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2017 특별기고=2050년 대한민국 원자력의 나아갈 길]

지구 온도를 처음 측정하기 시작한 1880년 이후 지구 온도는 1.7도 상승했다. 얼마 안돼 보이지만 지구 표면적을 생각한다면 큰 수치이다. 중요한 것은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지 못해 지구온도가 ‘얼마나’ 상승하느냐가 아니라 ‘어느 속도’로 상승하느냐이다. 과학자들은 지금보다 8도 이상 오르면 지구는 생명체 거주가 불가능한 행성이 된다고 우려하고 있으며, 전 세계가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 전 세계 195개 국가는 지구온도 2℃ 상승을 막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데 힘을 모으기로 약속을 담은 신(新)기후체제 합의문인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을 채택했고, 2016년 11월 4일부터 발효됐다.
신기후체제로 인해 전 세계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에너지원 개발에 매진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그 중심축에 ‘원자력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위상이 높아졌다. 하지만 국가의 산업 구조와 경제를 종합적인 고려한다면 원자력의 지나친 의존성보다 태양광, 풍력, 하이브리드 등 다른 에너지원과 상생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원자력은 신기후체제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분명히 인류와 함께하는 ‘오디세이(Odyssey, 장기간의 방랑 모험 여행)’로 불릴 것이다. 이에 본지는 지난 12월 27일 ‘제6회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 식전행사로 열렸던 원자력 정책좌담회에서 ‘2050년 우리나라 원자력의 나아갈 길’을 주제로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이 원자력을 둘러싼 국내외 정책 환경 변화와 도전 과제 등 대한민국 원자력의 장기 정책방향에 대해 발표한 고견을 지면에 담았다. <편집자 주>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개발부원장

우리나라는 지난 40여 년간 원자력 기술의 개발과 이용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국내 원전의 자력 건설ㆍ운영은 물론 원전과 연구로를 수출하는 선진국 그룹으로 도약하였다. 원자력을 둘러싼 국내외 환경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하며 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역할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국제적으로 보면 원자력은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와 함께 2000년대 후반에 가시화되던 원전 르네상스는 사라졌으나, 대부분의 국제기구가 전 세계적인 원자력 이용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특히 파리협약에 따라 온실가스의 지속적인 감축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원자력을 제외하고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국가가 많다. 후쿠시마 사고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원전 신규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자력 이용의 확대 여부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에너지 저장 기술, 기후변화 등 외부 환경적인 측면과 함께, 가동원전의 안전한 운영, 혁신적 원전기술 확보, 사용후핵연료 관리 등 내부적인 해결능력의 확보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국내의 경우 원자력 이용 환경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원자력 안전문제에 대한 과학기술적 또는 합리적인 논의가 어려운 사회구조가 지속되고, 후쿠시마 사고와 경주 지진의 악영향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와 원전 부품비리사태 이후에 반원자력 활동이 조직적이고 활발해졌고, 정치권의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입장이 크게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이 가져다주는 에너지 안보, 기후변화 대응능력, 경제성 등의 강점은 지속될 것이며, 수출산업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도 여전히 있다. 또한 비발전 분야, 특히 방사선 이용 분야에서의 기여가 크게 확대될 것이다.

2050년대까지도 원자력의 가장 큰 역할은 전력공급 측면에서의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에서 찾을 수 있다. 에너지자원의 96%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남북분단으로 전력계통에 고립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은 자립된 기술에 기반한 기술집약형 준국산 에너지로서 에너지안보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더욱이 다른 전력생산수단에 비해 발전원가가 저렴하고, 발전원가 중 대부분을 국내공급분이 차지하여 국내 생산유발 및 고용유발 효과가 화력발전에 비해 월등하다. 또한 파리협약으로 가시화된 온실가스 절감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서도 원자력 발전의 역할이 지대하고 필수적이다.

수소경제가 현실화되는 경우에는 원자력의 역할이 전력공급 차원을 넘어 수송 등 다양한 분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아울러 2050년까지는 방사선 이용과 우주ㆍ해양 개발 등 비발전 분야에서의 원자력 역할도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원자력발전은 1970년대에 도입된 이후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외에도 국내 건설 산업과 다양한 장치산업 기술의 혁신을 이끌었고, 특히 엄격한 품질관리와 안전관리의 중요성을 전파하여 국내 산업기반을 크게 강화시켰다.

현재는 기술선도 산업으로서의 위상이 크게 약화되고, 안전관리와 품질관리에서의 리더십도 크게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최상의 과학기술지식에 기반해 투명하고 정직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사업을 이행함으로써, 원자력의 위상을 회복함은 물론 극단적 사고와 비합리성이 지배하는 우리나라의 문화를 바꾸는데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향후 원자력의 역할은 ▲원전의 안전하고 경제적인 운영 ▲국민 등 이해당사자들의 지지 ▲사용후핵연료 안전관리 및 미래원자력시스템 등 원자력의 지속가능성 ▲핵심 인력 및 산업 인프라의 유지ㆍ발전 등 4개 핵심 요소들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각각이 중요한 도전과제이다.

먼저 ‘원전의 안전하고 경제적인 운영’은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과제이다. 특히,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어 기존 원전의 안전성을 효과적으로 제고하면서도 경제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도시에 인접하여 원전단지가 위치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대규모 방사능 누출을 실질적으로 배제하고, 만일의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용적인 체계와 기술이 마련되고 확인되어야 한다.

또한 ‘국민 등 이해당사자들의 지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대이다.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원자력의 가치와 안전성을 인정받는데서 출발하며, 투명한 정책과 참여, 안전한 시설 운영, 효과적인 소통이 중요한 요소이다. 합리적인 토론문화가 미흡한 우리나라에서 당장 큰 효과를 보기 어렵더라도,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원자력정책을 정직하고 투명하게 꾸준히 추진하다보면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원자력의 지속가능성’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방안이다. 다행히 사용후핵연료의 단기적?장기적 안전관리를 위한 정부 정책방향이 수립되었는데, 이를 이행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처분장 부지와 관련기술의 확보를 위한 국가적인 노력과 함께, 최종 처분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와 우라늄 자원의 이용효율 문제를 동시해결을 겨냥하는 파이로-소듐고속로 연계기술이 상용화될 수 있다면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마지막으로 ‘핵심 인력 및 산업 인프라 유지ㆍ발전’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이는 국내 사업의 안정적인 추진, 더욱 적극적인 수출전략 추진, 효과적인 인력양성체계가 어우려져야 한다. 국내 원전건설의 둔화가 예상되는 시점에서는 특히 원전 수출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다.

저작권자 © 한국원자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