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장문희 제27대 한국원자력학회 회장(2)]

“안전은 비용이 아니고 투자라고 본다. 투자는 언젠가 이윤을 되돌려 줄 것이다. 원자력에서 안전에 대한 투자의 이윤은 국민의 믿음이다. 원자력 에너지 이용 필요성과 현세대에서 주요한 에너지원으로서의 위상은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문희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본지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일부 주요 선진국에서 원자력을 멀리 하려는 움직임에 민감해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믿을 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 국민이 그들은 원자력 없이도 생존과 삶의 질 향상에 어려움이 없는 이유를 조만간 깨달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련의 사건들로 원자력산업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국내 원자력산업으로 인해 학계에서는 원자력전공 기피현상 등이 우려된다.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공대의 우수한 학생들이 자퇴 또는 휴학을 하고 의학계열로 옮기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최근에도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았다. 학생들은 국가의 먼 장래보다 당장 자신의 장래를 생각한다. 그러나 에너지는 국가의 안보로 연결되는 분야이다. 에너지안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계획사회주의 국가처럼 학생들의 장래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국가의 지속적 생존과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즉, 국가의 정책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국가에너지정책이 바로 되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경우를 잠깐 되새겨보자. TMI사고 이후로 원자력에 대한 정부의 안전강화 정책으로 인해 경제성이 상실되면서 산업계의 반응이 시들해지고 이어서 원자력 인력수요도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했고, 학교와 산업계는 그러한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원자력의 부흥조짐이 보이자 DOE에서는 NERI 프로그램을 시행해 대학에서 원자력 인력양성을 부추겼으나 한번 꺼진 불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원자력시설 운영·유지와 연구개발을 위한 인력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던 것을 우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자원 환경과 원자력에 대한 의존 정도가 미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적 사고는 무리일지 모르지만 한국적 에너지 환경은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현재 원자력이 에너지안보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그 역할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을 대 다수의 국민들이 인정하고 있다. 에너지믹스에서 에너지공급 역할을 양으로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경제논리와 안보논리에서 접근하자는 것이다. 에너지정책을 여론에 등 떠밀려 현장을 보지 않고 책상위에서 결정해서는 안 된다. 비록 반대론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에너지자원환경과 안정성 및 지속성을 현장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원자력환경이 어렵게 된 원인, 학생들이 원자력전공을 기피하는 원인을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 원자력계의 잘못이 더 큰 원인이라고 본다. 미래의 자산인 젊은 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불안을 키우고 전문가로서의 존경받을 수 없고 자긍심을 가질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자력 산업계의 잘못이 결코 작지 않다. 깨끗하지 않고 자기 변명적이며 솔직하지 못해 국민을 불안하게만 하는 곳으로 비추어졌을 법하다. 그래서 국민들이 지탄하고 원자력의 미래가 편안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본다. 그런 곳에 자기의 미래를 맡길 젊은이들이 과연 있을까.”

