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송유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에너지전환 정책 평가와 제언

에너지 전환 정책 성공을 위한 기본전제
2017년 12월 29일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발표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 로드맵과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던 만큼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한 기대도 클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기존 에너지 정책을 넘어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내용이 구체화되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물론 전력수급기본계획이 15년, 에너지기본계획이 30년을 전망기간으로 하는 것과 같이 전력·에너지 정책은 장기전망 하에 기초한다. 취임 6개월 만에 기존 에너지 정책의 기본 틀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보수 정권 10년은 꽤 긴 시간이었다. 무분별한 원전 확대, 민간까지 진출한 석탄화력, 에너지 재벌의 천연가스 직수입과 민자 천연가스 발전의 급격한 성장 등이 바로 그 10년 동안 강하게 추진되었었다. 하필 민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산업 민영화·시장화 전략의 결과가 철저히 반영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진정성을 확보하고 힘 있는 추진력을 갖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구체적인 전환 기획과 경로, 주체의 재설정이 필요하다.

탈핵로드맵과 마찬가지로 이번 8차 계획 역시 원전과 석탄 비중을 줄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계획대로 하더라고, 문재인 정부 시기 원전과 석탄 비중은 역대 최고 수치로 늘어난다.

경제급전 논리가 우선하고 기저전원에 대한 보수적 인식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12년 뒤인 2030년이 되어도 2만MW가 넘는 원자력발전과 4만MW에 달하는 석탄발전은 역시 기저전원으로 기능할 것이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20%까지 늘리더라도, 높은 기저전원 비중에 의해 여전히 질식당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만 양적으로 늘어난 것에 그치고 말 것이다. 원전과 석탄을 일정기간 대체하고 재생에너지를 백업해야 할 LNG 발전은 CP(Capacity Price, 용량요금)와 SMP(System Marginal Price, 계통한계가격) 제도가 존속하는 한, 에너지 전환을 위해 소요되어야 할 비용을 천연가스 직수입자와 민자 LNG발전사업자들이 착복하는 애물로 전락하기 쉽다.

이렇듯 민영화·시장·경쟁을 위해 세팅해놓은 전력거래제도 등의 규칙을 유지하고, 에너지 전
환에 저항할 가능성이 큰 민간기업의 성장이 계속되며, 주체가 되어야 할 공기업들의 공공적 역할을 강화·재조정하지 않는다면, 에너지 전환은 공허한 선언에 그치고 말 것이다.

물론 한국사회에 적합한 장기 에너지 MIX 방안을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현재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목표시점과 경로 등 방법론이 부재한 것이 사실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기저전원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 전력거래제도 재편 및 규제와 시장의 분리 공기업(한전과 발전자회사 및 가스공사 등)의 공공적 역할 강화와 협력을 통한 공적 에너지 전환 정책 수립 재생에너지 시장에 대한 보호·지원과 동시에 시장의 성격·주체에 대한 규제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전력·에너지 정책이 보다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정부 사실상 산업부는 현재, 기존 질서를 바꾸기를 두려워하며 시장에 대한 규제에도 미온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보조금이건 지원정책이든, 원전과 석탄 억제 및 축소정책이든)은 근본적으로 시장질서 내에서 불가능하며, 공적인 기획 및 공공부문에 대한 개입과 참여(주체화)를 통해 가능하다.

이렇듯 에너지 전환 정책의 성격 자체가 시장에 대한 규제와 공적 재편을 반드시 요구하기에, 에너지 산업 전반의 체제 및 질서를 바꾸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자 전제가 되어야 한다. 즉 민영화·시장화·성과주의·발전주의 등 보수적 질서 하에 질곡이 되어버린, 에너지 공기업들의 체질·체제와 지배구조를 민주적·개방적 구조로 바꾸어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에너지 전환 정책 추진의 선결조건인 것이다.

