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야누스, 원자력과 신재생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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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야누스, 원자력과 신재생의 두 얼굴
  • 한국원자력신문
  • 승인 2014.12.15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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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야누스, 고대 로마인은 문에 두 얼굴이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21세기 원전 나들목에도 야누스가 서 있다. 69년 전 히로시마가 입구에 버섯구름을 피웠다면 45개월 전 후쿠시마는 출구에 장마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국내 원전, 안전과 안심에 비상등이 켜진지 오래다. 계속운전 중인 고리 1호기나 연장심사 중인 월성 1호기 인근 주민은 불안하다. 서울은 원전 하나 줄이기에 들어서고, 신규 예정지엔 반원전 분위기가 퍼지는 가운데 국민 절반 이상이 불안해한다고 한다.

하지만 탈핵에 대한 共감은 여전히 公감해보지만 아직은 空(공)감에 머물고 있다. 원전은 불안하지만 딱히 대안은 찾기 힘들어 보인다. 반핵운동가가 찬핵으로 바뀐 경우는 많지만, 원자력을 하다 반핵을 외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찬핵, 반핵보다는 萬(만)핵, 즉 모두의 원자력을 생각해야 할 때다.

20세기가 부존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냉전이었다면, 21세기는 잔존자원을 보전하기 위한 열전이다. 우리는 전기로 아침을 열고, 전기로 하루를 살며, 전기로 밤을 밝힌다. 전기가 끊기면 문명은 내려앉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예지할 수 있는 육감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원자력과 신재생은 에너지란 점에서는 같지만 법제도뿐 아니라 개발과 이용 등이 사뭇 달라 접점을 찾기 어렵다. 신재생이란 좁게는 태양이나 풍력 등을 일컫지만 넓게는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모든 에너지원으로 볼 수도 있다. 새롭고 깨끗하고 오래갈 수 있다면 원자력도 이에 속할 수 있다.

따라서 화석연료 절감을 위해 대두된 두 가지 대안을 논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원자력은 국내현실을 돌이켜 볼 때 지속적 이용이 불가피하다. 자원이 전무한 국내에서 원자력은 전력수요를 충족하는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이며, 온실기체 감축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태양과 풍력이 원전의 대안으로서 제시되었으나 부지확보, 설비비용, 송배전망 등을 볼 때 단기간 내 대폭증가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신재생이 원자력의 틈새를 메우는 마감재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혹자는 태양광이 원자력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건물옥상 중 환경조건을 충족하는 30%에 광판을 설치하면 현재 기술로도 도시 전체가 낮에 쓰는 전력의 60% 이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잎새를 챙기되 가지를 놓치고, 지붕을 가리되 하늘을 보지 못함이다.

국토 대부분이 산지인 한반도에는 통일형 에너지 녹색전환이 필요하다. 녹색전환의 목표는 청정무구한 원자력 징검다리 위에 지속가능한 신재생 마감재로 온실기체를 줄이고 남북통일을 이루는데 있다. 물론 에너지 효율제고와 사용절약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전기료가 오르는 게 큰 문제다. 녹색전환의 성공을 위해선 소비자의 부담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신규 송전망 구축도 과제다.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전기를 흘려보내기 위해선 막대한 건설비용과 함께 경관훼손, 주민갈등의 문제가 얽혀 있다.

원자력과 신재생은 공익을 위한 합집합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석유도 없고, 석탄도 없고, 평지도 없고, 대안도 없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오늘을 지속하고 내일을 약속하려면 원자력의 변신과 신재생의 화신이 절실하다.

원자력의 공존을 신재생의 공감으로 승화시키는 것만이 야누스의 두 얼굴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