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17세기 영국, 사제이자 시인 존 던이 설파하길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대륙의 한 조각이자 대양의 한 방울...어떤 이의 죽음이든,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원전과 같이 사는 처지에 사건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고장’이 있고, 일어나선 안 될 ‘사고’가 있다. 사회 일각에서 고리 1호기를 '사고뭉치 원전'이라 몰아가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첫 원전으로 초창기 고장은 잦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더욱이 사고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늘 시급한 과제와 중요한 과제가 있을 때 시급한 쪽으로 먼저 기울었다. 그 덕분에 외적인 성장을 일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고리 1호기 역시 빨리 빨리에 지나치게 기울었던 한국 문화가 낳은 부작용이 아닐까.

앞으론 원전의 계속운전을 미국처럼 운영허가가 끝나기 10년 전부터 시작하고 예비 타당성 조사도 추가해야 한다. 설비투자에 거액을 들인 뒤 비용을 생각해 운영을 연장시키는 듯한 관행을 바꾸고 계속운전의 정확하고 투명한 경제성 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국내에서는 사업자가 운영만료 2~5년 전에 계속운전을 신청할 수 있다. 신청기간이 짧다보니 운영허가가 끝난 뒤에나 재가동 여부가 결정된다. 고리 1호기는 운영허가 만료 1년 전인 2006년 6월 신청돼 2007년 12월 계속운전이 결정됐다.

계속운전이 결정되기도 전에 재가동 투자부터 이뤄지다보니 지역민 갈등과 경제성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고리 1호기에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2790억원이 투자됐다. 월성 1호기에도 계속운전 신청 3년 전인 2006년부터 2015년까지 7050억원이 투자된다.

이처럼 미국에서 원전 계속운전은 선신청 후투자 방식이지만 국내는 선투자 후신청 방식이다. 미국 원전 사업자는 향후 투자비용을 고려해 계속운전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계속운전 신청 전 투자비용이 계속운전의 경제성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모순이다.

고리 1호기와 같은 미국 키와니 원전이 최근 경제성 문제로 문을 닫았지만 이는 셰일 가스가 몰고 온 화력에 밀려난 것이지 계속운전과 폐로비용 대비 편익은 절대 아니었다. 현재로선 고리 1호기를 폐로하고 다른 에너지로 전력을 만드는 건 결코 경제적일 수 없다.

한편으론 국내 원전 폐로사업 유치경쟁이 과열되는 조짐이 있다. 그간 중앙정부는 무얼 하다 이제 와서 너도나도 지방단체들이 뛰어드는 건 좋은데, 과연 자초지종은 알고 덤벼드는지 걱정이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전세계 원자력시설 해체시장이 2030년에는 500조 원, 2050년에는 10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가 뛰어들 수 있는 건 2050년까지 200조 원 수준의 원전 시장에다 그나마 국내 원전해체 기술은 선진국 대비 70%도 안 된다. 나머지 핵시설 등 800조 원은 우리 게 아니란 얘기다. 한편에선 고리 1호기나 월성 1호기를 폐로 시험시설로 활용해 국내 기술을 쌓자는 건데 이는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단언컨대 국내 원전은 폐로를 위한 비싼 실험설비가 아니고, 경제를 끄는 값싼 전기공장이다. 이들이 퇴역하면 소중한 국가자산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고리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지 묻지 말자. 종은 바로 우리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저작권자 © 한국원자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