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도입 40년, 바라카원전부터 SMART원전 수출까지 '그랜드 슬램 달성'

▲ 2015년 9월 2일 UAE 바라카 원전 4호기 최초 콘크리트 타설 행사에 참석한 내외빈들과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전력 홍보실>

현재 원자력발전소는 전 세계적으로 30개국에서 434기가 상업운전 중이며, 3억9886만kW로 세계 전력의 약 16%를 공급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와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책으로 원자력산업을 육성·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자력발전에 대한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지만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대체 방안으로 원자력발전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2014년 IEA가 발표한 ‘세계에너지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원전은 2040년에 이르면 2013년 대비 60%까지 증가할 것으로 관측했으며, 특히 아시아 지역은 원자력발전의 증가세를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그네타 라이징(Agneta Rising) 세계원자력협회(World Nuclear Association) 사무총장(Director General)은 지난해 11월 본지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원자력의 안전 문제가 현재는 물론 미래세대에도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지만 무엇보다도 신기후체제(Post-2020)에서 지구 온도를 2℃ 이하로 제한할 수 있는 저탄소에너지원으로서 커다란 축인 원자력에 대해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원전의 비중을 지구상에서 소비되는 전체 전력의 25%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원자력발전 설비의 용량을 2050년까지 두 배가 넘는 1000GWE 정도를 추가로 건설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 어마어마한 목표이기는 하지만 원전 건설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를 되돌아 볼 때 달성이 가능한 목표이기도 하다”고 거듭 밝혔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에서 에너지자원 문제, 지구환경 문제, 식량부족 문제 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원자력산업은 인류의 미래이자 희망이다. 안전성과 경제성에 풍부한 원자력발전소 건설 및 운영 경험과 우수한 인적자원까지 더해진다면 원자력산업은 반도체나 조선 등에 버금가는 수출 산업이 될 수 있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지 30여 년이 지난 2009년 12월 27일, 우리나라는 그동안 쌓아 온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형 원전인 APR1400 4기를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함으로써 세계에서 6번째로 원전을 수출한 나라가 됐다.

UAE 원전 사업은 신고리 3·4호기와 동일 노형인 APR1400 4기를 수출함으로써 그 규모가 200억 달러에 이르며, 이는 3만 달러급 중형차 62만 대를 수출한 것과 동일한 규모이다.

원전 수출 성과는 상업용 원자로뿐만 아니라 연구 개발 분야로도 이어졌는데 2010년에는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를 수출했으며, 세계 최초로 스마트 원자로를 개발해 사우디아라비아와 10만kW급 중소형 원자로 ‘SMART’ 수출을 추진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이다. 대형원전부터 연구용 원자로에 중소형원전까지 완벽한‘원전수출 포트폴리오’구축과 원자력기술 공급국으로서 국제위상을 한층 강화했다.

▲원자력의 미래와 후속원전 수출을 위한 제언=황수돈 한국전력 원전수출전략실장

◆국가 간 종합 수의계약으로 바뀐 글로벌 원전시장
그러나 2009년 이후 세계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원전 프로젝트들의 상당수가 보류되거나 지연되는 사태를 맞았다. 과거 원전시장은 진입 기술 장벽이 높아 소수의 공급사를 대상으로 발주국이 주도하는 경쟁입찰이 일반적이었고,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경쟁입찰 과정을 통해 UAE 원전사업을 수주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원전도입국과 공급국 정부 간 협약으로 사업자가 선정되는 수의계약 방식으로 변화하며 원전기술뿐 아니라 원전을 통한 고용과 전문인력 양성, 관련 산업 발전 등을 포함한 패키지 계약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게다가 신규 원전 도입국들은 공급국의 대규모 재원조달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시장 환경은 적대적이지만 우리나라 역시 마냥 손 놓고 있지만은 않다. 현재 정부와 산업계가 협력해 제2 원전을 수주하기 위해 신규 원전사업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14개국에서 63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고 26개국에서 173기가 계획 중이다.

신규 원전 대부분은 유럽과 아시아, 중동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중 우리나라의 수주 가능성이 있는 시장은 UAE 후속호기를 비롯해 사우디, 이집트, 남아공, 체코 등 9개국 30여 기다.

