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영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지금 필자는 미국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9회 원자력발전소 계측제어, 인간기계 인터페이스 기술에 관한 국제학회(9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Nuclear Plant Instrumentation, Control & Human-Machine Interface Technologies)에 참석한 가운데 글을 쓰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에는 검증된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쉽지 않아 역동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눈부시게 발달하는 IT 분야답게 원자력에서도 계측제어 분야는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디지털 기술이 발전소에 들어오면서 새롭게 생기는 현안에 대한 논의가 단연 압도적이다. 특히 대량의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가공함으로써 안전하고 높은 효율을 달성할 수 있는 발전소 운영 기술들이 다채롭게 다루어졌다.

우리나라 발전소에 대용량 데이터베이스가 탑재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발전소 운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소수의 데이터만 발전소 컴퓨터에서 추출하여 별도로 저장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국내 대형 발전소 대부분에는 운영기간 동안의 모든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설치되어 있으며, 강화된 네트워크 기능으로 쉽게 데이터를 추출하여 활용할 수 있다. 하드웨어 측면에 있어서도 개선될 여지는 있지만, 연구개발의 중심축은 데이터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옮겨와 있다.

흔히 알려져 있듯이 데이터 그 자체는 정보가 아니다. 그 속에서 정보를 끄집어 내는 기술이 필요한데, 필자는 이를 ‘발전소 데이터 애널리틱스(Power Plant Data Analytics)’라고 부른다. 보통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지만, 실상 발전소의 데이터는 매우 정형화되어 있으며, 용량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기 때문에 필자는 굳이 ‘빅(big)’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에 주저하는 편이다.

그러면 발전소 데이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이 있을가. 당연하게도 발전소 본연의 목적, 경제성과 안전성을 증진하면서 전력을 생산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정보를 통해 과하게 운영되는 부분을 경감하고, 그 재원을 취약한 부분에 투자함으로써 운영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여러 편의 사례가 발표되었는데, 이미 사업자가 성과를 공유할 정도로 기술이 성숙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예컨대 기존의 경보시스템의 성능을 한차원 끌어올릴 수 있는 조기경보(Early Warning) 체계가 대표적이다. 발전소의 정상적인 운전상태와의 편차를 이용하여 문제점에 대한 초동 대처가 가능하도록 해 주는 조기경보 기술은 물리적 모델과 경험적 모델이라는 상호 보완적인 방법을 통해 성숙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경보가 발생을 해도 어떤 문제인지 진단을 해 주지 않는다면 또한 무용지물일 것이다. 현재의 기술수준은 경보의 패턴을 스스로 익히고, 이전에 경보가 발생했을 때 조사해 두었던 고장원인 데이터베이스로부터 검색을 하여 유사한 상황을 찾아 주는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경보의 패턴과 고장원인 데이터베이스의 축적은 시간이 갈수록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마지막 단계로서 설비의 잔여 운영기간을 예측하는 방법이 있다. 이 부분은 아직 상용화까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필자가 미국측 전문가 그룹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설비의 가용한 운영기간을 예측하는 기술이 인허가를 받은 경우는 극히 드물며, 인허가와 상관없이 사업자가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제한적인 대상에 대해서만 수행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설비가 만족스러운 상태로 사용되는 기간인 운영기간을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발전소를 운전하는데 있어 가장 핵심이 되는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설비가 설치되고부터 운전되는 전 과정을 살펴보면서 마치 사람의 인생 궤적을 예측하듯이, 설비의 노화상태를 예측하게 된다.

효과적인 발전소 데이터 애널리틱스를 위한 기술개발 제언을 몇 가지 첨언하고자 한다. 첫째로 방대한 데이터를 지니고 있는 발전 사업자와 이를 정보로 변환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전문기관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둘째는 데이터가 부가가치의 원천인 반면 분석하는 사람에게 기술 주도권을 뺏길 우려가 크다. 데이터 분석의 원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회사의 자산을 반출할 수밖에 없고 타인의 눈을 빌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생각보다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것은 결국 경험을 축적한다는 것이다. 기술개발의 기간이 방법론을 구현하는 것으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용하여 일정기간 이상 운영하는 것을 포함하는 체계가 수립되어야 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아이언맨의 인공지능 조력자, 자비스처럼 발전소의 안전과 성능을 개선시킬 수 있는 조언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급해 주는, 그런 발전소의 운전환경이 결코 멀지만은 않겠다는 전망을 하면서 소고를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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