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평 고려대 명예교수

◆계층별 수준별 다양한 국민적 동의를 이끌어내야
그런데 어떻게 국민들의 원자력에 대한 이해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정부와 원전 관련 기관들이 무수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별로 차도가 없었다.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수많은 방안이 제시되지만, 누구도 그것을 옳게 시행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주)도 심심치 않게 다양한 광고를 하고 있고, 원전 견학을 시키고 있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도 그 일을 기본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왜 뚜렷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가.

한 가지 우화적 사례가 이 문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랑 같지만, 필자의 친구들은 대체로 좋은 학교 출신들로 스스로 이 사회의 엘리트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후쿠시마 사고의 해설을 듣고 나서, 대단한 불만들을 토로했다.

나는 그 해설하신 분들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서 무척 당혹스러웠다. 내 친구들의 불만은 아주 간단했다. 대한민국에서 자기 정도의 시민이 알아듣기 어렵다면, 어찌 그것이 해설이냐는 것이다. 듣고 보니, 원자력의 국민수용성의 문제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자력 전문가들이 원자력에 관한 지식은 충분히 갖추고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국민과의 원자력 대화의 전문가들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원자력의 최고 권위자가 원자력의 안전을 해설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 아니면 유치원 선생님이 약간의 원자력 지식을 습득하여 해설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 이 질문에는 쉽게 해답이 나올 것이다.

대상에 따라서 의사전달을 잘 할 수 있는 전문가는 서로 다르다. 국민은 모두 동질의 인간이 아니다. 관심도, 지식도, 각양각색이다. 요즘 기업에서도 고객친화적인 마케팅(marketing)을 강조한다. 듣는 사람의 수준과 필요에 맞추어 제품을 설명하고 선전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원자력의 국민수용성도 이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시장에서 활용하는 다단계 판매 전략도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여기에는 창의력이 필수적이다. 다양한 대상별로 서로 다른 내용과 수준으로 접근해야 한다.

후쿠시마 사태의 해설과 같은 경우에도 지성을 갖춘 일반 시민이면 알아듣게 말할 수 있는 해설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전달하는 매체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일찍이 마셜 맥루한이라는 학자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이론을 남겨주었다. 미디어마다 특징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예컨대, 유치원생이나 유아들에게는 TV나 모니터에서 비추는 ‘뽀로로’같은 단순한 만화적 내용이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사이언스 픽션의 영상물이 관심을 끌기 쉬울 것이다. 단순한 광고 메시지나 문자 해설을 통한 이해제고 방법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도움을 줄 것이다.

◆보다 적극적이고 대대적인 방향 모색
원자력의 국민수용성에 대해서 정책당국자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원자력의 위험에 대한 국민들의 개념은 자동차 위험이나 마약의 위험과는 성격이 다르다. 굉장히 문화적이고 유행병과 같은 전파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해가 중요하다.

단순히 원자력 산업계에서 말하는 원자력의 안전문화와는 차원이 다른 안전개념이다. 안전문화는 기업의 문화를 안전제일주의로 전환하자는데 주력하고 있다. 물론 대내적으로는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원자력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문화적 이해는 분석적이거나 확률적이 아니다. 오히려 직관적이고 총체적으로 원자력을 이해하고 있다.

이 점을 옳게 포착하지 못하면, 원자력 수용성을 증진하려는 노력들이 분석적이고 합리적이며 확률론적으로 흘러서 핵심의 주변만 맴돌 가능성이 크다.

원자력 수용성의 영역은 원자력 기술 전문가들의 전문영역이 아니다. 다양한 인문사회 과학자들의 전문영역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어휘를 빌리자면, 수용성의 문제는 통섭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지, 기술자들의 상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원자력 수용성을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 국민을 이해시키는 일보다 앞선 전제라는 사실을 무시하면, 노력의 적절한 결실을 얻기 어렵다. 어려운 문제를 너무 쉽게 다루면 실패의 친구가 되기도 쉽다. 원자력 수용성도 아주 어려운 문제라는 사실을 한 번 더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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