-기자의 기우일지 모르지만 현재의 상황이 잠깐 동안의 현상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이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되면 원자력계는 어려움에 처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원자력이 오늘에 이른 것은 우수하고 풍성한 인력 덕분이라는 것을 세계가 인정한다. 많은 원자력 개도국에서 우리를 롤 모델로 선택하고 있지 않은가. 요르단에 연구로 기공식에 참석해 만난 요르단 원자력위원회위원장이 “요르단과 한국은 모든 환경에서 유사하다. 자원은 없지만 인력은 풍부하다. 그래서 요르단도 한국처럼 인력을 활용해 발전하고 번영하고 싶다”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인력 수급은 우리 몸의 피의 흐름과 같다. 전문 인력이 원활히 수급되지 않으면 학술연구와 기술개발을 어떻게 하고, 국내 산업현장을 누가 맡고 해외와의 약속을 누가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리고 “또 한 번 더”라는 원자력계의 지상목표인 추가 수출은 누가 뒤를 받힐 것인가. 지금도 인력양성의 중요성이 연구와 산업현장에서 줄기차게 강조되고 있는데, 정부는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기존 학교에 원자력전공 분야를 설치하는 것으로 마땅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년으로 산업현장을 떠나는 경험 많은 전문 인력의 유관기관 재취업은 간접적으로 제한되고 있고, UAE는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원자력 전문 인력을 무작정 흡수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떠나는 사람들의 뒤를 이어주고 빈 공간을 채워 줄 새로운 인력이 없다는 상황을 상상만 해도 이마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릴 것이다. 산업, 연구 현장에서는 전문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인력이 없으면 기술과 산업은 정체되고 퇴보하게 마련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려고 하지 말고 백년지계의 에너지안보를 생각하면서 관·산·학·연이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원자력분야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씨를 뿌릴 밭을 쟁기질하고 잡초를 제거한 다음 거름을 주고 땅을 기름지게 한 후에 씨를 뿌리고 계속 돌보아야 풍성한 결실을 얻는 법이다. 학생들이 원자력을 공부해서 사회에 나와서 추구할 수 있는 꿈과 비젼을 펼칠 수 있고 전문가로서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땅(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먼저이다. 전문가로 대접받지 못하고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꿈을 키울 수 없으며 비난만 받는 환경이라면 어느 누가 산업현장에 가고 어느 누가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고 싶어 할까.”

-정부와 원자력 사업자, 관련 연구자들이 말하는 ‘대한민국 원자력의 공학적 안전성’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기술적으로 대답하기 매우 어렵고, 또한 정서적으로도 대답하기 가장 난감한 이슈인 것 같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안전하면 안전한 것인가?’ 라는 것에 절대적인 공감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전문가가 보는 안전의 정도와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안전의 정도에 큰 괴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전문가는 그들이 현장에 있건 연구실에 있건 시설이나 설비의 공학적 안전성을 정서적이나 정치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안전성 판단의 기술적 기준에 의거해서 결론을 내린다. 만일 연구자들이 근거 기준에 의거하지 않고 정치적이나 정서적으로 판단하면 더 이상 기술 분야의 전문가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판단을 내리는 전문가는 따로 있다. 원자력 사업자나 정부는 기술적이 아닌 다른 판단기준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기술적인 근거를 결코 도외시 하지는 않을 것이다. 표현하는 방법과 폭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준을 만족하면 안전하다는 것이 기술적 견해이다. 대한민국의 원자력시설은 기술적으로 분명히 안전하디.

그러나 일반 국민은 그 기준을 믿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원자로의 노심용융 확률이 만년 또는 십만 년에 한 번 발생할 확률로 설계했다고 하지만 1979년의 TMI, 1986년의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는 그 확률을 불신하게 만든 것이다. 확률이라는 기술적인 의미를 달리 해석하는 것이다. 꼭 만년 또는 십만 년이 되어야 노심용융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닌데 말이다. 또한 사고를 발생시킬 수 있는 조건은 설계자가 반영한 공학적인 기준 범위를 넘어설 수도 있다. 바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경우이다. 물론 이때에도 해안의 방벽을 높이거나 쓰나미가 덮친 높이보다 더 높은 곳에 원전을 건설했더라면 후쿠시마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자연재해라기보다는 인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인재에 의한 안전사고는 예측하기 더더구나 어렵다. 바로 사람이 기계와 시스템을 다루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이지만 기술적인 근거와 기준을 불신하면 안전의 개념을 정립할 수가 없다. 무한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은 없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기술이 있고, 가진 기술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학적 안전 방벽을 이중 삼중으로 설치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 정도 안전하면 안전한 것인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솔직하게 망설여진다. 왜냐하면 그런 질문을 하거나 그런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예상가능 범위 이상의 또는 ‘000이라면, 000안 되면, 000 그것마저 무너지면’ 식의 비논리적인 가정을 앞세워 공격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일반 국민들의 ‘대한민국 원자력의 공학적 안전성‘에 대해 불신을 가지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아주 소수 사람들의 은폐와 탐욕이 그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그 불신은 고장과 사고도 구별하지 않고 무조건 안전하지 않다고 몰고 가고 있다.

