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이용 찬성 국민인식조사 발표’ 後 원자력계 對 에너지전환포럼 맞붙어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두고 원자력업계와 재생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의 ‘갑론을박’은 독한 설전(戰)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지난 16일 한국원자력학회(회장 김학노)는 서울시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 과학기술포럼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2018 원자력발전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합리적 에너지정책 마련을 촉구하는 대정부 공개질의를 하였다.
원자력학회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월 7일부터 8일까지 만 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 원자력발전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원자력발전 이용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학노 학회장은 “전기를 생산함에 있어 원전 비중을 확대(37.7%) 또는 유지(31.6%)해야 한다는 비율의 합이 축소(28.9%)해야 한다는 비율에 비해 40.4%p 높았다”면서 “선호하는 발전원 두 가지를 선택하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태양광(44.9%)에 이어 원자력(29.9%)을 두 번째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원자력학회에 따르면 정부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는 찬반 비율이 45.5:50.1로 팽팽했지만 반대 비율이 다소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이 조사결과를 놓고 볼 때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골자로 하고 있어 국민에게 높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이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 때문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덕환 서강대 교수(에교협 공동대표, 과학기술포럼 감사)와 김명현 경희대 교수(한국원자력학회 수석부회장)는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위한 정부의 전향적 자세와 노력을 촉구하며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예측 오류와 전력설비 확충계획 수정 ▲온실가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실효적 대책 ▲전기요금 미인상 실현 가능성과 대책 ▲에너지 전환정책 국민의사 확인 방법 ▲월성1호기 조기폐쇄 및 신규원전 부지 해제의 근거 ▲범정부적 원전수출 실현 지원 계획 ▲원자력 인력 양성 및 유지 장기 계획 ▲사용후핵연료 대책 수립 촉구 등 8개 문항을 정부에 공개 질의했다.
김학노 회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이번 공동 기자회견을 계기로 정부가 국민과 전문가 의견에 보다 귀 기울이고, 우리 국민이 과도한 걱정 없이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백년대계를 만들어나가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원자력학회의 기자회견이 단초가 돼 탈원전과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찬반논쟁은 가열되고 있다. 지난 21일 에너지전환포럼(공동대표 홍종호·유상희·임성진)은 서울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원자력업계 에너지전환 흔들기, 도를 넘었다’란 주제로 전문가간담회를 열어 “원자력계가 최근 에너지전환정책에 공세를 펼쳤다”면서 “관련 정보를 사실과 다르게 왜곡하고 있다”고 공식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어서 주목을 끌었다.

◆원자력업계 에너지전환 흔들기, 도 넘었다=첫 발제자로 나선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원전 17조 시장 Vs 재생에너지 298조 시장, 에너지전환 일자리 희망의 견인차’란 제목의 발표를 통해 재생에너지 일자리 창출 효과와 산업 규모가 원자력보다 월등하다는 주장을 폈다.

