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태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납품비리나 부품 성적서 위조사건은 원전의 가동정지로 인한 전력난과 원전의 안전에 대한 신뢰를 크게 훼손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원자력계는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원자력 ‘안전문화’를 더 한층 향상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 또한 높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고, 국민의 신뢰 없이는 원자력발전이 있을 수 없다. 원자력계가 비판받고 사회 각층이 새로운 안전확보 방안을 마련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원전 안전성 확보 요소의 하나인 ‘안전문화’
1979년 미국의 TMI(Three Mile Island) 사고,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사고, 2011년 후쿠시마 사고는 인류에게 원자력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중요성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었다. 피해규모가 큰 후쿠시마 사고는 안전이나 자연재해 대응에 관해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우리의 원전에 대한 안전성을 다시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실제 ‘안전문화(Safety Culture)’라는 개념 역시 체르노빌 사고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국제원자력안전자문그룹(INSAG : International Nuclear Safety Advisory Group)에 의한 ‘INSAG-1(체르노빌사고의 사고후검토회의 개요보고서)’에서 최초로 등장하였고, 이때부터 하드웨어 측면의 안전설비, 소프트웨어 측면의 절차서 및 인적자원 측면의 운전요원과 더불어 ‘안전문화’도 안전성확보를 위한 요소로서 새롭게 인식되었다. 그 후 1991년에 IAEA는 INSAG-4에서 ‘원전의 안전문제는 그 중요성에 상응하는 주의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안전문화는 그러한 조직과 개인의 특성과 자세의 총체이다’라고 ‘안전문화’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INPO, ‘좋은 안전문화를 위한 원칙’ 제안
Davis Besse 원전의 원자로 헤드 부식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2002년까지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 : Nuclear Regulatory Commission)도 안전문화 자체 평가를 위한 성능지표의 수립이나 정기적으로 검사를 수행하지 않았으나, 이 사건의 근본원인으로 안전문화의 결여가 지적되면서부터 NRC에서는 안전문화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원자력발전협회(INPO : Institute of Nuclear Power Operations) 또한 2004년 11월 다음과 같은 ‘좋은 안전문화를 위한 원칙’을 제안하였다.
즉 그 내용은 ▲누구나 개인적으로 원자력안전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다 ▲지도자가 안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조직에 신뢰가 스며들어야 한다 ▲의사결정에 안전성 최우선의 정신을 반영한다 ▲원자력 기술이 특별하며 독특함이 인지되어야 한다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가 배양되어야 한다 ▲조직 학습이 포함되어야 한다 ▲원자력 안전이 항상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2002년 동경전력 검사기록 은폐사건의 발생으로 원전가동이 일부 중단되고 원자력발전에 대한 신뢰가 크게 하락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검사제도의 허점, 기술기준의 결여, 시설에 비해 적은 규제인력, 사업자의 안전의식 해이 등을 사건의 원인으로 파악하고 검사제도의 보완, 원자력안전기반기구의 설립, 발전설비 기술수준의 정비, 비리보고체계의 강화, 규정위반에 대한 벌칙강화, 안전위원회의 기능강화 등 개선책을 내놓았다.

‘안전문화’의 정착을 위해!
원전에 관한 모든 사건, 사고의 원인으로 공통적으로 꼽고 있는 것이 바로 ‘자만과 과신, 조직 내부의 소통결여’이다. 기술은 안전하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안전신화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리스크를 과소평가하게 되며, 안전확보를 경시하는 풍조를 낳게 된다. 따라서 ‘안전신화’를 ‘안전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비판하고,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즉 다양한 견해와 입장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며,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가 가능한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원자력안전을 지키는 전문적이고 유능한 인재의 육성도 빼놓을 수 없는 절대 명제다.
우리가 원전부품의 100% 국산화를 지나치게 서둘러 왔던 것은 아닌지, 원자력 ‘안전문화’의 정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겠다. 다만 원자력계에 대한 대내외적 변혁과 반성은 긍정적 방향이어야 하겠다. 이번 사건으로 수십 년간 우리 산업과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원자력의 공(功)을 간과하고, 원자력발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다.
최근 일본의 원전 비즈니스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도 원자력은 국내 산업기반과 해외 수출의 효자종목이 될 수 있는 국가 경제발전의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본 기고는 7월 31일 공감코리아 정책기고에 게재된 내용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저작권자 © 한국원자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