고장이 때론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도 있다. 고장을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다. 모든 기기나 부품은 사용수명이 있고 때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기름 치고 닦고 조이고 있으며, 성능이 떨어지거나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기술적으로도 큰돈을 들여 기존의 원전을 물리적으로 보강하고 안전과 관련한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게 해도 생각지도 못한 모자라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다. 안전성과 경제성의 균형개념이 도입되어야 할 영역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 원자력 이용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TMI사고 이후 안전성 강화를 위해 그 당시에 감당할 수 없는 경제성 희생을 요구한 결과 원자력산업이 사양길로 들어선 미국 상황을 돌이켜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문명의 혜택을 누려본 사람들이 과연 다시 덜 문명적인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바랄까? 그러나 국민들은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정부나 원자력 사업자나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생기면 자기들의 믿음이 옳다고 믿고 나머지는 믿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해도 자기만은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정서가 그들의 정서일 수 있다. 과학기술은 어렵고 괴담은 재미있다고 하지 않는가. 대한민국의 원자력은 공학적으로 분명히 안전하다. 우리나라의 지질학적, 정치적 환경에서 공학적으로 가정할 수 있는 환경은 모두 고려돼 있다. 물론 이 표현에는 경제성 측면도 고려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도 원전의 안전 강화대책이 국정과제로 진행 중에 있다. 국민을 안심시키는 안전을 최우선 시책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리히터 8 또는 9의 지진에도 안전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객관적인 그리고 역시적인 사실에 근거해 발생할 수 없는 지진이라고 보고 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짧은 시간에 엄청난 폭우로 인해 하수가 역류해 광화문 일대가 물바다가 된 적이 있다. 그때 하수관 용량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백년 이백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하는 그러한 폭우를 대비해 엄청난 돈을 투입, 하수관 용량을 설정해야 하느냐는 논리와 그래도 해야 한다는 논리가 부딪치면서 굉음을 낸 것을 기억한다. 물론 원자력 안전문제는 광화문 물바다 사건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핵심요소는 어디까지를 현실에 반영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 논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공학적 안전기준이라는 객관적인 개념이 도입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모두가 공감하는 방향으로만 가지 않는다. 정치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원자력의 정치적 안전성 여부에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정치영역은 원자력기술 전문가가 관여할 수 없는 정치외영역이고, 그 영역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감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공학이라는 정체불명의 신조어가 난무하고 있다. 정치공학이라는 용어는 근거와 개념이 없기 때문에 사실에 근거해야 하는 전문가에게 정치공학적 안전성 판단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취임사를 통해 “산학연, 3각축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학연이 균형을 잡고, 건강한 ‘원자력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시중에 널리 회자되는 단어 세 개로 압축하고 싶다. 즉, 관심과 소통 그리고 이해이다. 과거 원자력계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을 때 소통과 관련된 모임이 있었다. 저도 여러 번 참석했었는데, 워크샵 형식의 모임을 통해 발표·토론도 하고 현안에 대한 의견교환도 활발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끼리끼리 모임일 수도 있었겠다 싶지만 당시에는 산업계, 학계, 연구계가 굉장히 편안하게 모였었다. 물론 각 계의 높은 분들도 어지간만 하면 다 참석했었고,그때는 “원피아”라는 말도 없었으니 모임도 편안했었고 행사 끝에는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푸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서로가 큰 관심을 가졌었고 가능하면 이해를 앞세웠으며 대화를 통해 정보공유도 원활했었다. 