유 연구원은 “에너지전환은 거대한 신산업”이라며 “따라가면 기회를 잡을 수 있는데 과거의 것을 버리지 못하면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에너지전환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재생에너지가 창출한 일자리수가 1000만개를 넘었다. 전 세계 6356GW의 발전설비 중 대한민국 비중이 117GW로 약 2% 수준이다. 따라서 1000만개 일자리 중 약 20만명은 국내에 있어야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약 1만 5000명 수준의 재생에너지 일자리만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에너지전환의 대세만 따라갔어도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일자리 문제는 상당부분 완화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 연구원은 “이미 한참 늦어버린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속도감 있는 에너지전환을 통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다 이루느냐, 구시대 에너지원에 대한 미련으로 경제의 파국을 맞느냐라는 기로에 서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각각 지닌 특성 때문에 전원 구성 시 상호 보완이 아닌 경쟁 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영환 홍익대학교 전기공학부 교수는 “에너지 믹스에서 발생하는 오해 중 하나가 원전이나 석탄과 같은 기저전원을 확보해야 에너지 공급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 점인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지금까지 원자력과 석탄은 기저전원으로서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거의 연중 상시 가동됐다. 원자력의 경우는 전력거래소 운영시스템(EMS)과도 연계가 돼있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원자로는 부하 변동에 따라 출력을 높이거나 낮추는 일이 불가능해 간헐성이 있는 재생에너지와 동시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또 “원자력이 지금껏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해온 것이 맞다”면서도 “과거 성공에만 집착해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자력공학과 교수들 모두 기술 전문가들이다. 요금으로 쟁점 만들지 말고 재생에너지 확대가 세계 흐름이면 원전과 공존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과학기술계 차원의 토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은 한전의 상반기 8000억원대 적자는 월성 1호기 폐쇄·엄격한 안전점검 등 ‘탈원전’ 때문이라는 원자력계의 주장에 반기를 들었다. 석 위원은 “원전 확대로 고유가를 극복한다’는 전력정책과 함께 정비기간 단축, 건너뛰기 등 무리한 원전가동으로 94%의 가동률을 기록했던 이명박 정부 시기 한전은 2008년 2조8000억원, 2011년 1조원 등 훨씬 큰 규모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며 “따라서 원자력계의 주장은 아전인수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석 위원은 “정작 문제의 핵심은 당시나 현재나 석탄, 가스 등 연료가격 상승에도 원가의 전기요금 반영을 막는 정부규제에 있다”며 “지난 4월부터 배럴당 70달러를 넘는 고유가상황에서 유연탄구입비용은 전년 상반기보다 28% 인상됐고 한전 발전자회사 연료비부담은 26.7%(2조원) 증가했음에도 2010년 정부고시에 도입된 ‘발전연료비 연동제’가 지금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저가요금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저가요금정책은 수요폭증, 한전 지원, 정전, 후방산업 부실화 등 더 큰 비용을 유발했다”며 “정부는 구태연한 누진제 논란에서 벗어나 연료비 연동제와 스마트미터 보급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세계적으로 원전산업이 사양화되는 이유는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양이원영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원전 가동률 떨어지는 건 안전성에 문제 있다는 것”이라며 “이를 그대로 두면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이 처장은 “세계적으로 원전산업이 사양화되는 이유는 안전규제 강화 추세로 인해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세계 원전이용률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70%대에서 60%대로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재생E 천만 일자리창출…구시대 에너지원 연연하면 경제 파국
급전지시·주파수 전압 조절 불가능…일반 발전원과 경쟁 못해

◆에너지전환포럼 “왜곡된 주장과 자료 제시=이 같은 에너지전환포럼의 주장에 대해 원자력계는 다음날인 22일 ‘에너지전환포럼 기자간담회 자료에 대한 항목별 검토의견’이란 제목의 반박 자료를 내면서 맞불을 놓았다.

원자력학회는 에너지전환이 기대만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으며, 신속한 에너지전환이 세계 시장진출도 보장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해
창출되는 일자리는 보조금이 줄어들면 없어지는 공공근로 성격 일자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독자기술과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에너지전환만 빨리 한다고 해서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진출에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원자력학회는 “시장 규모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며, 우리나라가 세계 시장에 진출할
기술과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원전은 재생에너지 시장에 비해 규모가 작다 해도 독자 기술과 원전 기자재 공급망을 확보하고 있어 세계 시장에 진출했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자력계는 또 재생에너지가 원전을 포함한 일반 발전원과 경쟁관계가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기상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결정되는 특성 때문에 계통운영자의 급전지시에 따를 수가 없고 주파수와 전압 조절이 안 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일반 발전원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설비가 급전불응 설비로서 전력을 들쭉날쭉 생산하기 때문에 다른 발전원이 여기에 맞춰 출력을 조절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긴다고 밝혔다.

특히 국가 간 계통이 연계된 나라에서는 전기 수출입을 통해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에도 재생에너지 발전 제한을 통해 수급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인 계통운영 관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무조건 전력계통에서 소비해야 한다는 전제보다는 재생에너지 발전을 제한할 필요가 있을 때 이에 따른 보전비용, 저장장치에 의한 발전량 저장과 그 비용, 그리고 원전 유지 시 발생 비용과 다른 전원으로 대체 시 소요 비용 등을 꼼꼼히 분석한 후 전원의 적정 구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전 적자가 탈원전과 무관하다는 에너지전환포럼의 주장에 대해서는 올 상반기 당기순손실 1조 2000억원에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따른 비용이 포함돼 있으며,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탈원전 정책 때문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비용을 제외한 영업 손실 8000여억원은 원전 이용률 하락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만일 원전 이용률이 60%가 아닌 80%였고 원자력과 가스 정산단가 차이가 40원/kWh라면 한전 영업 손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원자력계는 주장했다.

저작권자 © 한국원자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