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민병주 제32대 한국원자력학회장, ‘첫 번째’ 수식어로 이목집중
파란만장 원자력계 ‘미래비전‧7대 핵심가치’ 제시하며 열정으로 이끌어

시쳇말로 원자력은 내 운명이라고 언급한 민병주 회장은 원자력연구원에서 연구원을 시작으로 국회의원, 초빙교수, 어머니안전지도자 등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으로 비록 체구는 작지만 내공이 느껴진다. ⓒ사진=정세라 기자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원자력산업 전반이 극심한 침체국면을 맞이했지만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위해 원자력학회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지 고민하며 한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민병주(사진) 한국원자력학회 제32대 회장에게 ‘첫 번째’라는 수식어는 항상 따라 다녔다. 일본 규슈대학 역사상 핵물리학 전공자 중 첫 번째 여학생이었고, 한국원자력연구원 1호 여성과학기술자를 넘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보직도 맡았기 때문이다. 또 연구원에서 근무하던 민 회장은 전(前)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되면서 당시 원자력계는 물론이고 여성과학기술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기도 했다. 4년간의 의원 활동을 마치고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초빙교수로 원자력계로 복귀한 그는 지난 9월 1일 원자력학회 50년 역사상 첫 여성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또 다시 원자력계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24일 추계학술대회가 열린 일산 킨텍스의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민병주 회장은 의원시절의 열정만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민 회장은 “분명 원자력이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확보할 수 없다면 모래성에 불과하다”면서 “이에 원자력학회가 사회적 갈등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오로지 과학적, 공학적 사실에 근거해 행동하며 국민과 소통하는 원자력 전문 학술단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열정을 바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 회장은 “원자력학회 50주년을 맞아 제정한 미래비전과 ▲안전 ▲혁신 ▲융합 ▲소통ㆍ신뢰 ▲교류ㆍ협력 ▲인력양성 ▲지속성 등 7대 핵심가치의 실행철학을 밑거름 삼아 타 분야 협단체와의 교류 등을 통해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국가의 에너지정책에 기여할 것”이라면서 “(비록 1년의 임기이지만) 어려운 시기에 학회장을 맡게 돼 큰 부담감과 함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작은 힘이나마 원자력학회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할 것”이라는 포부를 거듭 밝혔다.
민병주 회장은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사, 일본 규슈대학교 원자핵물리학 박사 취득 후 1991년 한국원자력연구원 여성최초 해외유치과학자로 원자력계에 입문했다. 민 회장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위원,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 한국원자력연구원 연수원장을 역임하고, 2012년 제19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진출해 국내 원자력계 및 과학기술분야의 든든한 지원 역할과 함께 27차례의 우수국회의원 수상 등 탁월한 의정활동을 펼친 바 있다.
또 원자력학회에서는 제19대 총무이사, 제30대 고급정책연구소장을 역임하는 등 지난 1년간 제31대 수석부회장직 겸 원자력이슈위원회 위원장직을 수행했다. 현재는 울산과학기술원 초빙교수,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어머니안전지도자 중앙회 회장, 한국여성의정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먼저 한국원자력학회장에 취임한 것을 원자력신문 독자들을 대신해서 축하드린다. 첫 여성 학회장이자 여성과학자로 연구계와 정계 등에서 의미가 특별하다. 학회장 취임 소감과 더불어 비록 1년이지만 앞으로 학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어려운 시기에 학회장을 맡게 되어 큰 부담감과 함께 책임감을 느끼지만 작은 힘이지만 우리나라 원자력과 원자력학회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하겠다는 마음뿐이다. 1959년에 원자력연구원이 이 땅의 에너지자립과 국가발전을 위해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출범했다. 올해 60주년이 되는 해이고 원자력학회는 50주년이 됐다. 나 또한 1959년생이니 우연을 넘어 필연, 운명으로 원자력과 같이 해에 온 것이다. 시쳇말로 너는(원자력) 내 운명인거다. 원자력연구원에서 연구원을 시작으로 국회의원, 초빙교수, 어머니안전지도자 등 다양하고 풍부한 활동과 경험으로 비록 체구는 작지만 내공이 다져졌다. 산적한 원자력계와 학회의 발전을 위해 비판의 목소리도 객관적으로 경청하며 원자력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국내 원자력계는 ‘원자력빙하기’에 도래했다. 우리 손으로 개발된 한국형 신형원전(APR1400)으로 UAE 수출은 물론 3세대 원전으로는 전 세계에서 첫 상업운전을 시작한 신고리 3‧4호기의 안정적인 운영을 통해 원전의 건전성을 확인시키고 있다. APR 1400이 미국 원자력규제기관인 NRC로부터 설계인증(DC)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핵종분석오류, 원전의 절차서 미준수, 원전 운전자의 조작 미숙 등의 문제로 비난을 받고 있다. 지금의 원자력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멀리는 지난 60년, 가까이는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원자력계 만큼 파란만장(波瀾萬丈) 부침을 겪은 분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이 국가발전에 기여한 부분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다소 진부한 얘기이지만 대한민국은 부존자원이 거의 없다. 