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김재식 프리랜서 영화칼럼니스트

영화 <판도라>포스터 /출처=배급사 NEW

“신은 호기심 많은 인간이 열어볼 것을 이미 알고 판도라의 상자를 선물했을까?”

공포의 존재 
원자력에너지는 불 이후로 인간이 발견한 가장 강력한 동력원이나 가장 무서운 재앙이기도 하다.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공포는 이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리틀보이(little boy)와 팻 맨(fat man)에 의해 전 세계에 인지되었고 세계 에너지 소비의 7.2%를 차지하는 지금도 안전한 동력보다는 언제 재앙을 가져올지 모르는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86년 4월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화재와 불과 몇 년 전인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1945년 원폭을 시대로 경험했던 이들은 기사감으로, 역사의 일부로만 경험해왔던 지금 세대에는 새로운 재앙의 형태에 대한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재난’이라는 키워드에 지독한 감성을 삽입해 상업형 재난영화만을 제작해왔던 우리나라에 뜬금없이 원전사고라는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 <판도라>의 등장은 기실 전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국가라는 현실과 그에 따른 불안감을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영화보다 더 심각했던 현실 
<판도라>는 2011년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전사고 경과를 픽션을 가미해 한국식으로 재연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 앞에 한반도는 일대 혼란에 휩싸이고 믿고 있던 컨트롤타워마저 사정없이 흔들린다. 방사능 유출의 공포는 점차 극에 달하고 최악의 사태를 유발할 2차 폭발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발전소 직원인 ‘재혁(김남길 분)’과 그의 동료들은 목숨 건 사투가 펼쳐진다.

지난 9월 12일 경주 지진으로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울산 울주군에 새로 짓는 신고리 원전 5ㆍ6호기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영화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을 ‘대한수력원자력’으로, 원전 이름은 ‘한별’로 설정해 전남 영광군의 한빛 원전와 발음을 유사하게 했다.

영화는 안전 불감증으로 원전이 폭발하고 컨트롤타워마저 없는 대책본부를 꼬집었다. 지진에서 비롯된 사고의 근본적 원인부터 관료주의 체제의 경직성 그리고 이에 따른 컨트롤 타워의 기능 상실까지 사고 대부분의 경과와 수습과정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것은 물론 원전 사고가 국가적 패닉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나열한 것까지 모두 그대로다.

물론 영화는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소 과장하여 극적인 효과를 구현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판도라>의 경우 실제 사건과 그것을 은폐하고 수습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관료들의 행각이 다소 미화된 부분이 있으며(영화보다 훨씬 심각한 난장판이었다.) 실제 사고의 심각성은 몇 배 더 컸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유출 세슘-137 수치가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의 168.5배였으니 말이다.

결국, 시스템의 붕괴로 인해 사고의 규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고스란히 영화 속에 담긴 셈이다.

후쿠시마의 이러한 초대형 사고는 영화적 소재로 아주 적합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자연재해로 인해 일본이 가라앉는다는 내용의 <일본침몰>과 같은 영화는 거대 자본을 투자해 무리 없이 만들어냈지만) 방관한 태도와 직접적인 원전 사고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사고를 저지른 관료들로 인한 후유증이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인지 소노 시온의 <희망의 나라>와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영화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영화 <판도라> 주요 스틸컷 /출처=배급사 NEW

<판도라>의 국내 개봉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3월에 크랭크인 하여 7월에 크랭크업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1년이 지나도록 개봉일을 잡지 못해 표류한 것이다. 당연히 외압 논란이 생겼고 그때마다 영화사는 후반 작업 지연을 그 이유로 내세웠으나 국내에 유입된 일본 자금의 비율과 일본 관련 사업의 규모를 추측했을 때 충분히 가능성 있는 논리다.

영화의 방향
<판도라>는 지금까지 겪어온 한국 재난영화들과는 사뭇 차별된 방향으로 전개된다. 신변잡기로 초중반을 소모하는 정석적인 동 장르 영화들과는 달리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초조함과 불안감을 선사한다.

간혹 주인공들의 과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넋두리처럼 흘러나오긴 하지만, 감성의 자극보다는 이들이 원전 주변에서 경험해온 삶의 배경을 제삼자의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본 것에 가깝다.

비록 영화라는 산업이 결국 이윤 사업이기 때문에 관객을 자극할 수 있는 늘어진 신파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겠지만, 과장된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현실과의 괴리감이 적은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2014년 4월).

영화 촬영 당시 원전 주변에서 카메라를 작동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고 하는데 영화 속에서도 조상들과 그 대를 이은 후손들이 일궈온 땅에 안착해 노동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버린 산업화의 모습이 원자력 발전소로 직유 된다. 지역을 먹여 살리는 효자가 된 셈이다.

김재식 프리랜서 영화칼럼니스트

현대에 발생하는 대부분의 사고는 소극적 수습과 방관적 태도로 인해 확장된다. 원자력이 거대한 위험성을 내재한 에너지임은 분명하나 어떤 분야든 그것을 다루는 시스템과 컨트롤 타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원자력보다 더 큰 사고로 확대될 수 있다. 시스템만 제대로 구축된다면 잠재적 재앙에 대한 국민의 두려움은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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