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에 들어가도 죽지 않는다는 걸 내가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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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로에 들어가도 죽지 않는다는 걸 내가 증명했다”
  • 울산=김소연 기자
  • 승인 2012.08.1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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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재준 全 월성원전 기계팀 과장…목숨 걸고 내부 침투해 사고 수습
26년 전 월성 1호기, 가동 18개월 만에 냉각재상실사고(LOCA) 발생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지진해일에 의한 냉각수 펌프 침수로 냉각수 공급이 중단됐고, 이로 인해 급기야 원자로가 폭발했으며 원전연료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으로 진행돼 원자로를 수장시켜야 한다는 오싹한 언론보도들이 쏟아졌다.”

박재준(사진) 전 월성원전 기계팀 과장은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원자력발전소에 오래 근무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나라도 그런 일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경험 때문이었다.

26년 전인 1984년 11월 어느 날, 가동 1년 반을 지나던 월성원전 1호기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원자로의 냉각재로 쓰이는 중수(重水)가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냉각재 상실사고(LOCA)라고도 불리는 이 사고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했다면 후쿠시마 원전 이상의 사고로 진전될 수도 있던 상황이었다.

중수가 계속 누출되면 원자로를 냉각 시킬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원전연료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으로 진행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빨리 중수 누출을 막아야 했다. 누출되는 이유는 차치하고서라도 어디에서 누출되는지 어느 정도 누출됐는지, 멜트다운은 얼마나 진행됐는지 알 수 없어 발전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컨트롤 룸에 모여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박 과장은 “당시 터빈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나도 원자로 내부의 상황(냉각재 상실-멜트다운-원자로 수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생각할수록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그것은 한전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었다. 수천억 원의 금전적 손실뿐만 아니라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던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이 막을 내리게 될 것이 불을 보는 뻔했다.

“한시가 급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원자로 내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들어가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사람들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제가 들어가 상황을 파악해 보겠습니다”라고…”

그의 말에 어느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말릴 수도 등을 떠밀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들 묵묵부답이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그 침묵 속에 교차됐을 것이다. 박 과장은 전력보수 직원 몇 명을 대동하고, 원자로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누출된 냉각재가 원자로 내부 벽면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다. 안개처럼 자욱한 누출 냉각재를 밟고 온 몸에 뒤집어쓰며 구석구석 사태를 파악했다. 냉각재는 원자로 6층 쯤에서 누출되고 있음을 발견했고, 다행이 멜트다운은 일어나지 않음을 파악한 후 20여분 뒤에 전력보수 직원을 이끌고 무사히 밖으로 나왔다.

“함께 들어갔던 직원들과 밖으로 빠져나와서 첫 외마디를 지금도 기억한다. “내가 죽지는 않았네”. 사실 그 전까지 원자로 내부로 진입하면 모두 방사선에 피폭돼 죽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감히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급한 나머지 만일에 대비해 허리춤에 밧줄을 동여매기만 했을 뿐 보호구 착용을 하지 않고, 원자로 내부로 들어갔었는데 약간의 피폭은 있었겠지만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했다.”

원인을 찾았으니 사후조치가 취해졌다. 국내 기술진과 설계를 담당했던 캐나다 기술진이 투입돼 긴급 보수를 했고, 월성 1호기는 다시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가동된 월성원자력 1호기는 우니라 최초의 중수로형 원전이다. 중수로 원전은 경수로 원전과는 달리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기 때문에 운전 중에도 핵연료를 교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발전소 이용률이 경수로보다 높은 편이다.

실제로 월성원자력은 가동 2년 후인 1985년 4월부터 1986년 3월까지 1년 동안 이용률 98.5%를 달성하면서 세계 원전 중 이용률 1위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우리나라 원전으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그래서 월성원자력 구내에는 이를 기념하는 기념탑이 서 있기도 하다. 그러나 월성원자력이 이런 명성을 중수로 원전이라는 프리미엄 덕에 얻은 것은 결코 아니다.

“생명을 담보로 무모한 결정을 내렸지만 다시 내게 그런 순간이 닥친다면 나는 그때도 내 한 몸의 안위를 생각하기에 앞서 발전소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다시 “제가 들어가겠습니다”라고 소리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