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화 사용후핵연료재검토위원장 ‘반쪽공론화’ 책임 돌연사퇴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 위원 구성과 공정성까지 문제로 지적

“그동안 위원회를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민사회계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해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의견수렴이 어려워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위원장을 사퇴하기로 했다.”

정정화(사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원장이 지난 26일 오전 서울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를 공식화했다. 이날 정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에 이어 또다시 ‘반쪽 공론화’로 ‘재검토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하게 됐다. 결국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판을 잘 못 짰다”며 1차적인 책임을 정부에게 돌렸다.

정 위원장은 “지난 1년 동안 탈핵시민사회계의 참여와 소통을 위해 나름대로 애써왔지만 공론화의 기본원칙(숙의성, 대표성, 공정성, 수용성 등)을 담보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산업부에 대한 불신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고, 이에 더 이상 위원장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전국 의견수렴을 위한 시민참여단의 1차 종합토론회는 지난 19일부터 21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균형 있는 숙의와 토론을 위한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지 못해 연기(7월 10~13일)하게 됐다. 그러나 연기된 1차 종합토론회도 탈핵시민사회계의 참여가 이뤄지지 않아 원자력 산업, 환경, 에너지, 안전 분야 등에 대한 균형 잡힌 토론이 어렵게 된 상황이다.

정 위원장은 “당초 재검토위를 구성할 때 원전 소재 지역주민과 탈핵시민단체 등 이해 당사자들 중심과 중립적인 인사로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지만 산업부는 이해 당사자가 들어오면 공론화 진척이 어렵다는 판단에 중립적인 인사로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19년 5월 2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방향과 절차 등에 대한 국민,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공정하게 수렴·관리하기 위해 ▲인문사회 ▲법률·과학 ▲소통·갈등관리 ▲조사통계 등 각 분야별로 중립적 전문가 15명(▲최현선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혁우 배제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김정인 수원대학교 법‧행정학부 교수 ▲유원석 법무법인 KNC 변호사 ▲신영재 신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원장 ▲장보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 ▲김 민 충북대학교 화학과 교수 ▲정정화 강원대학교 공공행정학과 교수 ▲이윤석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사회학과 교수 ▲김동영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경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주진 평화갈등연구소 소장 ▲박민규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교수 ▲김석호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4명이 사퇴 의사를 밝혔고 현재는 11명만 활동 중이다.

정 위원장은 “지난 24일 재검토위 제24차 회의에서 공론화를 계속할지 논의한 결과 당시 참석 위원 9명 중 6명이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3명은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나머지 2명의 위원들도 조만간 사퇴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결정적으로 사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 대해 월성원전 지역실행기구의 위원 구성과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

정 위원장은 “지난 4월 월성원전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 공론화 숙의과정에 참여할 ‘시민참여단 선정’ 1차 설문조사(3000여명 대상)를 위한 설문 문항을 재검토위원회(숙의분과)의 전문가들이 만들었는데, 지역실행기구와 재검토위원회 지원단 등이 재검토위원회와 상의도 없이 설문 문항을 모두 바꿨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는 증설 찬성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의도가 깔린 것으로 공론화 숙의과장의 근본 취지를 훼손된 것으로 판단돼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면서 “재검토위원회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제대로 된 ‘재공론화’를 진행하기 바란다”고 성토했다.

한편 정 위원장의 도발적인 사퇴발표에 주무부처인 산업부와 재검토위원회, 지원단 등은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정 위원장의 사임과 관계없이 예정대로 일정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오후 산업부는 보도(해명)자료를 통해 “그간 국민과 원전지역 주민 의견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추진해왔던 모든 노력들이 시민사회계의 불참을 이유로 ’불공정‘ 및 ’반쪽 공론화‘라고 평가받은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호선을 통해 후임 위원장을 선임하고 향후 일정을 예정대로 흔들림 없이 진행할 것”이라며 “재검토위원회가 그동안 치열하게 논의하고 의결한 내용을 토대로 국민적 의견수렴을 통해 보다 수용성 높은 정책 수립을 추진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관계자는 “지난 24일 열린 제24차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위원들은 정 위원장의 개인적인 의견을 존중하지만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면서 기자회견 당시 정 위원장이 언급한 ‘추가 위원 사퇴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위원회는 국민과 지역주민의 의견을 충분하게 수렴하기 위해 치열한 내부논의 및 이해관계자 소통 등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해 왔으며, 모든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균형된 참여기회를 보장하고 다양한 의견수렴을 위해 참여와 협조를 지속적으로 설득·독려했다”면서 “합의된 원칙과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위원회 의견수렴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었다”며 아쉬워했다.

특히 정 위원장이 결정적 사퇴이유로 꼽은 ‘지역실행기구의 공정성’에 대해 재검토위원회 관계자는 “맥스터에 대해 원전소재지역 기초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의 의견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이해관계자간 공감대에 위원회는 지역주민의견을 수렴할 지역실행기구를 기초지자체장이 자율적으로 구성하도록 의결한 바 있다”면서 “그간 합의된 원칙에 따라 경주시가 2019년 11월 지역실행기구를 구성했고,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지역실행기구를 재구성하자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또 이 관계자는 “‘시민참여단 선정’ 1차 설문조사(3000여명 대상)를 위한 설문 문항은 재검토위원회와 지역실행기구가 논의를 거쳐 최종 수정된 사안으로 정 위원장의 발언처럼 지역실행기구가 제 멋대로 바꾸거나 수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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