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원인 지진‧쓰나미 ‘자연재해’서 출발했지만
동경전력-규제기관 기형적 관계가 부른 ‘인재’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모습

“후쿠시마 원전을 제외하고 당시 진앙(震央)지로부터 더 가까웠던 오나가와 원전을 비롯해 50여기가 넘는 원전들이 안전하게 대처해 피해가 적었던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자연재해’에서 출발해 ‘인재’라는 대형사고로 발전한 인류역사에서 뼈아픈 참사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껏 많은 언론에서 다뤄졌듯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원인은 핵분열에 의한 폭발이 아니다. 지진으로 전력 공급이 중단되고 이어지는 지진해일로 원자로 비상노심냉각 기능이 상실되면서 원자로에 냉각수 공급에 차질이 생겼으며, 냉각재 수위가 낮아지면서 연료봉이 노출되어 온도가 상승하였으며 고온에서 연료봉 피복재가 산화함으로써 수소가 발생했다.

이때 발생한 수소는 원자로에서 격납용기 내부로 배출되어 모이는데, 격납용기 보호(파손 방지)를 위해 수소를 격납용기 외부로 방출하는 과정에서 누출된 수소가 격납용기를 둘러싼 건물인 원자로건물 상부에 축적되고 공기와 반응해 폭발(수소폭발)하면서 방사능이 누출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원자력계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각종 안전장치를 차단한 상태로 무리한 시험 강행으로 발생한 중대사고로 원자력 안전문화의 출발지였다면,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설계기준 초과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로 극한상황에서의 대처 능력의 확보가 필요한 점은 결국 규제의 완벽한 실패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2011년 3월 11일 지진과 해일의 습격을 받고 4시간여 만에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는 냉각수 공급이 되지 않아 반응로의 물이 증발해 줄어들었고 연료봉이 녹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쿄전력 사장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이 때문에 초동 대처할 시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또 12일에는 1호기가 첫 수소폭발을 일으키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에 바닷물을 주입하기로 결정”했지만 도쿄전력은 발전소 폐기가 우려돼 이를 무시했다. 공공성보다 이윤을 중시한 민간기업의 한계였다.

이후 3, 4호기 순으로 수소폭발이 이어지면서 그로인해 휘발성 방사성물질인 요오드, 세슘 등이 환경에 방출됐다. 이에 보다 못한 미국이 “일본 정부의 대처가 미온적”이라며 빠른 해결을 촉구하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는 자위대의 CH-47헬기와 고압 소방차, 경찰의 특수 살수차 등을 주수작업 투입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7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관료제의 비효율’과 ‘동경전력과 규제기관의 기형적 관계’ 등이 도마에 오르지만 대체로 전문가들의 의견은 ‘자연재해’가 아닌 분명히 ‘인재’라는 점이다.

그러나 교훈도 얻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자력 안전에 대한 자만심에서 벗어나 설비 자체의 신뢰성뿐만 아니라 ‘사람중심(원전종사자)의 안전문화’를 깨닫게 했다. 또 기술적인 조치 이전에 심층방어 개념의 확장, 제도적 건전성 등 안전 기준을 전면 재검토하고 안전규제를 위해 새로운 대안도 마련됐다.

실제로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내 전 원전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고리 원전의 경우 쓰나미에 의한 발전소 침수를 예방하기 위해 해안방벽을 7.5m에서 10m로 증축하고 비상디젤발전기실 등 침수 가능지역에 침수 방지용 방수문 설치를 추진했으며, 방수형 배수펌프를 확보했다.

