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건설-운영-계속운전 축적 ‘한국형 원전’ 기술의 산실
원자력계 ‘40년 퇴역기념’ 심포지엄서 안전 대국민 설명서 발표

“원자력발전소를 역사상 처음으로 건설해 1호기 준공식을 갖게 된 것은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도정에서 이룩한 하나의 기념탑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원자력시대로 접어들었고 과학기술의 커다란 전환점을 이룩하게 됐다.”

1978년 7월 20일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의 준공식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세계 21번째, 동아시아에서 2번째로 원자력발전국 대열에 합류한 감격스러움을 이 같이 언급했다.

그렇게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가압경수로형, 58만7000kW급)는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1978년 상업운전 개시 당시 부산시 전체의 연간 전력소비량 31억kWh보다 많은 47억kWh를 생산해 내 획기적인 에너지 생산설비로 평가 받았다.

준공 당시 설비용량은 58만7000kW로 당시 전체 발전설비용량 659만kW의 9% 담당했다. 원자력계 복수의 관계자는 “당시 고리 1호기 발전단가는 9.21원/kWh로 화력발전 발전단가 16.0원/kWh 대비 42% 저렴해 연간 약 210억원 이득(이용률 60%)을 거뒀다”면서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통해 1979년 2차 오일쇼크를 극복하고 1970년대 한강의 기적과 에너지 자립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고리 1호기는 또 한국 원전의 전문인력 양성의 요람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60년대 초 국내 인력들은 선진국에서 원전기술을 습득했으나 고리 1호기 경험을 토대로 기술인력 양성의 자립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됐으며, 이는 우리나라가 UAE 원전 수출 등 국내 원전 건설·운영기술을 수출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원전 강국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됐다.

외국 기술과 자본을 통해 들여온 고리 1호기 운영 경험을 토대로 24기의 원전을 건설해 최고의 실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원전 연평균 이용률은 1978년부터 1990년까지 64.6%에 머물렀지만 1991년부터 2000년까지 80.3%, 2001년부터 2011년까지는 91.9%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2010년 기준으로 세계 평균 79%를 훨씬 상회하는 운영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고리 1호기는 2015년 4월 21일 원전 누적 발전량 3조kWh를 달성하기까지 중추적 역할을 하며, 전력수급 안정에 기여해왔다. 2004년 7월 1일 단독으로 전력 누계생산량 1000억kWh를 달성했으며, 이후 2014년 말까지 1436억kWh를 생산했다. 누적생산량은 서울시 3.1년(465억 5000만kWh, 2013년), 울산공단 5.6년(255억 1000만kWh), 현대제철 당진공장 26.2년(55억kWh, 우리나라 전력사용량 1위 공장)의 사용분이다.

고리 1호기는 2014년에도 45억 4000만kWh의 전력을 생산했다. 이는 부산시 연간 주택용 전력량(2014년 기준 44억 7000만kWh), 경기도 안양시가 1.8년간 사용하는 전력량(2014년 기준 24억 6000만kWh)과 동일하다.

이처럼 우리나라를 세계 5위의 원자력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묵묵히 ‘맏형’의 역할을 수행해왔던 고리 1호기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오는 19일 0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 이후 수행되는 해체와 폐기물 관리를 통해 우리나라 원자력산업의 전주기적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중앙제어실 전경/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온실가스 감축 유력대안…원자력민영화·원전해체 활용 방안 논의
원자력계가 ‘40년 한국원전’ 역사를 상징하는 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정지를 앞두고 그 의미를 되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8일 한국원자력학회와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한국원자력산업회의가 공동으로 서울대학교 글로벌공학교육센터(38동 5층 시진핑홀)에서 ‘고리 1호기 퇴역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황주호 한국원자력학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오는 18일 자정을 기점으로 영구정지될 예정인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명실공히 한국 원전을 대표하는 원자력발전소로 자리매김해왔다”고 언급했다.