현재 정부는 이들 국가를 주요 사업추진 중점국가로 선정하여 양자 간 원자력협정 MOU를 체결하고 인적교류, 문화 사업을 강화해 한국에 대한 인식을 높이며 원전분야에서 최고의 파트너로 각인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새롭게 개정돼 발효된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은 한국은 원전 수주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었다. 그동안 한국이 핵물질이나 장비를 수출하려면 건별로 일일이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했다. 자연히 수출의 불확실성이 크고 행정절차가 복잡해져서 원전수출 경쟁력이 크게 낮아졌다. 그러던 것이 이번 협정을 통해 양국이 동의한 사전 포괄승인 국가목록에 포함된 제3국에 대해서는 별도의 동의를 구할 필요 없이 미국산 핵물질이나 원자력 장비를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원자력의 미래와 후속원전 수출을 위한 제언=황수돈 한국전력 원전수출전략실장

◆원자력 르네상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보려면 첫 해외 원전인 UAE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현재 UAE의 바라카(Barakha) 현장에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APR1400 4개 호기가 동시에 건설되고 있는데 UAE 현장은 국내 원전 건설 현장과 다른 점이 많고, 자연히 사업의 난이도도 높다. 모래폭풍, 50℃를 육박하는 더위, 라마단 기간, 22개국 1만 7300여 명의 제3국 노동자를 투입한 시공과 노무관리 등은 발전소가 제때 건설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이며, 원전 건설을 위한 방대한 물량의 자재들을 해상으로 운송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다행히 몇 년 전 UAE 바라카 현장을 방문한 IAEA 관계자는 “내가 다녀본 전 세계 원전 건설 현장 중 가장 깨끗하고, 정리 정돈이 잘된 건설 현장”이라고 밝힐 정도로 국내 시공기업들은 수준급의 공정관리 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UAE원전을 건설하면서 얻은 경험과 해외에 내보인 사업관리 역량은 후속 사업을 확보하고 운영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아울러 원전 시장의 변화하는 트렌드를 잘 읽어 경쟁국들보다 앞선 강점들을 만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선 잠재고객 국가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원전사업은 장기적, 종합적 프로젝트로 양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사업이다. 따라서 원전의 고객들은 기술이나 가격만으로 거래 대상을 결정하지 않으며, 국가 간 파트너십?을 통해 협력관계를 중요하게 여겨 고객 국가가 신뢰하고 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원전사업을 추진하는 기업에게도 적용된다. 현재 원전 시장은 단일 기업의 독자적 마케팅보다 기업 간의 제휴를 통해 상호 이익을 얻는 전략을 구사하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실제로 아레바나 웨스팅하우스, 도시바, 미츠비시와 같은 세계 주요 원전 수출사들은 서로 전략적 제휴를 통해 원전 시장에 진출해 성과를 올리고 있다.

▲원자력의 미래와 후속원전 수출을 위한 제언=황수돈 한국전력 원전수출전략실장

한편으로는 재원조달 역량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최근의 글로벌 경기 침체로 신규원전을 도입하는 국가들은 공사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공급자에게서 자본을 융통하여 건설하고 운영 시 발생하는 전력요금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따라서 원전을 수출하려면 원전 건설에 필요한 재원을 쉽게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시공이나 설계 경쟁력뿐 아니라 금융경쟁력도 높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어낸 러시아와 중국은 대규모 재원조달을 발판삼아 세계 원전시장의 주역으로 급부상했다. 금융계의 국제경쟁력이 높지 않은 한국으로서는 원전 수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금융역량을 크게 향상시켜야 한다.

이러한 기반 조성에 앞서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것은 바로 국민들의 지지다. 자사 직원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제품은 시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듯,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국민들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때 UAE 원전사업 수주를 계기로 원전을 지지하는 여론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불신감과 경계심이 높아졌다. 게다가 국내 원전산업계를 둘러싼 납품비리 스캔들과 시험성적서 위조사건과 같은 부조리가 드러나 한층 불신감을 키웠다.

물론 안전규정과 품질보증 체계를 대폭 강화하여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고는 하지만 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결국 원자력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확실한 방법은 원전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원하는 안전수준에 도달하도록 계속 노력하는 한편, 정보를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들이 객관적 기반을 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소통해야 한다.

원전산업은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뚜렷한 활로를 찾지못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미래 먹거리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구상을 실현하려면 외부적으로는 국가 간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내부적으로는 국내원전의 안정적 운영과 부단한 기술개발로 원전산업을 이끌어나갈 고급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인재가 곧 자산인 한국으로서는 산·학·연 협력을 기반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젊은 인력을 양성하고 국내 원전 건설과 운영 경험이 풍부한 퇴직인력을 활용하여 우리가 지닌 원전기술 경쟁력을 다져야 한다. 원자력 선후배 간의 지식, 경험, 노하우를 전수하고 공유하는 것은 한정된 우리나라의 원자력 인력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원전산업의 주축이자 핵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장기적 국부 창출을 향한 범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

<*본 기사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원자력문화> 2016년 제2호 '세계로 미래로'(2016.5.17)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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