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전 과학기술처 원자력 국장 강박광 박사“원자력연구소 폐쇄는 역사적 오점 남기는 것” 강력 항변

갑작스런 한국원자력연구소 폐쇄명령과 베일에 가려진 그 명령의 배후

전두환 정권의 초대 과기처 장관으로 육사 출신의 이정오 박사가 1980년 9월 과기처 장관으로 임명 되었는데 그는 육사 졸업 후 미국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후 KAIST 교수 등 학자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행정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인사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 나는 원자력개발국장이었으나 나도 기술협력국장직에서 원자력개발국장으로 전보 된지 1개월 밖에 되지 않아 원자력 업무에는 과히 익숙하지 못한 때였다.

이정오 장관은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나를 장관실로 불러 한국원자력연구소를 폐쇄하라는 갑작스런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의 배경이나 이유에 관해서는 전혀 설명도 없이 일방적인 단호한 명령이었다. 과학자 출신의 장관이 장관직에 임명되자말자 우리나라 최고의 국립 연구소 중의 하나인 원자력연구소를 이유 없이 갑자기 폐쇄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너무나도 뜻밖이고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나 놀랍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예상 밖의 지시였기 때문에 나는 말문이 막혀 그날은 별 말씀 못 드리고 다만 검토보고 하겠다고 말하고 장관실을 나왔다.

그 당시 전두환 정권 초창기에는 국보위가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있었고 육사출신이 관료의 요직에 배치되면서 파격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직사회는 극도로 위축되어 말을 극히 조심하는 분위기였었다. 따라서 그날 극히 이례적인 장관의 지시인데도 변변히 그 배경과 이유를 물어보지도 못하고 장관실을 나왔다. 그런데 당장 곤란한 것은 이 지시가 한국원자력연구소에 전달되면 너무나 큰 충격으로 파국적 분위기로 치달을 것이 뻔하고 과기처 내부에 누설되어도 결국 파장은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장관과의 대화가 좀 더 이루어져서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이를 당분간 일체 비밀에 부치기로 굳게 마음먹고 부처 내의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그날 내가 우선 생각한 것은 그러한 엄청난 지시 사항은 원자력 분야에 문외한인 신임 장관이 임명되자 말자 누구와의 의논도 없이 간단히 결정하여 하달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중요한 결정사항은 차관은 물론 부처 내의 중진들과 신중히 의논한 후 결정되어 하달될 중요 사항이었는데 차관은 물론 부처 내의 누구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자인 장관이 그 당시 국내에서 가장 유능한 과학자가 집결한 기관으로 알려진 한국원자력연구소를 개인적 신념에서 폐쇄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가능성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장관 개인 차원도 부처 차원도 아닌 결정이라면 이정오 장관의 그러한 지시는 아마도 정권 차원의 특명을 받아 그러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특임 장관으로 임명된 것이 그 배경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이르게 되었다.

그 당시 누구도 이정오 교수가 괴기처 장관으로 발탁되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으며 취임 후에는 그가 육사 출신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정권 출범과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뿐이었다. 그러나 이정오 장관은 그러한 지시 사항의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퇴임 후에도 전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망과 더불어 재임 당시의 극적인 돌출 명령들은 영원한 비밀로 남게 되었고 그 후 서서히 나타난 증거들을 짜 맞추어 그러한 돌출 명령의 배경을 추측해 볼 따름이다.

