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물 불법폐기 등 취임前 사건 관리부실 책임물어 퇴진압박
연구원 쇄신 앞장섰지만…靑, NST통해 이달까지 사퇴 최후통첩

하재주 원장을 비롯해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 6월 28일 '원자력연구원 해체폐기물 무단절취‧폐기 등 위반행위 확인' 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 드려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며,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면서 "이번 기회에 철저한 자기 반성과 결연한 각오로 잘못된 모든 관행을 근절해 ‘국민과 함께 운영하는 국민 연구원’으로 거듭나서 최고의 연구성과로 국가와 국민께 보답하겠다"는 안전실천 결의를 다진바 있다. /사진출처=한국원자력연구원

지난 15일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1년 4개월의 임기를 남겨 놓은 상황에서 사퇴를 결정했다. 이에 원자력계와 과학기술계 안팎에서는 탈(脫)원전에 따른 외부압력이 정부출연 연구기관까지 뻗친 것이라며 개탄하고 있다.

16일 원자력연구원과 원자력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취임한 하재주 원장은 연구용원자로와 핵연료 제조·시험시설의 해체폐기물 불법폐기 및 무단 절취, 연구원 내 화재 등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연구원 관리부실에 대한 책임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특히 현 정권의 기반인 여당과 NGO단체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조사결과 원자력연구원 방사성폐기물 무단폐기가 사실로 밝혀지면서 원자력연구원의 안전의식과 연구윤리가 바닥에 떨어진 심각한 상태를 드러냈다”면서 “하재주 원장 체제에서 연구원의 근본적 쇄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하 원장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고 연일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사퇴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하 원장은 연구원의 대외적 신뢰도가 곤두박질쳐진 상황에서 회피하기보다는 연구원 운영 전반에 걸쳐 외부의 의견이 반영되고 견제받는 체제를 구축해 원자력안전에 대한 투명성과 소통을 체계화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특히 내년 ‘원자력연구원 60주년’을 맞아 조직개편과 새로운 비전을 통해 ‘국민과 함께 운영하는 국민연구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해오던 중에 하 원장이 돌연 사의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 설왕설래가 많다.

원자력연구원 노동조합과 원자력계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주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고위 관계자가 하 원장을 찾아와 ‘정무적 판단’을 근거로 “11월 말까지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최후통첩을 던진 상황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은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9월 12일 당시 대전시 소재 한국원자력연구원 정문 주변 현수막 거치대에는 지역 NGO단체에서 "핵폐기물 불법 매각, 책임자를 구속하고 연구원장 파면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설치하기도 했다. ⓒ대전=김소연 기자

김경호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한국원자력연구지부장은 “하 원장의 사퇴는 지난 5일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의 합의문 11조에 ‘원전 기술의 국제경쟁력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과 역행하는 것으로 결국 연구원을 흔들어 원자력계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함”이라며 맹비난했다.

김 지부장은 “최근 정부는 명확한 사유나 공식적 의견 표명 없이, 정무적 판단을 이유로 연구원 원장 사퇴를 집요하게 강요하고 있다”며 “이는 점차 현실화 되는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을 가리고 핵임을 회피하기 위해 '연구원을 흔들어' 국민의 뜻과 목소리를 외면하려는 시도가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또 “연구원과 임단협 교섭을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원장 사퇴를 압박함으로써 헌법에서 보장된 정당한 노동권리를 어떠한 형태라도 침해하려 한다면, 노동조합은 총단결해 현 정부의 독단적 권력횡포에 결연히 저항할 것”이라고 강력히 밝혔다.

한편 하재주 원장은 1982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원자력공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2년 원자력연구원에 입사해 신형원자로개발연구소장, 연구로이용개발본부장, 원자력기초과학연구본부장, 원자력안전연구본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원자력연구원장 취임 직전까지 OECD/NEA 원자력개발국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취임 1년 8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하는 하 원장의 퇴임식은 오는 20일 오후 2시 원자력연구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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