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학회 ‘2018춘계학술발표회’ 16~18일까지 제주ICC서
원자력산업 생태계 붕괴 위기…종사자들 무심함 오히려 걸림돌

지난 10일 신고리 5호기 격납철판(CLP, Containment Liner Plate) ‘8-9단’을 성공적으로 원자로건물에 인양 설치했다. 기계 및 전기공사가 순조롭게 진행 중인 신고리 5ㆍ6호기의 종합공정률은 4월말 현재 33%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새울원자력본부

“원전수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야 원자력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가동원전의 안전지킴이 역할을 할 것이다. 원자력산업 생태계가 붕괴되면 중국산 부품으로 가동원전의 유지보수에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과거 원자력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내 에너지 현실에서 원자력발전을 통한 안정적, 경제적 전력공급 기반을 확보해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또 원전도입 이후 400억 달러에 달하는 UAE 바라카 원전수출 쾌거는 세계 5대 원전강국으로 위상을 확인했으며, 온실가스 감축 대응, 에너지 안보 등 경제, 에너지 여건을 고려해 원자력이 ‘희망의 클린에너지원’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자력계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치 않다. 원자력연구원 방사성폐기물 관리 부실폐단,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단 및 공론화, 그리고 8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른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및 신규원전 건설 백지화 등 그야말로 원자력계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인 상황이다. 과연 원자력계는 모든 악재를 털어버리고 ‘에너지전환시대’의 큰 파고(波高)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17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리고 있는 ‘2018 한국원자력학회 춘계학술발표회’ 개회식에서 김학노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 결정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연구개발 예산 확보가 여의치 않고 새로운 원전설계 일감도 없으며, 생산해 놓은 핵연료를 써야할 원전도 점검과 보수기간이 길어져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 회장은 “이에 원자력계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헤쳐 나가고자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올해 1월 26일까지 청와대의 국민청원을 두드렸지만 그 결과, 원자력계가 얼마나 호응했나를 생각해보면 진정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최근 원자력계 종사자를 조사한 결과는 20만이 넘는 데, 청원에 참여한 숫자는 그에 월등이 미치지 못했다. 진심으로 원자력계 종사자들은 '원자력'에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인구대비 원전밀도가 높다는 이유로 에너지전환정책에서 원전이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형 원전기술’은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체코 등 해외에서 선전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는 SMART를 교두보로 삼아 협력을 확대시키는 것은 물론 사우디가 추진하는 대형원전 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 숏리스트(Short list)에 ‘한국형 원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서 김 회장은 “해외에서 수출성공 스토리를 만들어야 원자력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이는 가동원전의 안전지킴이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산업생태계가 붕괴되면 가동원전의 유지보수를 중국산 기자재 부품으로 대체하게 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지금까지 세계 원자력계가 경험한 3건의 원전사고에서도 ‘인적실수’가 그 원인이었듯이 우수한 공학도를 키워내 원전사업에 투입해야만 원자력의 안전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담보할 수 있다”면서 “결국 원자력의 미래는 우수한 인재의 확보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최원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원자력 기술도입부터 해외수출까지 원자력이 이룬 성과는 많지만 원전 납품비리, 방사성폐기물 관리부실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 또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 정책관은 “이에 정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을 원자력R&D에서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고, 혁신성장 촉진과 미래 준비를 충실히 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미래원자력기술 5대 발전전략’을 수립했다”면서 “원자력 안전, 타 분야와의 융합, 해외수출을 위한 글로벌 협력을 보완․강화함으로써 우리나라 원자력의 종합적인 기술 역량, 혁신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학술발표회에 참석한 원자력계 복수의 관계자들은 “지난 4월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제1차 원전수출 국민대회’를 통해 원전 산업육성과 수출확대를 촉구하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은 물론 원자력계 내부의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준비됐지만 현직 종사자들보다 은퇴한 원로들과 대학교수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원자력산업계 종사자들이 약 30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원전수출 국민대회 등에서 확인된 원자력계의 무관심이 오히려 위기탈출의 걸림돌이지 않은가하고 우려된다”면서 “물론 의기소침하지 않고 자신의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자력계가 자부심을 갖고, 현재 원자력계를 둘러싼 ‘허와 실’의 진실을 바로 잡아 널리 확산시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원자력계 종사자 A씨는 “에너지는 산업경쟁력 및 국민 삶의 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에 국가의 에너지정책은 하루아침에 변경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며 “에너지정책 결정의 효과와 영향은 세대를 넘어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그 어떤 정책보다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종사자 B씨는 “전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를 줄이자는 신(新)기후협약에 대한 경제적 비용부담을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으로 원자력에너지를 꼽으며, 신규원전 건설에 나서고 있거나, 최소한 현재의 원전비중을 유지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면서 “에너지전환정책은 탈(脫)원전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정부를 지적했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원전 화재방호 등 12개 연구회 661편 논문발표
1969년 창립된 한국원자력학회는 원자력 관련 학술 및 기술 발전과 원자력 개발 및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로 현재 5000여명의 원자력계 전문가와 학생들이 12개 연구부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 원자력학회의 국제 학술지인 NET는 2007년에 확장판 SCI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됐으며, 현재는 핵심판 SCI 데이터베이스 진입을 추진 중이다.