특히 황 회장은 “고리 1호기를 필두로 한 후속 원자력발전소들은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준국산 에너지원으로서 우리나라의 경제와 산업발전에 큰 기여해 온 것은 물론 우리나라는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원전 건설 기술과 운영 기술을 개발해 원전설계 기술 표준화를 거쳐 원전 수출을 달성한 원전 기술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며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 40년간 우리나라 원전산업의 공과를 짚어보고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고자 마련된 자리”라고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은 ‘고리 1호기와 한국 원자력 40년, 새로운 시작의 모색’을 주제로 ▲원자력 온실가스ㆍ미세먼지에 대응한 유력한 대안 ▲원자력 민영화 방안 ▲원전 해체 전 활용 방안 등 다양한 발표와 논의가 이어졌다.

먼저 이창건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원장은 ‘고리 1호기 가동 40년의 정치, 경제, 사회적 의미’란 주제발표에서 “실상, 파괴용 무기로 사용되는 핵분열 반응을 이용해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 발전수단 전용(轉用)에 이바지한다는 떳떳함이 있다”며 “다시 말해 아인슈타인의 얘기처럼, 태양에서 비롯된 재래식 에너지가 아니라 두뇌로 창출하는 에너지 길들이기에 참여한다는 보람”이라고 설명했다.

또 “원전은 개도국이던 우리가 선진공업국 대열에 진입하는 방편임을 과시하는 사례로 인식된다”면서 “특히 현재는 경제적이고 안정된 전력공급 참여와 함께 온실가스, 미세먼지 배출억제에 앞장선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원자력 40년의 성과와 공헌’를 주제로 “원자력은 안정적 전력공급과 낮은 전기요금 유지에 기여함으로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낮은 전기요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특히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대응의 유력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또 노 연구위원은 원전대체 비용과 온실가스 영향에 대해 “3조 kWh를 하루(over-night)에 화력발전으로 대체한다고 가상적 상황을 설정할 때, 대체 전력생산비용은 445조 4천억원이 소요되며, 이는 2014년 국내총생산(GDP)의 23% 수준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20억톤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원전과 신재생의 상생 주제에 언급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 태양광 발전 증가로 과대발전, 출력증감 요구량 증대 ▲독일, 재생에너지 발전 증가로 전력도매 가격이 (-)로 형성되는 시간 다수 발생 ▲2014년 10월 일본 6개 전력회사, 재생에너지 발전 구매 디폴트 선언 ▲2015~2016년 기간 제주풍력 9회 감발 발생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노 위원은 탈원전, 탈석탄 동시 추진과 관련 “설비예비율 확보를 위해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이미 계획 중인 신규가스 10.1GW 외에 30~40GW 추가로 필요하다”면서 “2005~2014년 기간에 독일 주택용 전기요금은 78% 인상됐다”며 전기요금 및 국민경제 파급효과 문제를 강조했다.

