구하고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구난 구호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내진 대비는 기술적 문제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 문제”라고 언급했다.

윤 교수는 이를 위해 ‘광섬유 센서’, ‘레이저 기반 비접촉 센싱’을 이용해 시설물의 건전성을 인공지능으로 상시 감시하고 평가하고 있으며, 현재의 로봇기술이 구난 상태에서는 성능을 잘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관련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스마트폰을 이용해 재난 정보를 수집하고 환자의 위치를 검색하는 등 구조 시스템에 이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철호 한국지진공학회 회장은 “구조물의 손상을 허용하되 손상하는 과정에서 구조물이 지진파를 흡수해서 인명 피해를 줄이는 내진설계를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성능기반내진설계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올해가 그 원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천중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다른 어떤 시설보다 지진 재해에 강력하게 대응해왔던 시설이 원자력발전소”라며 “원전은 건설 이전에 부지의 지질조사를 별도의 구체적인 절차와 평가 항목에 따라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또 장 연구원은 “원자로 밑에 설치되는 충격을 흡수하는 면진장치도 개발이 완료된 상태”라며 “원자로 가동 중에는 원전 주변에 지진감시설비와 지진관측망을 운영해 일정 규모 지진 발생 시 자동으로 가동이 중단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이호준 삼성화재 글로벌로스컨트롤 센터 수석연구원은 “지진 재해의 크기는 그 사회의 경제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며 “서울은 인구 과밀화, 가치 집중화의 관점에서 리스크를 많이 고려해야 하고, 경제적 피해와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국가적 기반시설(라이프라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수석연구원은 “심폐소생술에 ‘골든타임’이 있듯이 대규모 지진 후에도 한정된 시간에 핵심적 기능을 필요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라면서 “이를 위해 핵심적 기능의 최대 중단 허용 기간과 기능 중단 시 어떻게 재개할 것인지, 대응 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업원전용 면진장치, 터키 등 강진 발생국 수출 기대
한편 면진은 단주기 성분이 강하고 장주기 성분이 약한 지진의 특성을 이용해 구조물의 고유주기를 인위적으로 크게 함으로써 구조물에 입력되는 지진력의 크기를 줄이는 시스템이다. 즉 면진장치는 지진 에너지를 흡수해 구조물에 전달되는 충격을 감소시키는 장치로 구조물 자체가 지진을 견디는 내진과는 다른 개념이다.
한수원 중앙연구원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주관하는 국책과제인 ‘수출형 원전 대비 면진장치 국산화 개발’을 통해 강진(强震)에도 원전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상업원전용 면진장치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원전용 면진장치’는 우리나라에서 발생 가능한 최대 예상지진보다 에너지가 20배나 큰 리히터규모 7.3 정도(최대지반가속도 0.5g)의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지진 에너지를 흡수해 구조물에 전달되는 충격을 현저히 감소시킬 수 있어 원전 구조물 및 설비의 안전성 확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일반 산업계(교량, 건축물)에 사용되고 있는 면진장치는 크게 고무계열과 마찰계열이 있다. 고무계열에는 저/고감쇠 고무(Low/High Damping Rubber) 받침, 납-삽입적층고무(LRB, Lead Rubber Bearing)받침 등이 있으며, 마찰계열에는 마찰진자형(FPS, Friction Pendulum System) 및 스프링 복원형(EQS, Eradi-Quake System)받침이 있다.

이들 받침의 특성과 국내 설계/생산 등 다양한 조건을 비교해 수출형 원전에 적합한 면진장치 2개(LRB, EQS)를 최종 선정했다.

LRB 면진장치는 고무와 철판을 번갈아 가며 적층시켜 제작하며, 고무는 변형에 대한 복원을 시키는 역할을 하고 중간에 삽입한 납은 지진력을 흡수하는 감쇠기능을 하게 된다. 이때 고무의 총 두께는 설계에서 요구되는 설계변위가 된다.

고무 한 개 층이 너무 클 경우 수직력에 의한 부풀음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며, 고무와 철판의 부착력이 부족할 경우 한계변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EQS 면진장치는 강재인 상‧하판과 중간의 베어링블럭 및 복원력을 담당하는 MER-Spring과 감쇠기능의 마찰재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EQS의 성능은 고분자소재인 MER-Spring과 마찰재에 의존하게 돼 요구되는 성능목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이 두 소재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이홍표 한수원 중앙연구원 플랜트건설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선정된 면진장치를 원자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면진장치 구성 소재와 완성품에 대한 개선과 평가가 요구되는데 두 면진장치의 구성품은 단순해 보이나 전체 거동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LRB는 고무소재 배합을 조정해 인장/인열강도, 신장율 및 접착강도를 향상시켰고, 이를 완성품에 적용하여 기본압축/전단 및 한계성능평가를 수행했으며, EQS는 다양한 마찰재의 내구성 평가 실증실험을 통해 반복적인 지진하중에도 거의 손상이 없는 마찰재를 도출했고MER-Spring의 복원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프리스트레스 기법을 적용하여 성능을 대폭 향상시켰다.

이 선임연구원은 “원전 적용을 위해 적합한 면진장치 2종류를 선정, 각 면진장치의 구조재료에 대한 개선 및 성능향상을 완료했고 완성품은 기본압축/전단 특성 및 파괴와 실지진파 실험 등을 통해 개발된 면진장치의 성능검증을 수행했다”며 “실증실험결과로부터 개발된 면진장치는 원전에 적용가능 할 것으로 판단되고 향후 면진구역에 최적배치하고 지진해석을 통해 실용화 기반기술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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