식민지 암흑기와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경제를 부흥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원자력에너지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반세기 넘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원자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되기까지는 정부와 국민 그리고 원자력계 종사자 등이 삼위일체가 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정말 잘했던 성과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잘못된 관행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분야가 그랬듯이 원자력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어둠 또는 그림자를 이제는 냉철하게 살펴 볼 필요도 있다. 과거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믿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원자력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의 생각을 겸손하게 객관적으로 바로 읽고, 안전과 소통을 통해 공감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한다. 앞으로는 우리나라 에너지의 근간인 원자력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부침을 겪는 일은 무조건 없어야 한다. 우리는 2009년 요르단 연구로 수출과 UAE 원전수출을 통해 우리의 원자력 기술을 세계와 함께 공유했으며,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성공적으로 마쳤지 않은가. 대한민국 원자력기술이 세계 최상임을 확인했고 평가받았다. 대한민국의 원자력은 약속을 지킬 줄 아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특히 ‘탈원전’ 정책으로 열악한 분위기에서도 원전산업의 전(全)주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신규원전 건설, 운전, 정비 등 선행주기에 초점을 뒀던 것과 달리 앞으로 해체, 사용후핵연료 처리, 부지 복원 등 후행주기에 기술적·정책적으로 집중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과연 ‘원자력빙하기’ 탈출을 위한 현명한 방안은 무엇인가.
“지금의 원자력 정책을 놓고 호사가들은 ‘탈원전 정책’이라 비난하기도, 때론 ‘에너지전환 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에너지는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해야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탈원전이든, 에너지전환 정책이든 여전히 에너지는 국가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정책의 최우선 과제이다. 다만 이견이 있다면, 원자력에 대한 속도 조절과 안전성 향상, 재생에너지의 기술개발과 관련해서 일 것이다. 만일 현 정부가 안전하고 안정적인 에너지원의 확보를 위해 원자력은 물론 재생에너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비중 있게 다루겠다고 했다면 지금의 탈(脫)원전 정책의 틀은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더 안전한 원자력과 함께 더 경쟁력있는 재생에너지 기술개발 등이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처리와 관련한 제반 문제는 국가 차원의 논의도 무게 있게 다뤄져야 한다. 이에 학회는 지난 5월 열린 춘계학술대회 기간 중에 채택해 발표한 ‘미래비전 2050’과 ▲안전(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구환경을 보존하며 국민이 안심하고 원자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전한 원자력과학기술을 개발 발전) ▲혁신(국가와 인류의 미래와 환경을 지키고, 원자력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혁신적인 연구와 응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지원) ▲융합(다른 과학기술 분야와의 학문적 융합과 국내외 여러 학회와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과학기술의 다양한 융합을 통하여 원자력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앞장) ▲소통ㆍ신뢰(각종 원자력 현안에 대해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원자력계 내외부 및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대안을 제시) ▲교류ㆍ협력(국내 산학연관과 교류를 촉진하고, 기후변화 대응 등 세계적인 현안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국내외 학회와 협력) ▲인력양성(회원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인력양성에 노력하여, 원자력 전공 학생들이 미래 사회의 주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원) ▲지속성(원자력과학기술 분야가 지속적으로 유지·발전될 수 있도록 대외적으로 원자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원자력산업 발전을 위한 원자력기술 표준 제정에 기여) 등 7대 핵심가치는 ‘인류와 환경을 위한 원자력과학기술의 중심’을 표방하며 앞으로 원자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논쟁, 신규원전 건설재개 갈등,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 등 국내 원자력계 당면과제가 산적한 지금의 상황에서 원자력계의 핵심단체인 원자력학회의 역할이 더 부각되고 있다. 원자력학회는 원자력계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 단순히 학술행사를 치루는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결집력도 생기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학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선적으로  ‘미래비전 2050’과 ‘7대 핵심가치’의 적극적인 실행을 통하여 원자력학회가 전문성과 투명성을 가지고 비정치, 비영리 학술단체로 거듭남으로써 원자력이 국가의 에너지 정책에 기여하고 국가 환경문제를 해결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원자력학회는 원자력계의 산·학·연 등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과 차세대 인력들이 활동하는 거대 학회이다. 이들의 다양한 활동들이 보다 영향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혁신을 통해 보다 안전한 원자력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물리학회 등 타분야 학회와의 융합을 통해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며, 이를 정부나 국회 등과의 소통을 위한 교량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류·협력, 특히 인력양성에도 긍정적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보다 결집된 의견을 만들어갈 것이다.”