정권 출범 차원의 조치라는 추론의 근거

제5공화국 정권 출범 차원의 특명이라면 전두환 정권 출범 과정에서 그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발생하여 그 배경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비밀로 하면서 한국원자력연구소를 폐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후일에 그 지시 사항은 정권 출범 시에 한미 관계의 정리와 연관된 사안 즉 핵개발 의혹과 관련하여 한국원자력연구소를 폐쇄한다는 밀약이 배후에 도사리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속속 알려지거나 밝혀졌다. 또한 그러한 추론만이 신임장관의 돌출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에 대한 이러한 조치가 제5공화국 정권 출범 차원의 한미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추론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동일한 시기에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미사일 팀이 해체되고 800여명의 과학자들이 해고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는데 미국은 미사일과 함께 핵개발 의혹을 정리하는 차원 즉 대량살상 전략무기와 연관될 수 있는 소지를 말살하는 차원에서 미사일 팀과 한국원자력연구소를 동시에 폐쇄할 것을 정권 인정 차원에서 요청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돌아가신 김성진 장관이 정권 출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특사로로 미국 정부를 방문했는데 그 때 미사일팀의 해체를 정권 인정 차원에서 미국 정부가 요청했는데 귀국 후 국방과학연구소의 소장에 임명되어 미사일 팀의 해체를 직접담당해서 처리한 사실이 뒤 늦게 밝혀졌으며 그 때 미국에서 미사일과 함께 한국원자역연구소의 해체도 요청했을 것이라고 증언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는 미국의 요청을 제5공화국 정권 성립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그 일을 김성진 장관과 이정오 장관에게 분담하여 처리하게 했다고 추론할 수 있게 한다.

장관 설득을 위한 나의 저돌적 항변

얼마 있다가 장관실에 결재하러 들어가니까 한국원자력연구소 폐쇄를 왜 서두르지 않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래서 나는 사직을 각오하고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한국원자력연구소는 간단하게 폐쇄하기는 어렵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2차 대전 직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유엔 총회에서의 유명한 역사적 연설인 Atoms for Peace에 근거하여, 핵폭탄이 아닌 원자력 평화이용에 관한 세계질서가 확립되었고, 그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원자력이란 제2의 불을 켜기 위해서 한국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큰 의미가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과학두뇌가 양성 집결된 현대적 연구기관이라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둘째로는 한국원자력연구소는 다른 연구소와 달라 원자력연구소법에 근거해 설립되었습니다. 원자력연구소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그 법에 명기된 연구소 설립근거부터 먼저 말소해야 연구소 폐쇄가 가능하며, 이는 정부차원 뿐만 아니라 국회와도 합의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연구소 이사회에서 최종적으로 폐쇄 결의를 해야 합니다.”

“셋째로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이 그 대안이며 원자력은 매장 에너지가 아니라 기술 에너지라서 우리 형편에 부합하는 에너지입니다. 한국원자력연구소의 폐쇄는 원자력에너지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넷째로는 장관님도 과학자이신데 과학계가 납득할 만한 이유와 설명도 없이 물리적으로 최고의 과학자 집단을 폐쇄할 경우 장관님은 과학계와 영원한 담을 쌓게 될 텐데 그러한 불행한 여생을 살아가기 원하십니까? ”

이러한 복잡한 문제가 게재되어 있기 때문에 장관님께서 간단하게 일개 국장에 지나지 않는 저보고 한국원자력연구소를 당장 폐쇄하라 하시더라도, 이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벗어납니다.” 등등의 반대 논리를 열거했다. 그러나 이정오 장관은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나를 보고 상당히 화를 내었다.

그 후 얼마 지나 세 번째 장관실에 들어갔을 때 일어난 일이다. 들어가니 마침 그 당시 진흥국장이었던 최영환 국장이 먼저 들어와 결재를 끝내는 단계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간파한 최영환 국장은 나가지 않고 함께 자리를 했다. 그때 나는 장관께 다음과 같이 정면으로 반박했다.

“첫째로 대부분의 장관이 임명 초기에는 자기 부처 산하기관들을 의욕적으로 지원하여 활성화시키는 것이 상례입니다. 특히 두뇌집단인 연구소에 대해서는 지원 육성 역할을 해주는 것이 과학기술행정의 수장인 과기처 장관이 해야 할 임무인데, 임명 초기에 오히려 연구소를 폐쇄하라는 것은 장관님으로서 확실히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행동을 하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후일에는 과학계와 담을 쌓고 살아가실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개 국장에게 한국원자력연구소를 폐쇄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앞장서서 국회와 먼저 접촉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않는 장관이 되려고 하신다면 제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먼저 한국원자력연구소를 폐쇄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저에게 납득이 가도록 얘기해 주시면 그 원인과 이유를 해소하는 방안을 찾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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