이어 이른바 탈핵시나리오 파급영향에 대해서 노 위원은 “원전 대체발전원에 따라 가스 14조원, 신재생 43조원의 추가부담이 발생한다”며 전기요금 인상요인에 대해서는 신재생 79.1%로 추산했다.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은 ‘고리 1호기 해체전 이용방안’ 주제발표에서 “고리1호기는 산업적, 기술적,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의미의 재정립과 공유가 필요하다”면서 “해체 시범원전의 역할뿐만 아니라 운전ㆍ정비 교육시설, 안전연구, 견학시설 등으로 다양한 방안이 가능할 것이다. 고리 1호기 영구정치 후 활용계획이 구체화하면 이를 추진할 법적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이정훈 주간동아 기자는 ‘한국 원자력 험지(險地)로 나가라, 국영에서 민영으로’란 발제문에서 “공기업이라서 더 비난받는다. 4개 본부를 각개 회사로 분할해 민영화하고 경쟁을 붙여야 한다”면서 “민영화한 각개 회사에 지자체도 지분 참여, 즉 포로 축구팀과 연고지처럼 엮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 기자는 “지역주민들 고용을 확대하고 원자력 전문학교 설립 등 지역산업이 돼야 한다”며 “지역과 하나가 되는 민영화가 필요하고 그 스스로가 존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을 공동 주최한 3개 기관은 ‘원자력 안전과 편익 대국민 설명서’에서 “일부 종사자가 도덕적으로 해이하고 규정 준수에 소홀했다는 점에서 우리 원자력계 모두가 공동 책임감을 갖고 대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미국의 미래를 위해 원자력이 필요한 이유’를 부제로 단 설명서는 “탈원전 정책이 입안된 기저에는 원자력에 관한 여러 사실이 왜곡되고 위험이 과장된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시정하려는 노력을 다하지 못한 저희들의 잘못도 매우 크다”며 “그래서 원자력 40년의 공과를 기념하는 오늘 저희는 원자력의 안전과 편익에 관한 여러 사실들을 제대로 알림으로써 국민들께서 원자력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감을 다소라도 덜어 드리고 그 필요성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자력이 필요한 이유 9가지를 ▲안전성을 실증한 오랜 가동 이력 ▲지진에도 강건한 원전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및 처분 ▲세계 최저 수준의 전기료 ▲ 준국산이라 에너지 수입액 절감 ▲ 기술자립으로 외화 획득과 고용창출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걱정없는 환경보호의 주역 ▲에너지 안보의 주역 ▲원전의 지속적 이용은 세계적인 대세로 제시했다.

◆전 세계 가동원전 중 35% 151기 계속운전 중
영구정지란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원자로시설 등의 운영을 영구적으로 정지하는 것으로 영구정지를 위해서는 법에 따라 운영변경허가를 받아야 한다. 원자력발전소가 영구정지 되면 원자로에서 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인출하여 더 이상 발전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구정지 후에는 사용후연료와 방사선 안전관리를 위한 설비들만 운영하게 된다. 이러한 운영상의 변화를 사전에 허가받기 위한 과정이 영구정지 운영변경허가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의 원전 선진국들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비, 운영기술의 발달로 설계수명 이후에도 충분히 안전성 확보가 가능하며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원 확보와 에너지 안보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장기 가동 원전에 대해 계속운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야말로 원전의 ‘계속운전’이 세계적인 추세다.

현재 전 세계 가동원전 총 443기 가운데 290기가 계속운전을 하고 있거나 승인을 받았으며, 영구정지 원전은 157기이다. 미국은 현재 100기의 원전(2013년 12월 기준)을 가동하고 있는데 이중 72%(72기)가 계속운전을 승인했고 66%(66기)가 30년 이상 운영 중이며 28%(28기)가 40년 이상 운영 중이다. 미국의 원전 운영허가기간은 40년, 계속운전 허가는 사업자의 신청에 따라 20년 단위로 허용하고 있다.

영국은 총 16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30년 이상 운전 중인 원전은 5기이다. 영국은 운영허가기간에 제한이 없어 ‘주기적안전성평가(PSR)’을 수행해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계속운전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영국 외에도 주기적안전성평가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캐나다,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이다.

캐나다는 2~5년 주기로 운영허가기간을 갱신하는데 2013년을 기준으로 원전 9기는 30년 이상 계속운전을 하고, 2기는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다. 또 프랑스의 경우 대부분이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 가동된 원전이며 안전성평가를 통해 34기 모두 40년 운전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페인은 주기적 안전성평가를 통해 10년 단위로 운영허가 갱신을 하고, 러시아는 계속운전기간을 15년 또는 25년으로 확대해 원전 수명연장을 허용하고 있다. 스페인의 가로나 원전과 러시아의 비빌리노 1호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30여년이 흐른 이른바 ‘노후원전’을 둘러싼 찬반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운영허가 기간 30년이 만료된 후 10년의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가동 중인 월성 1호기에 대한 계속운전 여부를 두고 그 논란의 중심에 있다.

원자력계 복수의 관계자는 “1세대 원전들을 시작으로 운영허가 기간만료가 차례로 도래하게 되는데 세계의 원전들은 기술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되면 계속운전을 하도록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책적, 사회적 수용성의 바탕이 미흡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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