-원자력 기술력의 뼈대 역할을 해온 연구개발(R&D) 기금은 오는 2022년 이후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점쳐지고 산업계는 매출액 감소와 인력 감축의 이중고를 겪으며 ‘탈원전 블랙홀’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업계의 채용시장이 축소되자 원자력 전공학과를 운영하고 있는 대학들은 진학률 감소로 ‘속앓이’ 중이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원자력전공 기피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되면 원자력산업계는 어려움에 처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산업계의 매출액 감소 현상으로 인해 연구개발 기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는 원자력의 국가경쟁력 확보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와 관련해서 현 정부는 물론 산업계와 연구계 모두 기존의 정책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의 해외수출도 용이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존의 발전소나 신규건설에 대한 부정적인 심리가 우선 회복돼야 한다. 아울러 기존의 발전 연구뿐만 아니라 시장이 훨씬 큰 비발전 분야의 확대는 향후 급속히 발전할 것으로 점쳐진다. 가동 중 원전의 안전성을 보다 획기적으로 높이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방사선 의료기기 등 수입대체나 수출 가능성이 높은 연구에도 집중해야 한다. 원자력이 기존의 원자력 연구개발의 틀을 기반으로 보다 열린 자세로 다양한 연구에 도전하고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면 여전히 희망은 있다. 우수한 신규 인력의 유입은 그들이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늘 궁금했다. 원자력산업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원자력사업자와 관련 연구자들이 말하는 ‘대한민국 원자력의 공학적 안전성’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우리나라 원자력의 공학적 안전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 ‘자만은 금물(禁物)’이지만 이는 엄연히 국제사회에서 확인이 되고 있다. 원자력 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NEA에서도 우리나라는 원자력안전 분야 특히 중대사고 등 안전성 강화에 대해서는 주도국이다. 미국이나 러시아, 일본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사고 또한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다. 비록 원전 설비 중 일부 문제가 된 시공이나 부품의 사례는 있었지만 이는 원자력의 안전이라는 큰 명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질 정도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공학적 해석이다. 물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보다 노력해야 한다. 보다 높은 기준과 도덕성과 안전문화가 원자력계에 적용돼야 한다.”

-취임사를 통해 “원자력학회가 사회적 갈등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오로지 과학적, 공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행동하며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강조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원자력학회가 원자력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란 상당히 제한적이다. 다만 원자력계가 보다 타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통섭적인 지혜를 모을 수는 있으며, 다양하고 활발한 토론의 장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원자력은 정치와는 무관했으며, 지금까지 원자력의 힘은 오로지 정부와 국민에게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원자력은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은 안전을 기반으로 인류의 번영을 위해 수행돼야 한다. 진보나 보수를 떠나 말 그대로 오로지 과학적이고 공학적인 사실에 근거해 수행돼야 할 것이다.”

-올해로 한국 원자력역사 60주년, 원자력학회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원자력계 희망이 될 메시지를 부탁드린다.
“호사가들이 말한다. 대한민국 원자력계는 태동이후 중 가장 어려운 시기, 위기라고. 하지만 ‘양면의 동전’처럼 현재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원자력계에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이다. 따라서 원자력학회는 원자력계의 혁신을 이끌어 내고 국민이 안심하는 에너지원, 국가의 지속가능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에너지원으로 거듭나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지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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