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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방사선기술’ “병든 문화재를 치유하다”
영국 런던시 소재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전시된 고대이집트 유물 미이라.        사진=런던 김소연 기자

원자력기술이 문화재 분야에 적용된 대표적 사례는 탄소연대 측정법이다. 일반적인 탄소 원자보다 중성자를 2개 더 갖고 있는 탄소14(C-14)라는 방사성동위원소가 시간이 지나면서 붕괴하는 특성을 이용해 문화재 시료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연구용원자로에서 핵분열로 만들어진 중성자로는 문화재의 산지 및 편년을 추정할 수 있고, 투과력과 분해능이 뛰어난 중성자의 성질을 이용하면 문화재 내부 관찰이나 미세결함의 비파괴 검사가 가능하다. 나아가 방사선 조사를 통해서는 목재 문화재의 생물학적 손상을 일으키는 벌레와 곰팡이를 제어하기도 한다.

방사선을 방출하는 방사성물질과 달리, 방사성을 띄지 않던 물질에 방사선을 조사·처리한 것만으로 본래 갖고 있지 않던 방사선을 방출하는 일은 없다. 방사선을 방출하지 않던 문화재라면 방사선 조사나 처리로 더욱 더 안전해질 뿐 방사성물질로 변하지 않는 것이다. 방사선 처리 후 판매되는 반도체 부품이나 의료기구가 안전한 것처럼, 방사선을 조사한 문화재도 안전하다. 열이나 화학약품에 닿지 않고 파괴할 필요도 없어 도리어 더욱 안전하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해외 원자력기술 선진국을 중심으로 문화재 분석, 보존을 위한 방사선 기술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져 온 가운데, 우리나라도 이 분야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프랑스와 본격적인 협력을 준비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외국의 경우는 1950년대부터 문화재 분야에 원자력 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해왔다. 미국, 캐나다와 일부 중남미 국가들, 프랑스, 독일, 폴란드, 헝가리 등 유럽의 원자력 기술 보유국들은 원자력을 이용한 문화재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대학에서도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원자력청(CEA) 소속의 ARC-Nucleart가 1960년대부터 방사선 조사 기술을 이용한 문화재 보존 연구를 진행했으며, 1977년 이집트 람세스 2세 미이라, 지중해 중세 목조 선박, 시베리아 매머드 등의 보존에 방사선 조사를 통한 생물학적 손상 억제 기술을 활용했다. 

일본은 1978년 사이타마(埼玉)현 이나리야마 고분(稻荷山 古墳)에서 출토된 금착명철검(金錯銘鐵劍)의 상감에서 X선과 γ선 투과시험을 통해 115개의 문자를 발견했다. 2016년에는 구마모토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고문서와 고서적에 방사선을 이용해 방역처리하기도 했다.
포르투갈 에보라(EVORA) 대성당의 기단과 상단에 사용된 암석은 오랫동안 화강암으로 알려져 왔으나, 뫼스바우어 분광기법을 통해 기단과 상단이 각각 다른 암석인 화강암과 대리석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원자력硏-프랑스 ARC-Nucleart, 문화재 보존 기술개발 MOU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장 하재주)은 프랑스 원자력청(CEA) 산하 방사선 이용 문화재 보존 기술 전문 연구기관인 ARC-Nucleart(Atelier de Recherche et de Conservation Nucleart)와 지난 15일 ‘문화재 보존 및 복원 기술 개발 협력’을 위한 MOU을 체결했다. 또 양측 연구자들간 전문가 포럼도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수준의 방사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문화재에 이를 적용하는 연구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초보적인 수준으로, 이번 협력협정을 통해 해당 분야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이 분야의 기술 발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오존층 파괴물질을 규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에 따라 올해부터는 현재 문화재 소독처리에 쓰이고 있는 화학훈증제 사용이 금지되어 대체기술이 절실한 상황이다. 

프랑스는 희귀성 있는 한국 문화재의 보존 및 복원에 기여함으로써 자국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과학기술과 문화강국으로서의 입지를 한층 강화할 수 있어, 인류 문화유산 공동 보존을 목표로 관련 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는 목조 문화재 내부에 생긴 공동에 UPR(Unsaturated Polyester Resin, 불포화 폴리에스테르 레진)을 투입하고, 방사선을 투과하는 즉시 경화시키는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화학물질 처리에 비해 효율성은 높고 독성은 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원자력연구원은 금속이온에 방사선을 쏘여 항진균 기능을 가진 나노복합체를 제조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항진균제와 달리 주입 이후 주변으로 확산되지 않는 우수한 장점을 갖는다. 반면 프랑스의 방사선 이용 수지 경화기술을 적용한 문화재 보강은 진균류에 의한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양국의 기술을 접목할 경우, 2차 균류 침입과 같은 치명적인 단점을 보완할 수 있어 상호협력을 통한 시너지가 기대된다.  

2016년도 말 기준 국내에서 발굴된 총 유물 수는 약 180여 만점으로, 보존처리가 필요한 문화재는 그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발굴했지만 첨단 분석기술이 없어 현재까지 복원하지 못한 금동말안장 뒷가리개 유물의 복원을 위해서도 관련 기술 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영국 런던시 소재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전시된 고대유물                        ⓒ사진=런던 김소연 기자

◆목재부터 서적ㆍ의복까지 고대유물 ‘진단-치료-복원’ 적용
이밖에도 ▲수만 년 전의 유물까지 산지와 편년을 추정하는 중성자 방사화 분석기술 ▲세계 최고의 가치로 찬사를 받고 있는 고려청자 색 구현과 국보 숭례문 등의 단청 안료 복원에 이용할 수 있는 뫼스바우어 분광기술 ▲금동말안장 뒷가리개 복원 등에 사용하는 이온빔 분석기술 ▲문화재 내부에 숨겨진 또 다른 유물을 찾을 수 있는 중성자 토모그래피기술 ▲목재, 서적, 의복 등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나노복합재활용 방사선조사기술 등은 문화재 보존에 적용 가능한 첨단 방사선기술이다.

국내에서는 1970년대부터 중성자, X-선, 감마선, 방사성 동위원소 이용 측정분석 및 시험검사 기술 등 원자력 기술이 문화재 보존과학 분야 연구에 이용해왔다. 원자력연구원은 1995년 HANARO 가동 이후 중성자방사화분석을 통한 미량원소 정량 분석법을 고대 토기의 산지 분류에 응용, 고고학 연구에 기여하고, 중성자 방사화 분석 기술, 중성자 영상 기술, 방사선 조사 기술 등의 관련 기술을 문화재 보존, 복원 및 감정에 적용해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일부 대학에서 중성자 방사화 분석, X-선 형광분석 등을 이용해 고고학적 시료의 미량원소 정량분석으로 산지 및 편년 추정 등에 부분적으로 원자력을 활용했다.

최근에는 X-선 분광분석, 중성자 영상기술, 방사선 조사기술, 가속기 질량분석 등이 문화재 보존, 복원, 감정분야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고려청자의 유약에서 흑색과 백색을 나타내는 발색 성분이 철의 전자 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뫼스바우어분광기로 확인하기도 했다.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방사선 활용 문화재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과 오랜 경험을 가진 프랑스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문화재 적용을 위한 응용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면서 “과학강국의 위상에 걸맞는 문화 국가로서의 문화재 보존·복원 관리 체계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소연 기자  ksy@knp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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