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과 42년을 함께 보낸 한 필부(匹夫)의 과학자가 말씀 올립니다

장문희 前 한국원자력학회장

대통령님께서는 2017년 5월 10일 국민 앞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환호하고 박수를 쳤습니다. 미꾸라지가 용(龍)이 될 수 있는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질 것으로 믿었으니까요.

탈(脫)원전을 주창하셨습니다. 신규 원전 건설계획은 취소하고, 운영허가 연장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매몰비용 때문에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은 공론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공론화가 공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건설반대는 활개를 치며 주장을 하고 있고, 건설계속은 손발이 묶여 있습니다. 출발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공평하지 않으면 결과는 정의롭지 않을 텐데요

국회입법처는 신고리 5ㆍ6호기 건설을 중단할 경우 발전 추가비용으로 15년간 4조원을, 가스발전으로 대체할 경우 년 간 3400억원(15년 간 5조 1000억원) 비용추가를 전망했습니다. 돈 더 써서 더 비싼 에너지를 얻게 되네요. 에너지안보를 흔들고, 산업생산을 불안정하게 하고, 국가재정에 손실을 입히며, 국민 부담을 증가시키는 4중고를 초래할 듯합니다. 그래도 기울어진 운동장 게임인 공론화를 계속 추진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로움을 널리 베푸는 것(弘益)이 정치 아닌가요.

원자력계가 과거의 영광에 집착해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가능한 전력생산 대안이 준비되지 않은 채 원자력을 문제아, 천덕꾸러기 취급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역할이 끝나면 원자력은 자연스럽게 무대 뒤로 사라질 것입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에너지원이 찾아지면 말입니다. 그때까진 원자력계는 묵묵히 국가와 국민을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 할 겁니다. 안전으로 국민의 안심을 얻도록 최선을 다 할 겁니다. 약하고 부족한 부분은 기술개발로 보완하고 채우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연구개발까지 막으시니 너무 심하십니다. 원자력을 그냥 아사(餓死)시킬 모양입니다. 동서고금에서 이렇게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인 듯합니다. 과학기술을 무시하고 우리 능력을 스스로 비하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게 겨우 100년 전 일입니다.

북한주민을 이롭게 하자는 것이 오매불망(寤寐不忘) 꿈 아니신가요. 통일과 화합을 위한 노력이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깜깜한 북한을 밝힐 통일전력은 어떻게 구하실 겁니까. 전력 예비율을 22%가 아니라 100% 이상 준비해야 북한을 밝힐 수 있지 않나요. 바람은 불지 않고, 태양은 구름 속에 숨고, 가스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른다면 어디에서 전기를 얻으실 계획입니까. 준비 부족으로 북(北) 때문에 남(南)이 어려워지면 그 불만과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시렵니까.

타산지석(他山之石)은 남의 경험을 유익하게 활용하라는 것이지요. 전 세계를 경악시킨 후쿠시마 원전사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국가 에너지정책을 원전 재가동으로 선회하였습니다. 2030년까지 원전으로 전력을 20~22%까지 공급하겠다는 것입니다. 원전 정지 후 가스 등 연료의 수입으로 5년간 무역역조가 발생했고 전기요금도 올라가 일본국민과 산업이 지쳐서 기진맥진한 후였습니다.

일각에서 우리나라는 신재생 이용이 OECD 최하위권이라고 비난합니다. 경제선진국인 OECD 회원국은 글로벌 동반성장을 위해 나름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지 일사불란하게 같이 움직이는 조직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부 회원국이 신재생에너지 지향정책을 채택한다고 해서 모든 회원국이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우리와 유럽은 에너지원 환경이 다른 것을 대통령님도 아시잖아요. 내 환경이 안 되는데 왜 구태여 돈 들여 그들이 한다고 따라가려고 하십니까? 내가 큰 돈 들이지 않고 잘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친구가 장에 가니 지게지고 따라간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라는 경고이지요.

유럽은 산이 없어 해풍이 내륙 깊숙이까지 거침없이 불어옵니다. 풍력 발전 환경이 매우 우수하지요.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산이 국토의 70%입니다.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풍차를 세우고 갈팡질팡 바람을 기다릴 실겁니까. 풍성한 숲을 헤치고 태양광 모듈을 설치하시려고요. 가성비(價性比)가 나쁘고 안정성과 지속성이 없잖아요. 대규모 전력수요지인 대도시와 산업단지에 세울 가스 발전은 또 어떻습니까. 해상수송과 내륙수송의 문제와 저장, 주민수용성 문제를 극복할 자신은 있으십니까.