그리고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및 사용후핵연료 저장조에 비상냉각수 외부주입 유로를 설치해 격납건물손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피동형 수소제거설비 및 격납건물 여과배기설비를 도입했다. 또 사고대응에 임하는 요원보호 및 지휘·통제에 필요한 비상대응거점 마련을 추진하는 등 후쿠시마 후속대책을 이행함으로써 원자력 안전성을 한층 더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웃나라 재앙이 ‘한국사회’ 脫원전 바이러스로 몸살中
쓰나미 덮친 오나가와 원전 피해 적었던 교훈 되새겨야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일본의 안전신화’가 무너지는 상황을 가까이에 지켜본 국민들은 원전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깊다. 특히 2016년부터 원자력 관련시설이 밀집된 경주와 포항지역에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자연재해와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문재인 정부 출범과 더불어 탈(脫)원전 기조를 내세운 에너지전환정책이 탄력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7주년을 앞둔 지난 9일 환경운동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한지 7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고는 진행 중”이라면서 “녹아내린 사용후핵연료 때문에 발전소 내부는 접근조차 불가능하며, 매일 수백 톤의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고 있다. 수만 명의 피난민과 이재민은 여전히 높은 방사능 오염으로 건강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환경운동연합은 “후쿠시마 사고가 보내는 경고와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드디어 한국도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탈핵에너지전환의 방향으로 변화를 시작했다”며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탈핵을 시작한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탈핵 시점을 더 당기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전 사회적 협력과 실천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환경운동연합은 “지진발생위험 지대에 지어진 월성 1~4호기를 비롯해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원전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조기에 폐쇄해야 한다”며 “더구나 포화상태에 다다른 고준위폐기물에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에서 조기폐쇄는 폐기물의 발생량을 줄이고 포화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원자력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연구와 원전 수출은 원자력발전과 본질적으로 같은 위험을 갖고 있다. 또 주민 동의도 없이 추진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와 고속로 등의 추진과 연구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원전 수출을 위한 정책지원과 혈세 낭비를 전면 중단하고 더 이상 후쿠시마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탈핵에너지전환을 더 빠르게 만들어가자”고 강력히 촉구했다.

한편 후쿠시마 원전사고 7주년을 바라보는 세계원자력계 복수의 관계자들은 “중대사고의 가능성은 철저히 줄여야겠지만 앞으로 인적오류, 조직적 결함 등을 줄이도록 안전문화에 대한 투자와 강조가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동경전력 후쿠시마 사고조사 검증위원회 위원장과 일본학술회의 원자력사고대응 분과위원장을 지낸 겐키 야가와(Genki Yagawa) 일본 도쿄대학교 명예교수는 지난해 한수원이 주최하는 ‘원전 안전성증진 심포지엄’에 참석해 “후쿠시마 사고는 일본 원자력계가 ‘일본의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하다’는 기본가정에 빠져 안전체계가 효과적이지 못했던 데에서 발생한 제도적 실패(Institutional Failure)로 규정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면서 겐티 야가와 교수는 “동경전력을 비롯해 원자력(전력)산업계 뿐 아니라 규제기관과 정부(중앙정부 및 지자체 등)의 기형적인 역피라미드 관계가 명백히 잘못된 구조였으며, 이 같은 상황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인류의 최대 참사를 불러왔다”면서 “이해관계자 모두가 지속적인 안전개선의 추구를 공통의 목표로 삼고 제도적(규제) 측면의 결함에 대한 문제제기와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안전성 확보 체계를 강화해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겐티 교수는 “더불어 후쿠시마 사고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나미가 덮친 동일한 재앙에서도 안전하게 정지하고 사고로 진전되지 않았던 일본의 나머지 50기 원전으로부터 성공교훈을 얻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오나가와 원전은 모든 원전과 배수펌프가 해수면 14.8m 위에 위치했고 지진대비 강화조치가 2010년 6월 완료됐으며, 외부로부터의 5개 전원 중 1개가 정상 작동됐다. 또 지진과 쓰나미 발생 후에 약 360여명의 지역주민이 발전소내로 대피해 위기를 모면했다. 이는 원전 안전이 단순한 설비 가동연수보다는 운영관리, 즉 원전종사자의 안전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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