원자력학회에 따르면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2018 한국원자력학회 춘계학술발표회’는 원자력안전에 관한 최신 학술논문에 대한 발표는 물론 산ㆍ학ㆍ연ㆍ관이 협력을 증진하고 앞으로 역할과 각오를 새롭게 다짐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국내외 원자력계 관계자 약 1600여명이 참석했으며, 에너지전환정책과 신기후체제(Post-2020) 발효 이후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안보, 남북 협력대비, 4차 산업혁명 등 다양한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원자력의 역할’이 재논의되고 있다.

또 원전해체,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 원전 화재방호 및 방사선방호,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한 가상원자로 개발 등 핵심기술의 원자력분야 연구와 적용방안 등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학술대회 첫날인 16일에는 ▲요르단 연구용원자로 JRTR 시운전 경험 ▲안전한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기술 개발 현황 ▲원자로 하부헤드 흠집부 정비기술 개발 현황 ▲가상원자로(Virtual Nuclear Reactor) 개발 전략 수립 ▲다수기 리스크 평가 ▲원전 화재방호 선진화를 위한 기술 개발 ▲방사선의학의 융복합 미래전략연구 포럼 ▲가동원전 사고관리계획서 및 스트레스테스트 수행 현황과 개선 방안 ▲APR1400 RCP Seal 국산화 개발 및 장시간 SBO시 Seal Loca 성능검증 ▲국내 안전기준 개선 워크숍 ▲원자력과 신재생 시너지 창출 가능 방안 모색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의 원자력분야 연구 및 적용방안 ▲원전 안전 및 기자재산업 활성화를 위한 원전부품설비 인ㆍ검증 기술 워크숍 등 14개 연구부회별 워크숍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또 17일부터 18일에는 ▲원자로시스템기술(Reactor System Technology) ▲원자로물리 및 계산과학(Reactor Physics and Computational Science) ▲원자력시설해체 및 방사성폐기물관리(Nuclear Facility Decommissioning and Radioactive Waste Management) ▲핵연료 및 원자력재료(Nuclear Fuel and Materials) ▲원자력 열수력(Nuclear Thermal Hydraulics) ▲원자력 안전(Nuclear Safety) ▲방사선 방호(Radiation Protection) ▲방사선 이용 및 기기(Radiation Utilization and Instrumentation) ▲양자공학 및 핵융합기술(Quantum Engineering and Nuclear Fusion) ▲원전건설 및 운영기술(Nuclear Power Plant Construction and Operation Technology) ▲원자력정책, 인력 및 협력(Nuclear Policy, Human Resources and Cooperation) ▲원자력계측제어, 인간공학 및 자동원격(Nuclear I&C, Human Factors and Automatic Remote Systems) ▲학생/청년 Competition Session 등 13개 세션으로 나눠 총 661편의 최신 연구 성과 논문이 발표됐다. 또 외국인 학생들이 제출한 논문도 상당수 발표됐다.

이번 학술대회 개회세션에서는 조석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에너지 전환시대의 원자력’를, 한삼희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이 ‘리스크 인식의 비합리성은 극복가능한가’를 주제로 특별강연도 원자력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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