우리 경제와 산업은 분명히 전력 의존적입니다. 전력수요관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스발전과 풍력, 태양광 발전을 증대하시겠다고요. 막대한 연료비, 낮은 효율성, 예비전력 준비, 환경 폐해, 주민 수용성 문제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셨는지요. 아니면 脫석탄, 脫원전 이후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공장에, 가게에, 가정에 제한공급을 하시려고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위치가 너무 과분한 봅니다. 설마 보리 고개 굶주림과 호롱불, 관솔불이 우리에게 더 어울린다는 것은 아니지요.

대한민국은 머리와 기술로 일군 나라입니다. 국가가 전문가를 키웠습니다. 전문가는 선공후사(先公後私) 헌신충국(獻身忠國) 하였습니다. 원자력전문가는 머리로 에너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이젠 전문가가 설 땅이 없네요. 에너지전환도 국가안보도 전문가 기술과 머리(정책)로 하지 않고 책상이론으로 좌지우지 하려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유세객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생각납니다.

외국에서 설움을 참으며 원전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자립하여 마침내 2009년 UAE에 원전을 수출한 명실상부 원자력기술 수출국이 되었습니다. 우리 보다 앞선 선진국이 놀란 기술입니다. 그 기술들이 사라질 운명입니다. 脫원전으로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진 전문가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챙겨주지 않는데 그들이 갈 곳은 어딜까요? 우리 경쟁국이, 후발국가가 데려 가고 있습니다. 그들을 배신자라고 부르지는 마십시오. 마피아로 비난받고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하는 처지에 이 땅에 설 곳이 없잖아요.

9월 28일 평택 해군 제2함대 기지에서 가졌던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대통령님께서는 “국방력에 기초한 평화”를 국민에게 제시하셨습니다. 또 “北은 핵무장해도 南은 非核武裝(탈핵)이어야 평화가 가능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두 말씀이 같은 의미인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평화는 양자의 힘이 비슷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요. 그 것이 비록 “긴장의 평화”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脫원전, 脫핵을 하면 기술망실로 우리 미래 잠재력까지 없어질 텐데요.

헌법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갈등공화국으로 부릅니다. 여의도에서, 도시와 시골에서,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찬성과 반대가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등(葛藤)은 칡(葛)과 등나무(藤)의 싸움을 일컫는 말이잖아요. 두 나무는 꼬아가는 방향이 서로 반대이기에 같은 나무에 의지해서 자랄 때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상대방을 짓누르려고 심한 자리싸움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칡과 등나무가 얽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의 핵무장 억제, 한미 안보동맹 갈등 해소, 한미 FTA 재협상, 수출 감소 대응, 중국과 사드배치 충돌, 평창 동계올림픽 위기 등, 국가 안보와 국익 그리고 국격과 관련된 난제는 젖 먹던 에너지까지 보태야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그 중요한 에너지를 우리 내부에서 갈등으로 소진하고 있지는 않나요. 영화 「판도라」는 흥미를 위한 영화일 뿐입니다. 눈물을 흘리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다큐멘트리로 보지는 마십시오. 전문가 의견에 귀를 열어 보십시오. 왜 대통령님 마음에 들면 화타(華佗, 중국 후한 말 유명한 의사)이고, 의견이 다르면 적폐인(積弊人)입니까.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여부에 대한 공론화 결론이 며칠 남지 않았네요. 전문적, 정책적  판단을 왜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맡기십니까. 앞으로 모든 정치와 행정을 공론화를 통해 하실 생각이십니까. 여의도도, 과천도, 광화문도, 세종시도 필요 없겠습니다.

대통령님, 대한민국은 5년이 아니라, 지구가 종말을 맞을 때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 깜깜한 밤, 우주에서 내려다 본 밝은 ‘빛의 대한민국’ 사진을 보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후손들도 같은 자부심을 가지고 살도록 해주십시오.

脫원전 반대, 脫원자력 반대가 원자력 마피아들의 먹거리 보호라고요. 절대 아닙니다. 국가와 후손을 위하고 일자리를 위한 간절한 청원입니다. 원자력과 42년을 함께 보낸 한 필부(匹夫)의 과학자가 어렵게 말씀 올렸습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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