우선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중심으로 원전과 석탄, LNG, 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해 분석해볼 것이다. 이 중 탈핵 로드맵 및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묻힌 이슈인, 석탄화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 최초로 민간 에너지 재벌에게 석탄화력이 허용된 것은 2010년 12월 5차 계획에서부터이고 2013년 1월 6차 계획에서는 그 경향이 강화되었다. 7차 계획은 과잉 설비로 인해 원전 2기 건설계획만이 승인되었으나, 5∼7차 계획의 결과 현재 7,000MW 이상 의 민간석탄화력이 가동 및 건설 중에 있다. 이번 8차 계획은 지역주민의 반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에 의해 논란의 정점에 있었던, 기존 석탄화력을 고스란히 승인하였다.

물론 석탄화력의 환경적 피해에 민간과 공공이 다를 처지는 아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한국의 기저전원에‘민간’석탄화력이 등장했다는 점은,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각종 반박을 제기할 꽤 강력한 저항 세력을 성장시켰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주요 쟁점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계획과 더불어, 백업 전원인 LNG 발전의 일부 기저화 및 이를 위한 제도적 방안 수립이 필요하다. 또한 원자력과 석탄화력 발전량에 대한 상한 설정을 통해 에너지 전환을 위한 단계적 프로세스를 계획해야 한다.

그런데 재생에너지에 대한 백업전원으로 LNG 발전의 역할은 시장가격으로는 불가능하다. 현재의 전력거래제도 역시 이를 수용할 수 없다. 더구나 발전회사들은 우후죽순 LNG 직수입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발전회사들이 천연가스 직수입을 통해 원료비를 낮추더라도 국가 전체의 전기요금을 낮추지 않는다. 연료비와 SMP 차액만큼의 자체 수익을 높일 뿐이다.

즉 에너지 전환 비용으로‘전환되지 않는’비용인 것이다. 더욱이 문제는 발전회사들의 LNG 직수입 요구가 탈핵·탈석탄이라는 정부 정책을 자사의 수익확대 기회로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LNG 발전의 공공적 역할이 보다 강화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정부 정책이 현재 부재하기 때문에, 시장은 오히려 에너지 전환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에너지 전환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력거래제도 및 시장에 대한 규제 등이 필요하며, 에너지 공기업들의 공공적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한전과 발전 자회사간 전력거래는 불필요하며 오히려 에너지 전환의 비용을 낭비하는 요소이다. 또한 중장기 적절한 에너지 MIX를 실현해나가기에 현 체제(원전과 석탄에 대한 자사 중심주의)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백업전원으로 LNG 발전이 제 기능을 하며, 난방용 연료인 LNG의 공공적 역할을 유지·확대하기 위해서는, 천연가스 도입·도매의 공적 기능 확대와 더불어 소매분야의 공공적 재구조화까지 고민해야 한다. 에너지 공기업 전반그리고 지자체까지를 포함한 협력 및 상호 보완적 관계 수립을 통해 에너지 전환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한 주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등 탈핵 정책에 대한 평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탈원전 로드맵은 신고리 5·6호기공론화위원회의 건설재개 결정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공론화위원회 과정 및 결정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몇 가지 정리해보도록 하자.

첫째,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경제주의·발전주의에 대한 몰입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원전의 일자리 창출, 수출을 통한 성장, 산업에의 타격, 전기요금 인상 등 모든 논리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주장은 간접경험으로 체득한 원전사고의 위험성, 원전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보다 훨씬 직접적이기에 국민들 혹은 공론화위원들에 대한 영향력이 더 컸다.

그러나 신고리 5·6호기 등 신규 원전이 창출하는 대부분의 일자리는 건설 및 지역자본과 연결된 단기 일자리에 불과하다. 사실상 양질의 일자리는 원전을 둘러싼 거대 자본 및 원전 학계, 엘리트 기술 관료들만의 것이라는 점이 간과되었다.