원자력계를 구성하는 3개의 축이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협조자 역할에서도 원만했다. 3각축이 균형을 잡고 일심 단결하여 원자력의 진흥에 힘을 쏟았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단단한 기반이 구축될 수 있었고, 궁극적으로 거대한 원자력 산업기술을 자립해 완제품과 관련기술을 해외 수출 하는 등 오늘의 원자력계가 만들어 졌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원자력생태계라는 것이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다. 3각축이 서로 협력하고 보완해 각 축이 풍성하게 발전하면서 시너지를 만들어 원자력계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3개축이 균형을 잡아야 한다. 역학적으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각 축의 내실이 단단하고 외형적으로도 튼튼해야 한다. 그리고는 서로가 마음이 통해야 한다.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가 동일해야 한다. 즉, 각자의 역할에 당연히 충실해야 하고, 원자력의 진흥이라는 절대가치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정서적인 관심과 이해 및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 서로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어떤 보완이 필요한지, 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힘을 보태서 균형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원자력계의 정서가 과거와는 달라졌다. 규모가 커지고 활동영역이 넓어지면서 각 축이 지향하는 가치가 달라지고, 그로인해 각 축이 나아가는 방향이 조금씩 벌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소그룹의 모임과 소통은 있었지만, 큰 규모의 모임에서는 가치관의 차이로 개별 축의 관심정도에 따라 참석 열정이 달라졌고 축 간의 균형이 보이지 않게 서서히 무너지게 되었다고 본다. 딱히 집어서 이야기는 않겠지만 어느 모임에서는 산업계만 나타나고, 어느 행사에는 연구계와 학계만이 모이는 정말 끼리끼리 문화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원자력학회 행사만 봐도 그런 현상이 뚜렷이 보인다. 산업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춘·추계 학술발표대회는 학회의 큰 축제 행사이다. 학술발표대회는 물론 학문과 기술에 대한 연구결과의 발표가 중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업진흥 및 산업기술을 다루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산업계의 선입견이 있거나 또는 산업계가 추구하는 가치가 학술의 진흥과는 다소 다르기 때문에 관심이 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현상도 관심과 이해 및 소통의 부족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진단하고 싶다.

학계 및 연구계가 산업계를 섭섭하게 했을 수도 있다. 산업계가 어려운 시기에 학계와 연구계가 관심을 보이지 않았거나 가치 추구에서 이해를 같이하는 노력이 없었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무관심과 가치관의 차이는 학계와 연구계 사이에서도 가끔씩 표출되고 있음을 보기도 한다. 우리 원자력계는 성숙한 장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젠 성숙한 장년답게 소홀함에 대한 섭섭함을 털어버리고 큰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통 큰 가족이 되었으면 한다. 산업계와 함께하기 위해 직전 회장 임기 시에 산업계에서도 학회를 이끌 수 있도록, 그동안 학계와 연구계로만 제한해왔던 수석부회장(차기회장)후보 자격에 대한 빗장도 풀었다. 제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가장 먼저 추진하는 일이 3각축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일이다. 학회의 임원진이 원자력산업계를 이끄는 주요 기관회원을 예방하는 계획을 세우고, 이미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기술(KOPEC-E&C)을 방문, 경영진들과의 면담을 통해 학회활동과 원자력계 발전에 서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하고 협조를 구했으며 학회 차원에서도 산업계와 함께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한수원에서는 학계와 연구계의 열린 연구정신의 부족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번 추계 학술발표행사가 끝내고 계속적으로 산업계와 일정을 협의해 예방할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예기치 않은 일이라 아직 약간의 혼돈은 있겠지만 학회의 진정성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학계에 대해서도 같은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학계는 학문진흥과 인력양성의 요람이고 정신적인 구심점이다. 그러나 학계가 정말 그러한 구심점을 지향하면서 겸손하고 존경을 받는 표상적인 인상을 보여주었는지는 한 번쯤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바로 지난주에 원자력공학과 또는 원자력전공을 설치하고 있는 15개 대학의 학과장님을 학회에 모셔서 학회발전을 위해 학계의 도움도 요청하고, 원자력계 전체의 지속성장과 발전을 위해 어떤 소통과 이해가 필요한가를 깊이 논의하였다. 연구계의 소통부족도 마찬가지로 문제라고 본다. 바깥세계에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나만을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따져봐야 한다. 