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관계주의 사회에서는 관계를 인정해야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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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관계주의 사회에서는 관계를 인정해야 소통이다
  • 한국원자력신문
  • 승인 2020.07.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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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말과 행동들②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게임문화재단 이사장)

호모 사피엔스 즉 인간은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해 왔다. 진심으로 노력한다면 이룰 수 있다고. 그것이 일이든 소통이든 말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노력하는데도 잘 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왜 그럴까? 그래서 우리는 더 노력하고 좀 더 열과 성의를 다해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그리고 여전히 충분치 않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그 이유는 의외로 방향에 있다. 오른쪽으로 가야할 때 왼쪽으로, 앞으로 가야할 때 뒤로, 가지 말아야 할 때 오히려 가는 수많은 ‘거꾸로 해왔던 것들’ 때문에 인간은 진심과 노력을 가지고도 실수나 실패를 반복했던 것이다. 그 수많은 말과 행동들을 제자리와 제자리로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열정과 노력을 제대로 꽃피울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알아보자.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게임문화재단 이사장)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게임문화재단 이사장)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와 같은 사회 심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한국과 일본 문화의 근본적 차이점이 있다. 바로, 관계주의와 집단주의다. 즉 우리나라가 집단주의라는 관점은 착각이자 오해라는 것이다. 관계주의와 집단주의. 무엇이 다른가?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두 문화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집단주의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자신의 자아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따라서 집단의 이익과 규칙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위한 것보다 더 중요하게 인식된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국가나 회사와 같은 집단을 자신의 가족이나 관계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미덕을 넘어서 도덕에 가깝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관계주의 성격이 더 강해, 그 결과 집단의 이익보다 자신에게 더 중요한 사람과 관계에 더 강하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양쪽 다 장단점이 있다. 일본식 집단주의의 단점은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못해 잘못된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일거에 집단전체가 이견 없이 향해가는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반면 관계주의 사회에서는 다양한 관계들에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는 과정에서 충돌과 갈등이 빈번할 위험이 있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들 사이의 관계주의적 사고방식은 세대 차이를 거의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 X세대, 밀레니엄 세대, 더 나아가 ‘90년대생’들과 같이 각기 다른 세대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관계주의적 사고방식은 세대에 걸쳐 거의 같은 강도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관계가 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이전에는 없었던 네트워크로 옮겨가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국인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자기소개서를 쓴다. 자기소개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계를 소개하기 때문이다. “저는..” 해 놓고,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 사이에서 3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나서..”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한국인의 전형적인 자기소개서의 시작이다. 이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여러 가지 관계적 위치나 역할에 대한 서술이 계속된다. 외국인들의 자기소개서는 자기의 이야기를 바로 꺼내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외국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한국 사람들의 이러한 전형적 자기소개서를 검토하면서 “이 사람은 어디까지 읽어야 자기소개를 하는 걸까?”라면서 의아해하기도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종종 국제사회에 회자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래서 한국인은 자신과 다른 세대에 해당하는 누군가가 자신과 소통을 하려고 할 때 자기 자신보다는 자신의 관계를 인정해 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이들이 부모와의 세대 차이를 언제 가장 크게 느낄까? 물론 자신과 대화가 잘 되지 않을 때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세대차를 느끼는 경우는 자신의 관계를 인정해 주지 않고 폄하하거나 심지어는 단절시키려 할 때다.

수많은 자녀들과 부모들 사이에서 불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자녀가 자신의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전화기를 뺏어들고 우리 아이 만나지 말라는 호통을 쳤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 자녀는 극심한 모멸감과 동시에 부모에게 등을 돌리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관계를 모욕했기 때문이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 분야 연구들을 보면 노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가장 큰 단절감이 자신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홀로 사는 부모에게 “아버지 그런 할머니랑 왜 가깝게 지내세요?”라든가 “어머니 그런 할아버지와는 만나지 마세요.” 부모를 찾아오지 않는 섭섭함보다 훨씬 더 큰 섭섭함을 자녀에게 느낀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왜 한국인들은 자신에 대한 비난 보다 더 큰 불편함과 섭섭함을 자신의 관계가 폄하될 때 느끼는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인의 자아는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이는 매우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외국에서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세대소통과 화합은 그 세대의 관계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의 친구관계를 인정하고 상사나 부하 직원이 상대방의 세대가 가지는 장점을 칭찬하면 한국인은 마치 자기가 칭찬받은 것처럼 아니 때에 따라서는 그 이상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니 조직의 리더라면 한번쯤 부하 직원에게 이런 배려를 해주시면 어떨까? “자네 동기들이 명석한 친구들이 많으니 아이디어를 한 번 구해보게”라든가 “오랜만에 입사 동기들끼리 한 잔해”라고 시간이나 약간의 격려금을 슬쩍 선사하는 것 말이다. 한 개인에게 하는 칭찬보다 훨씬 더 큰 소통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관계주의의 미묘한 힘이자 대화의 방식이다. 잊지 말자. 관계주의에서는 관계를 인정해야 소통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