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일부 위법은 인정되지만 취소 필요성 낮아
원고측 “원안위 손들어 준 사정판결 유감, 즉각 항소할 것”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일대에 터를 잡은 신고리 5ㆍ6호기는 국내에서 세 번째로 건설되는 신형경수로 ‘APR(Advanced Power Reactor)1400’ 노형이다.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새울원자력본부

지난 31개월 동안 공방을 펼쳐 왔던 신고리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기 건설허가 취소소송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

1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김정중)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전국 각지에서 모인 559명이 참여한 ‘560국민소송단’이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신고리5ㆍ6호기 원전건설허가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건설허가 과정에 일부 위법이 있다고 인정되지만 허가를 취소할 수는 없다”며 원고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피고인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피고보조참가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최대한 말을 아끼는 분위기인 반면, 원고측은 “법원 판결에 대해 유감스럽다”면서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먼저 재판부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신고리 5ㆍ6호기 건설허가’ 심사 시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위원이 참여한 것과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에 운전 중 중대사고 평가에 대한 항목을 누락해 건설허가 처분이 위법하게 이뤄졌음이 인정된다”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비록 2명의 위원이 결격으로 판단되지만 이들의 찬성 의견을 제외하더라도 ‘신고리 5ㆍ6호기 건설허가’를 승인한 원안위원들의 정족수는 충족하고 있다”면서 “원안위가 다시 적법한 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의결하더라도 같은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결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신고리 5ㆍ6호기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강화된 안전성 개선 조치를 모두 이행하는 등 원자력안전법상 ‘중대사고’에 대비한 설계를 충분히 갖췄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그럼에도 건설허가를 취소할 경우, 원안위가 건설허가 절차를 재심의·의결하는 동안 공사가 지연되면 전력설비예비율을 갖추지 못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602개에 이르는 공급망이 무너지는 등 산업계와 지역경제에 약 6조원 규모의 피해를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재판부는 “건설허가 취소로 발생할 다양한 사회적 손실을 고려할 때 ‘공공복리에 반하는 결과’가 매우 중대한 만큼 처분을 취소하지는 않는다”며 최종적으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행정소송법 제28조 원고의 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공공복리에 현저히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받아들이지 않는 ‘사정판결(事情判決)’로 결국 재판부는 앞에서 언급된 2건의 위법사항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사를 중단시킬 정도로 중대하진 않다고 본 것이다. 극히 예외적으로 사정판결의 방식으로 원고청구를 기각한 재판부는 소송비용에 대해서는 전부 피고(원안위)와 피고보조참가인(한수원)의 부담으로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홈페이지(http://sladmin.scourt.go.kr) 사건검색 캡쳐화면 ⓒ한국원자력신문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일대에 터를 잡은 신고리 5ㆍ6호기(1400MWⅩ2기)는 정부의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08년 12월)에 의해 국내 최초로 지역주민이 자율유치한 국가사업이다. 총공사비 약 9조 원이 소요되는 초대형프로젝트인 신고리 5ㆍ6호기의 설계는 한국전력기술이, 원자로 설비와 터빈발전기는 두산중공업이 납품하고 삼성물산-두산중공업(EPC)-한화건설 컨소시엄이 주설비 시공사로, 총 300여개 원자력산업체가 참여하는 약 7년간 연인원 620만 명이 투입된다.

단일공사로는 국내최대 규모인 신고리 5ㆍ6호기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국내 건설경기 회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5호기는 2022년 3월, 6호기는 1년 뒤인 2023년 3월에 각각 준공될 예정이다.

2016년 6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건설허가 승인을 최종 받아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던 신고리 5ㆍ6호기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된서리를 맞는다. 그해 7월 14일 한수원 이사회는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일시중단(안)’을 가결, 이날로부터 신고리 5ㆍ6호기의 건설공사는 3개월의 한시적인 일시중단에 들어간다. 당시 신고리 5ㆍ6호기의 전체공정률은 약 30%에 달했으며, 이미 집행된 공사비는 약 1조6000억 원 정도으로 공사가 중단될 경우에 총 손실규모, 곧 매몰비용은 집행된 공사비에 보상비용까지 합쳐서 약 2조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3개월의 ‘피 말리는’ 공론화가 진행됐으며, 마침내 59.5%의 ‘건설 재개’ 결과를 얻게 된 신고리 5ㆍ6호기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1월말 현재 신고리 5ㆍ6호기의 종합공정률은 약 43%을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시 양재동 소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그린피스 활동가들과 560국민소송단은 신고리 5ㆍ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 사정 판결에 유감을 표하며 "위태로운 원전, 멀어진 국민안전"이라고 쓰인 배너를 들고 있다. ㆍ사진제공=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한편 이날 재판부의 원고패소 판결에 대해 그린피스와 560국민소송단은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2016년 9월 12일부터 시작된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허가 취소소송에 대한 재판부의 사정판결은 매우 유감스럽다”면서도 “비록 사정판결이 내려졌지만 소송단이 제기한 신고리 5ㆍ6호기 건설허가에 대한 14건의 위법성 중 2건에 대해 재판부가 인정했기 때문에 이는 사실상 승소판결을 받은 셈”이라고 밝혔다.

소송대리인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김영희 변호사는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건설허가를 취소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하며 “안전에 관한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신고리 5ㆍ6호기를 국내 최대 원전 밀집 지역에 건설하는 것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불법적인 건설이 진행되도록 허용한 법원의 결정은 부당한 것이므로 즉각 항소할 것”이라 밝혔다.

장마리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사법부의 이번 판단이 법으로 규정된 최소한의 책무마저 관례적으로 등한시해 온 원안위에 경종을 울리는 대신 오히려 힘을 실어준 격”이라고 비난했다.

향후 그린피스와 559인의 원고인단은 정부가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집행을 멈추고 탈원전 정책을 더욱 빨리 이행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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