학계와 산업계가 필요한 기반도 지원하고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산업계에서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데도 노력을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된다. 벽을 쳐다보면서 연구할 것이 아니라 확 트인 넓은 공간을 보고 열린 연구와 기술개발을 해야 한다. 강조하지만 원자력계는 매우 성숙하고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장년의 나이이다. 짧은 시간 내에 어떤 모습이 진정 균형 잡힌 건강한 생태계인지를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바로 관심과 소통 그리고 이해가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29일부터 30일까지 한국원자력학회 추계학술대회가 평창에서 열리는데 원자력과 관련된 최신 논문들이 발표될 예정이다. 전체 논문편수 중 외국학생들의 논문편수가 꾸준히 증가 추세로 명실 공히 국제학술대회로 거듭나고 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 원자력의 역사가 벌써 50대 중반에 들어선 장년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학술, 연구, 산업진흥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원자력 모범국가이다. 원자력분야에서 인력을 양성하면서 연구하는 대학도 15개교에 이른다. 그들 대학에 가보면 원자력전공학과에 외국인 학생이 많이 있다. 세계화의 증거이고 그 만큼 외국인들부터 진보된 원자력 학문을 배울 수 있고 연구할 수 있는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수한 외국 학생들이 많이 모이게 되면 당연히 우수한 연구결과도 나오게 된다. 이들의 연구결과가 논문으로 만들어지고 학술대회에서 발표되는 것이다. 이들의 원자력에 대한 지식과 연구 역량이 바로 한국에서 길러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인간과 학문을 가르친다면 머지않아 원자력 한류가 세계를 휩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이 과대망상적인 꿈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2014 추계학술발표대회에서 모두 510편의 논문이 접수됐으며 이 중 37편이 외국학생들이 연구한 결과이다. 외국학생들의 논문 수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진정 국제학술대회로 세계에 알려지는 때가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학회에서는 학회 학술지인 NET를 SCI-Extended에서 SCI급으로 격상시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NET가 SCI급에 진입하면 국내에서의 우수한 논문이 외국 학술지에 나가지 않고 바로 NET에 기고될 것이며 또한 외국에서 논문을 기고하는 것이 늘게 될 것이다. 우수한 논문이 많이 기고되면 우리나라의 원자력 학술수준에 대한 외국 전문가 및 외국학생들의 인식도 따라서 높아질 것이며 이는 우수한 외국학생들의 한국에의 유학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원자력학회의 학술대회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고, 세계화의 노력을 더하면서 명실상부한 국제학술대회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끝으로 원자력계 희망이 될 메시지를 부탁드린다.
“원자력학회가 정말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당연히 원자력계에 희망을 주고 그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지도록 힘을 쓰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능력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함을 보태도록 하겠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원자력계는 내우외우의 어려움으로 둘러싸인 사면초가 형국이다. 조용해 질듯하면 누군가가 또 소동과 먼지를 일으키곤 한다. 원자력에 대한 반대정서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만을 나무랄 수는 없다. 원자력계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국민을 이해시킬 수 있는 답을 우리가 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안전에 대해서 매우 민감해진 만큼 어떻게 해서든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안전철학을 갖고 안전에 소홀함이 없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취임사에서 “미래를 우리가 만들자”라고 이야기 했다. 원자력 안전기술에서는 능동기술보다 피동기술이 추구하는 지향점이지만 우리 삶에서는 피동적 사고나 철학보다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이 훨씬 더 필요하고 중요한 가치이다. 안전을 통해 안심을 얻는데 더욱 힘을 쏟고, 남보다 앞설 수 있는 신기술 개발과 우리 기술 알리기에 노력을 배가하면서 기다림의 미덕을 기대해보자. 끝으로 원자력계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관심사안들에 대해 평상시에 생각만하고 묻어두고 있던 것들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한국원자력신문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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