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형답게 경제발전 밑거름 37년 장기근속…2017년 6월 영구정지 앞둬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21번째 원전국가로 진입할 수 있도록 그 발판을 마련해 준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29일, 첫 상업운전 시작한지 올해 37년째를 맞았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한반도를 ‘밝힐 불씨’로 고리 1호기는 총 1560억7300만원이 투입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사업임에도 건설과 운영기술을 미국 웨스팅하우스에서 도입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부지조성공사와 일부 토건공사, 자재공급, 단순 노무인력 제공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고리 1호기는 숱한 복병과 난관, 기술 설움을 딛고 국민들에게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국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한편 에너지자립의 초석을 다졌다.

또 지속적인 기술자립을 통해 1990년대 한국표준형원전(OPR1000) 개발과 건설·시운전 및 운영경험을 최대한 반영해 차세대 원전인 신형경수로(APR1400)를 독자개발, 해외수출의 쾌거를 이룩했다.

5월 현재 총 23기, 2만716MW의 원전 설비용량을 갖춘 세계 5위의 원자력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묵묵히 ‘맏형’의 역할을 수행해왔던 고리 1호기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최초 건설·운영·계속운전 통한 ‘원전 기술 축적의 산실’
고리 1호기는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1978년 상업운전 개시 당시 부산시 전체의 연간 전력소비량 31억kWh보다 많은 47억kWh를 생산해내 획기적인 에너지 생산설비로 평가 받았다.

준공 당시 설비용량은 58.7만kW로 당시 전체 발전설비용량 659만kW의 9% 담당했다. 당시 고리 1호기 발전단가는 9.21원/kWh로 화력발전 발전단가 16.0원/kWh 대비 42% 저렴해 연간 약 210억원 이득(이용률 60%)을 거뒀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통해 1979년 2차 오일쇼크를 극복하고 1970년대 한강의 기적과 에너지 자립에 기여했다.

고리 1호기는 또 한국 원전의 전문인력 양성의 요람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60년대 초 국내 인력들은 선진국에서 원전기술을 습득했으나 고리 1호기 경험을 토대로 기술인력 양성의 자립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우리나라가 UAE 원전 수출 등 국내 원전 건설·운영기술을 수출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원전 강국으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됐다. 

외국 기술과 자본을 통해 들여온 고리1호기 운영 경험을 토대로 23기의 원전을 건설해 최고의 실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원전 연평균 이용률은 1978년부터 1990년까지 64.6%에 머물렀지만 1991년부터 2000년까지 80.3%, 2001년부터 2011년까지는 91.9%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2010년 기준으로 세계 평균 79%를 훨씬 상회하는 운영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고리 1호기는 지난 4월 21일 원전 누적 발전량 3조kWh를 달성하기까지 중추적 역할을 하며, 전력수급 안정에 기여해왔다. 2004년 7월 1일 단독으로 전력 누계생산량 1000억kWh를 달성했으며, 이후 지난해 말까지 1436억kWh를 생산했다. 누적생산량은 서울시 3.1년(465억 5000만kWh, 2013년), 울산공단 5.6년(255억 1000만kWh), 현대제철 당진공장 26.2년(55억kWh, 우리나라 전력사용량 1위 공장)의 사용분이다.

고리 1호기는 지난 한해에도 45억 4000만kWh의 전력을 생산했다. 이는 부산시 연간 주택용 전력량(2014년 기준 44억 7000만kWh), 경기도 안양시가 1.8년간 사용하는 전력량(2014년 기준 24억 6000만kWh)과 동일하다.
◆정부의 ‘정치공학적’ 결정, 관련업계 비난 거세
그러나 정부가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를 폐로’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비과학적 결정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심지어 국가에너지를 다루는 주무부처(산업부)가 그에 대한 ‘철학도 없다’는 질책이 SNS를 통해 펴지고 있다.

15일 한국원자력학회(회장 장문희)는 ‘고리 1호기 계속 운전은 무엇으로 결정돼야 하는가’라는 제목에 의견서를 발표하고 “고리 1호기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 미래의 선례로 남게 될 것이므로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으로 처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회는 “오는 18일 고리 1호기의 계속운전 신청 기한을 남겨둔 시점에서 합리적인 평가 과정이 없이 정부가 운전 정지를 결정하고 곧 이를 원전사업자에게 권고하겠다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회는 계속운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고려사항으로 ▲계속운전을 해도 기술안전성을 확신할 수 있는가 ▲계속운전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있는가 ▲주민수용성을 확보했는가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일련의 기준과 절차에 부합되게 확인이 됐는가 등 4가지 사항을 제시했다.

이어 학회는 “계속운전은 기술안전성, 경제성, 주민수용성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결정돼야 하며 이중 어느 하나만을 잣대로 그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기술안전성과 경제성에 대한 충분한 확인 없이 계속운전 중지를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조치인가에 강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안전성에 대해서는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평가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며 “기준과 절차에 따라 평가하여 안전성에 문제가 없으면 계속운전을 할 기본자격을 갖추는 것이고, 여기에 경제적 이점이 더해지면 계속운전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전 세계 가동원전 중 35% 151기 계속운전 중
한편 세계의 원전 선진국들은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비, 운영기술의 발달로 설계수명 이후에도 충분히 안전성 확보가 가능하며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원 확보와 에너지 안보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장기 가동 원전에 대해 계속운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야말로 원전의 ‘계속운전’이 세계적인 추세다.

현재 전 세계 가동원전 총 439기 가운데 35%인 151기가 계속운전을 하고 있거나 승인을 받았다. 미국은 현재 100기의 원전(2013년 12월 기준)을 가동하고 있는데 이중 72%(72기)가 계속운전을 승인했고 66%(66기)가 30년 이상 운영 중이며 28%(28기)가 40년 이상 운영 중이다. 미국의 원전 운영허가기간은 40년, 계속운전 허가는 사업자의 신청에 따라 20년 단위로 허용하고 있다.

영국은 총 16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30년 이상 운전 중인 원전은 5기이다. 영국은 운영허가기간에 제한이 없어 ‘주기적안전성평가(PSR)’을 수행해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계속운전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영국 외에도 주기적안전성평가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캐나다,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이다.

캐나다는 2~5년 주기로 운영허가기간을 갱신하는데 2013년을 기준으로 원전 9기는 30년 이상 계속운전을 하고, 2기는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다. 또 프랑스의 경우 대부분이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 가동된 원전이며 안전성평가를 통해 34기 모두 40년 운전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페인은 주기적 안전성평가를 통해 10년 단위로 운영허가 갱신을 하고, 러시아는 계속운전기간을 15년 또는 25년으로 확대해 원전 수명연장을 허용하고 있다. 스페인의 가로나 원전과 러시아의 비빌리노 1호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30여년이 흐른 이른바 ‘노후원전’을 둘러싼 찬반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운영허가 기간 30년이 만료된 후 10년의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가동 중인 고리 1호기에 2차 계속운전 여부를 두고 그 논란의 중심에 있다.

원자력계 복수의 관계자는 “1세대 원전들을 시작으로 운영허가 기간만료가 차례로 도래하게 되는데 세계의 원전들은 기술적으로 안전성이 입증되면 계속운전을 하도록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책적, 사회적 수용성의 바탕이 미흡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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