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중단시, 기자재ㆍ건설 협력사 '부도위기'…울산경제 마비
국민 눈과 귀 가린 포퓰리즘…원전 기여도ㆍ위험도 분석 후 손익 평가 따져봐야

[원자력신문] “충분한 검토 없이 정치적 논리로 탈핵을 결정할 경우, 어렵게 확보한 원전산업 경쟁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국내 10만여 원전산업 관련 종사자의 고용과 국가 기술자산의 유지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바람 앞의 등불, 풍전등화(風前燈火).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오래 견디지 못할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문재인 정부 출범 7일 만에 국내 원자력산업계는 시쳇말로 ‘풍전등화’ 신세가 됐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원자력 제로(zero), 안전을 지키는 대통령”을 핵심공약으로 내걸고 ▲월성 1호기 등 노후 원전 폐쇄 및 신규 중단 등 원전사고 걱정 해소 ▲신규 원전 전면 중단 및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로의 탈(脫)원전 로드맵 마련 ▲설계 수명 남은 원전의 내진 보강 및 설계수명 만료되는 원전부터 해체 추진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원자력안전협의회의 법적 기구화 ▲원전 안전관리 관련 업무의 외주 금지와 직접고용 의무화 등을 캐츠프레이즈로 국민들에게 한 표를 호소한바 있다.

또 10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는 문 대통령은 15일 미세먼지 감축 응급대책으로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해 일시 가동 중단(셧다운)”을 지시하면서 탈(脫)원전도 현실화되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등 탈핵NGO단체는 “문재인 대통령은 건설 중인 신고리 5ㆍ6호기를 포함한 신규원전 건설 취소는 물론 공정률 90%가 넘는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ㆍ2호기 등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운영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오는 6월 18일 영구정지를 앞두고 있는 고리 1호기를 기점으로 새 정부는 6개월 내에 탈핵에너지전환을 추진하기 위한 실행 기구를 신설하고 조직 구성과 필요한 법규 마련을 완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들 단체는 “국민들이 쓰는 전기(가정용)는 얼마 되지도 않음에도 원전 확대 정책으로 이익을 챙기는 집단들이 원전 축소를 반대하면서 ‘전기요금 올라갈 것’이라고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다”면서 “결국 싼 전기요금으로 수혜를 보는 대기업들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언론, 그리고 원자력공학자들이 원전 축소 공약에 비난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나 탈(脫)원전으로 국가에너지정책 전환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체 에너지사용량에 95%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현실부터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정을 이끌어갈 수장이라면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원자력발전의 기여도와 위험도 등을 분석한 후,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손익을 평가해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올바른 방향이다.

◆지구온도 2℃ 이하 낮추기 현실적 수단 “해법은 원자력
원전은 전 세계 선진국과 개도국을 포함한 195개 당사국이 “지구온도 2℃ 이하로 낮추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힘을 모으기”로 합의한 신(新)기후체제인 ‘파리협약(Paris Agreement)’에 따라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다.

원자력산업계 종사자 A씨는 “원자력은 국산에너지이며, 오염물질이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또 다른 산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효과도 있다”면서 “그러나 무엇보다 원자력발전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파리기후협약에서 약속한 배출저감을 달성할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세계원자력협회(World Nuclear Association)에 따르면 세계 각국은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와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책으로 원자력산업을 육성·추진하고 있다. 3월 현재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30개국에서 447기가 상업운전 중이며, 14개국에서 59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고 26개국에서 164기가 계획 중이다. 신규 원전 대부분은 유럽과 아시아, 중동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중 우리나라의 수주 가능성이 있는 시장은 UAE 후속호기를 비롯해 사우디, 이집트, 남아공, 체코 등 9개국 30여기다.

또 다른 종사자 B씨는 “대부분이 선진국이 원자력발전을 하고 있으며, 원전을 반대정책을 펼치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은 극히 예외적인 국가일 뿐”이라며 “탈원전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를 대체하자는 주장은 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일조량도 많지 않고 바람도 그 양과 방향성이 일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재생에너지가 기저부하를 담당하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는 태양이 없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도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대용량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설치하고도 예비(Backup) 발전소를 동시에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갈탄발전소를 예비발전소로 활용했고 그 결과 더 많은 공해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하게 됐다. 스웨덴 역시 신재생에너지를 건설해 이산화탄소를 배출을 억제할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천연가스로 예비발전을 하다가 보니 이산화탄소가 더 많이 나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스웨덴은 당초계획을 연기했다.