원전 수출의 경우,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의 탈원전 경향은 객관적 현실이며 이로 인해 미국·프랑스·일본·독일 등 기존 원전 종주국들은 자국에서 퇴출되었거나 사업영역이 축소된 상황이다. 이들이 바로 제3세계 신규원전을 주도하여 세계원전지도(선진국에서 제3세계로의)를 바꾸고 있는 주역들이다.

한국에서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끊임없이 틈새시장을 노리는 원전 수출 전략을 구사했으나, UAE와 같이 헐값 수주가 아닌 한 한국의 원전자본·기술은 막강한 원전 종주자본의 하위 파트너 이상으로 기능하기 힘들다.

결국 이번 국면은 정보통제·독점 및 원전건설 및 운영의 특성인 자본의 폐쇄성 등을 기반으로 구축된, 기술·관료 엘리트 및 원전운영·건설 회사 등의 상층부들이 누렸던 양질의 일자리 사수 투쟁(일종의 생존권 투쟁의 변형)이 중심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우리 국민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경제성장이란 유전자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일차 방어전에 성공한 셈이다.

둘째, 반면 탈핵 운동의 물리적·이론적 지반은 연약했다. 체르노빌 등 원전사고가 독일 등 유럽에 미친 영향,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과 달랐던 한국의 조건 등이 우선 간과되었다. 대표적 탈핵국가인 독일 바로 옆 나라 프랑스가 세계 2위 원전국가인 것과 유사하다. 프랑스와 같이 한국은 부존자원이 없고, 기계와 설비 수출 중심 국가이다. 원전은 여전히 고도의 기술 집약 산업 최상위에 존재하며 이는 경제성장·수출지향 발전국가, 일종의 국가 Name Power와 연결된 듯이 인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원전 반대 진영은 촛불 민심,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의 힘과 저력이 당연히 탈핵의 열망으로 이어질 것이라 낭만적으로 해석하였다. 더욱이 이번 공론화위원회 결정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둘러싼 것이라 ‘점진적 탈핵은 찬성하나, 신고리 5·6호기는 재개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셋째,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다.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촛불과 문재인 정부 탄생으로 이어졌지만, 절차·형식·내용 등을 포괄하는 실질적 민주주의 구현에는 갈 길이 한참 멀다. 무엇보다 첨예한 입장이 한 가지 결론을 놓고 대립하는 조건에서 짧은 기간의, 표결 민주주의가 갖는 한계는 모든 국가민주주의가 갖는 근본적 한계이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은 절차적 민주주의 시도를 숙의민주주의로 포장하여, 사실상 책임을 회피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급작스럽게 열린 공론화위원회를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 모두 몰입하는 선택을 했고 결국 한국사회 미래와 직결된 큰 논의는 링 안에 갇히고 말았다. 한국에서 특히 에너지 정책은 장기간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결정하는 중요 한 변수라는 점에서 이번 공론화위원회의 운영 전반에 대한 평가와 과제, 이를 둘러싼 향후 대안은 당분간 진지하게 거듭되어야 할 바이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둘러싼 논란이 지역과 환경운동의 영역을 넘어 확장되었다는 점은 큰 의의라 할 수 있다. 그 동안 탈핵 운동은 원전이나 방폐장 건설 지역 그리고 최근에는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과 연결되어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원전유치 혹은 Nimby의 경향과 맞닿아, 지역에서 대립하는 양상이었다. 원전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은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도 막연했으며, 탈핵에 동의하는 수준은 일종의 ‘정의의 영역’에 속하였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탈핵 로드맵이라는 용어가 사회화되었다.

신고리 5·6호기 논란을 통해 향후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 결정 전반의 장이, 한계적이나마 열렸다는 점은 큰 의의가 있다.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국가경제 발전, 산업성장의 토대라는 점에서 자본에 철저히 종속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신고리 5·6호기를 둘러싼 공론화·사회화 과정은 원전을 포함한 한국의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 및 집행 구조를 민주화시키는 계기로써 반드시 성장시켜나가야 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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