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민 300여명 참석, 한전·한수원 통합 반대 시위
전력노조·경주시민 몸싸움…토론회 시작도 못하고 연기

9일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바람직한 전력산업구조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 참석차 상경한 경주시민들이 한전과 한수원 통합반대를 주장하며 토론회장을 점거한 채 시위를 하고 있다.
한 번 잘못 끼워진 단추는 쉽사리 제자리를 찾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9일, 양재동 aT센터에서 '바람직한 전력산업구조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열린 KDI 용역결과에 대한 공청회는 이러한 상식적 말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이날의 공청회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신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대한 용역을 수행하면서부터 한전을 비롯한 한수원, 발전 5사 등 전력그룹은 물론 한전과 한수원의 통합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경주시민들의 이목이 집중된 행사였다.

예의 이날 공청회에는 '한전·한수원 통합 결사반대' 문구가 선명하게 박힌 노란 조끼를 맞춰 입는 경주시의회 의원들을 비롯해 경주시만 300여명이 공청회장 절반을 차지한 채 공청회 시작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또 한편에는 한전을 비롯한 전력그룹 관계자들과 시민단체 등의 관계자들이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공청회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공청회 시작 1시간 전부터 이미 공청회장은 만원이었고 등록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공청회장 밖에서 대기해야 할 정도로 열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공청회 시작 10여분 전, 공청회장 분위기는 마치 터지기 직전의 풍선마냥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닮아있었다.

오후 2시, 김영학 지경부 2차관의 인사말과 현오석 KDI 원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공청회가 시작됐다. 경주시의 입장을 고려한 주최 측의 배려인지 경주시의회 의원들의 입장 발표가 이뤄졌고, 그 직후 공청회장은 혼란에 휩싸였다.

한전과 한수원의 통합을 반대하는 경주시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연단을 장악해 한전과 한수원의 통합을 반대한다는 경주시민들의 입장을 밝히며 시위에 들어갔다. 경주시민들은 한전과 한수원 통합 논의는 주민투표를 통해 방폐장을 유치한 경주시민들을 우롱하는 짓이라며 정부가 한전과 한수원을 통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며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전달했다. 또 한전과 한수원을 통합할 경우 방폐장도 다시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주시민들의 격렬한 시위로 무산될 것 같았던 공청회 분위기는 김일헌 경주시의회 의장의 중재로 일단 공청회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진정됐다. 경주시민들이 좌석으로 돌아가고, 이수일 KDI 부연구위원이 용역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연단에 올랐다. 이수일 연구위원이 용역결과 발표를 막 시작할 즈음, 이경호 전력노조 총무실장의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대한 KDI 용역이 어떻게 해서 이뤄지게 됐느냐"는 돌발질문이 튀어나오면서 공청회장은 다시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경호 실장의 돌발질문은 결국 공청회 무산을 가져오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경호 실장의 갑작스러운 질문이 나오자 경주시민들 가운데서 '지금이 질의응답 시간이냐'는 고함이 터져 나왔고, '경주시민들도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느냐'는 대꾸와 함께 전력노조 관계자들과 경주시민들 간의 몸싸움이 벌여졌다.

서로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이어지면서 고함과 욕설이 터져 나오는 등 상황이 격렬해지는 순간, 누군가가 소화기를 분사하는 사태까지 벌여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화기 가루를 피하느라 몸싸움은 일단 진정됐지만 공청회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됐다. 결국 김영학 지경부 제2차관은 공청회를 진행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하고 공청회 연기를 발표했다.

김영학 지경부 제2차관은 "오늘 경주시민들의 의견도 충분히 들었다"며 "KDI 용역 내용을 토대로 신중한 검토를 통해 전력산업구조개편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공청회장을 떠났다.

2시간 남짓 한 혼란의 시간, 전력산업구조개편에 따른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뒤섞여 그야말로 '난장판' 그 자체였고, 정부가 추진 중인 신 전력산업구조개편이 얼마나 많은 혼란을 야기할 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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