또 다른 종사자 C씨는 “올해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과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미래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해”라면서 “탈원전을 주장해 온 문재인 정부도 막상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책임감을 갖는다면 원자력발전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40년 원전 운영 ‘값싼 에너지’ 공급…에너지안보 기여
한편 우리나라는 지난 40년 동안 안전하게 원전을 운영하면서 값싸고 친환경적인 전력 에너지를 공급해왔다. 원전은 국가 산업 발전과 수출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는 한편 국민 삶의 질 향상과 서민의 에너지 복지에 기여해왔다. 또 2009년에는 UAE 원전 건설과 운영계약으로 약 77조원의 수출효과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성장 잠재력을 잃어가는 어려운 경제 여건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12월 현재 25기(2310만kW)의 원전 운영과 5기(신고리 4호기, 신한울 1ㆍ2호기, 신고리 5ㆍ6호기) 신규 원전 건설로 한 해 동안 약 36조2000억 원의 생산유발과 연 9만2000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거뒀으며, 부양가족까지 고려 시 약 30만 명 이상이 원전에 의한 경제활동을 영위 중이다.

원전 기자재업체 복수의 관계자들은 "특히 원자력은 국내 인력과 기술에 의해 생산된 준국산에너지이지만 다품종 소량생산이 특징인 기술집약적 중소기업형 산업으로 무엇보다 신규원전 건설 중단 시 다수의 중소기업의 인력 유지 및 공급망 이탈 가능성이 높다"고 토로했다.

실제 기자재 제작 분야는 소재 및 부품 공급사의 90%가 중소기업이 맡고 있으며, 건설(시공) 분야 역시 거의 모든 협력업체가 중소기업이다. 신고리 5ㆍ6호기 건설프로젝트의 경우도 4월 말 현재 종합공정률 26.98%인 상황에서 이미 512개 업체, 중소기업 인원만 최소 2만9000여 명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간사)은 “원전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막연한 불안감을 조장해 원전 건설을 중단시키고 국민 피해만 가중시키는 ‘탈원전 정책’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는 포퓰리즘”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공약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 의원은 “문 대통령이 공약대로 신규 원전건설을 중단한다면 지금까지 집행됐던 매몰비용은 신고리 5ㆍ6호기에만 1조5000억 원에 이른다”면서 “특히 신고리 5ㆍ6호기 지역주민들의 자율유치 신청에 의해 울주군의회의 가결을 통해 추진된 사업으로 건설이 중단될 경우 연인원 73만 명에 이르는 건설근로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등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지자체와 한수원, 해당기업 간의 법적 소송이 불을 보듯 뻔해 ‘국민소통’으로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송사에 휘말리고 등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며 “신재생에너지를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동감하지만 현재 공사 중인 원전을 아무런 대안도 없이 무작정 중단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와 리더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부산 및 울산ㆍ경남지역의 언론매체는 마치 “정부와 한수원이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중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식에 보도가 잇따르고 있어 확정되는 않은 정책에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일대에 건설 예정인 신고리 5ㆍ6호기는 신한울 1ㆍ2호기 건설 이후 추가수주가 없어 경영난에 직면했던 관련업계는 물론 수년째 이어진 조선업 불황으로 침체된 울산 지역경제 활성화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원전 기자재업계에 따르면 당초 2013년부터 주요 기자재 계약을 발주하고 2014년 9월 본관기초굴착 공사를 착수해 2020년 12월 준공을 완료할 계획이었던 신고리 5ㆍ6호기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국내 원전 품질서류위조 파문으로 안전성 강화 및 품질프로세스 개선사항 등이 적극 반영되면서 불가피하게 전체 사업 일정이 지연됐다.

실제로 신고리 5ㆍ6호기의 주기기 계약과 보조기기 발주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2~3차 벤더 기자재 중소업체들은 경영위기에 내몰리는 등 정부와 한수원에 조속한 계약 추진을 촉구하는 민원을 제기해왔던 터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건설승인 허가를 취득하면서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공사착수를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건설허가가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시공사와 기자재(BOP) 중소 협력업체 등 원자력산업계는 8조6254억 원 규모의 '초대형 건설프로젝트'의 봉인해제에 활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문재인 정부 출범과 더불어 원자력산업계는 다시 긴 한숨을 내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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