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중국에 우공이라는 노인이 태행산과 왕옥산 사이에 가로막혀 불편했다. 우공은 아들들은 물론 손자들까지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나르기 시작했다. 모두들 그를 비웃었지만 자자손손 이어 가리라고 밀고 나갔다. 하늘은 우공의 우직함에 감동하여 두 산을 옮겨주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하다보면, 그리고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건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렇듯 평범한 교훈을 잊은 건 아닐까. 판교 환풍구 붕괴, 원전 전열관 균열… 무너지고 뚫리는 가운데 대한국민 안녕과 한국원전 안전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어찌 보면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한편으론 환풍구 위에 올라가지 말아야할 것이고, 문제가 된 전열관은 갈아 끼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우리가 경제 발전을 좇아가다가 공공 안전은 뒷전으로 밀린 건 아닌지, 현재의 편익을 위해 미래의 안녕을 볼모로 잡은 건 아닌지 되새겨 볼 일이다.

증기발생기는 원자로의 열을 터빈으로 옮기기 위해 8천개가 넘는 전열관을 가지고 있다. 지름 2cm, 길이 25m에 두께는 1mm 밖에 되지 않으나 고온, 고압, 부식에 견뎌야 한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전열관이 파손될 수 있다. 그래서 내구성이 높은 합금으로 전열관을 만든다.

이번 한빛 3호기와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한울 4호기 전열관도 2002년 파손된 적이 있어 국내에서도 사고가 일어나는 건 아닌지 우려가 컸다. 한울 3, 4호기 증기발생기는 결국 2011년 교체하게 되었다. 한빛 3, 4호기도 이제 증기발생기 교체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증기발생기의 전열관 파단은 원전을 굳게 잠그고 있는 원자로와 격납건물 등 여러 묵직한 빗장에도 불구하고, 작은 틈새로 방사성 증기나 물이 새어나올 수도 있다는 현실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자칫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사업자의 가동 중 검사 등이 있긴 하지만 신체검사에서 모든 병을 찾아낼 수 없듯이 사고의 징후를 예지하지 못할 수도 있고, 이는 한국의 뿌리 깊은 도덕적 해이현상을 재연한 것과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규제자 역시 안전점검에 허점이 있음을 짚어내지 못한다면 국민은 그저 운이 좋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고장 후 원전당국은 방사성 물질 외부 유출은 전혀 없었다는 대국민 홍보도 필요하겠지만, 증기발생기와 원전구조 상 주증기 안전밸브, 복수기 추출펌프 등 극소량이라 하더라도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올 수 있는 개연성도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마지막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자.

돌아 보건데 전열관 파단 감지에서 원자로 자동 정지까지 12시간이 걸렸다면 이 동안에 1차적인 방호벽, 즉 원자로 압력경계는 작지만 뚫린 것이고, 원전 바깥으로 나오지는 않았을 테니 안전하다는 당국의 추정과 그래도 뚫렸으니 제논과 세슘 등이 어딘가 흘러나오지 않았겠느냐는 국민의 불안 사이에 거리가 느껴진다.

문제의 본질은 고장등급이나 사후대책이 아니고 국민정서와 일상생활에 있다. 고장의 사전탐지방법은 기술적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처럼 아무 문제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국민은 또다시 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며 엎질러지지 않길 바랄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이러한 파단사고가 안전검사결과 아무런 문제없다는 판정 이후에 일어났다는 점도 되새겨야 한다. 아흔을 넘긴 우공이 자신을 위해 산을 옮기려 했을까.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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