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일본 로카쇼무라에서 사용후핵연료 해법을 묻다①]
핵연료 전주기 정책 1956년부터 ‘장기플랜’ 추진
“철저히 준비해 궁극의 안전성과 사회적 수용성 높여”

▲ 일본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六ヶ所村)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 전경
원자력발전은 우라늄을 연료에 사용하는데, 발전에 사용됐던 우라늄연료를 사용후핵연료(Spent Nuclear Fuel)라고 한다. 사실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목표는 영구처분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운영하는 국가가 없을 만큼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마련은 어려운 상황이다.

전 세계에서 원자력발전을 운영 중인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총 34개국이다. 이 중 독일, 핀란드, 미국, 스웨덴, 스페인, 캐나다 등 7개 국가는 직접처분을,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 일본 등 4개 국가는 재처리 후 처분을 채택했으며, 나머지 국가는 정책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가동 중인 24기 원전에서 매년 800t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하고 있으며, 원전 내 저장(건식 및 습식) 시설에 안전하게 저장 관리되고 있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정책은 1983년부터 역대 여러 정부에서 9차례에 걸쳐 추진됐지만 무산됐다. 그러나 그 과정은 사회적 갈등을 풀어가는 교훈을 얻는 끊김없는 공론화 과정이었고 그 토대 속에서 2005년 사용후핵연료를 제외한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은 경주시민의 주민투표(89.5% 찬성)로 부지를 확보했으며, 지난해 8월 1단계 사업이 준공됐다.

특히 지난 5월 정부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안전관리 로드맵을 마련했다. 오는 2028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인 관리시설 부지를 선정하기로 했다. 또 확정된 영구처분부지 내에 인허가용 연구시설(Site-specific URL)을 건설ㆍ운영하고 이 시설을 영구처분시설로 확장해 오는 2053년부터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미래세대를 위해 고준위방폐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식과 절차를 담은 최초의 ‘첫 발’을 내딛었으며, 현재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제정(안)은 오는 9월 19일까지 입법예고 된 상황이다.

한반도 주변국의 사용후핵연료 관리방법은 어떤가. 1월 현재 총 30기의 원전을 운영 중이며, 24기를 건설하고 또 24기의 건설을 계획 중인 중국은 2020년에 재처리시설 건설에 착수해 2030년 완공을 목표로 삼았다.

또 6기의 원전을 운영 중인 대만은 직접처분 방식을 채택해 운영 중에 있다. 2016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가 임박한 원전(진산 1호기)에 대비해 소내 건식저장 시설을 추가로 설치했지만 지역주민 등의 반대에 부딪혀 운영을 못하고 있으며,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이 핵비보유국이지만 유일하게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국가이다. 1966년 최초의 상업 원자로를 가동시킨 이후 총 53기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은 “우라늄 가격에 관계없이 우라늄 이용도를 최대화”라는 정책기고에 따라 현재 우라늄 농축부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MOX 연료 생산에 이르는 핵연료 전주기(Nuclear Fuel Cycle)에 걸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1977년부터 2006년까지 도카이무라(東海村) 재처리 시설의 파일럿 시설 운영 경험을 토대로 1990년 아오모리현 로카쇼무라(六ヶ所村) 지역에 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비롯한 대용량 핵연료 후행주기 단지 건설을 완료했으며, 2006년부터 시험가동에 돌입한 재처리 시설은 2018년 상반기를 운영을 목표로 궁극적 안전기능 및 설비 성능을 확인 중이다.

그러나 재처리 시설의 가동 지연으로 인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돼 부지 외 중간저장 시설이 필요했으며, 이에 일본은 로카쇼무라에서 50km 가량 떨어진 무츠시(むつ市)에 집중식(건식) 중간저장시설(리사이클연료 비축센터)을 건설하게 된다. 저장 기간은 50년, 저장 물량은 총 5000t으로 못 박는 등의 단서 조항이 붙으며, 어렵게 성사됐지만 2013년 8월 3000t 규모의 1단계 건설을 완료하고 일본 규제기관인 원자력위원회(AEC)의 최종 운영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 일본은 “우라늄 가격에 관계없이 우라늄 이용도를 최대화”라는 정책기고에 따라 현재 우라늄 농축부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MOX 연료 생산에 이르는 핵연료 전주기(Nuclear Fuel Cycle)에 걸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비록 재처리를 한다고 해도 부피가 줄어들뿐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여전히 남는다. 일본은 현재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최종처분장을 찾고 있다. 2000년 재처리에서 발생한 유리화폐기물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HLW)과 초우라늄방사성폐기물(TRU)의 심층처분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를 토대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을 전담하는 일본원자력발전환경정비기구(NUMO)를 설립했으며, 처분기금을 관리하는 전담기관으로 원자력환경촉진자금관리센터(RWMC)가 지정됐다.

NUMO가 부지 선정의 첫 단계 시작을 공표했을 때는 10곳 이상의 지자체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2012년부터 상세 조사에 돌입하자 자원하는 지자체가 없었다. 이후 심층처분 기술 및 연구개발을 재평가하고 2014년 4월 일본 전역에 잠재적으로 가능한 처분장 부지를 발표했다. NUMO는 2035년 운영을 목표로 2025년부터 부지를 선정할 방침이며, 올해부터 이들 잠재적 가능 후보지를 대상으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최종처분에 대한 설명회를 진행 중이다.

일본의 사용후핵연료 정책은 1956년 원자력위원회(AEC)가 발표한 ‘원자력의 개발 이용에 관한 장기계획’을 기본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안전성과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철저한 사전준비를 해온 모습은 사용후핵연료 정책 결정을 앞둔 많은 국가에게 교훈을 남긴다.

국내 원자력계 복수의 관계자들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당초 핵무지 보유국에만 허용되는데 1980년대 말 일본이 예외적으로 추가됐다. 일본의 사례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면서 “일본이 수십 톤의 플루토늄을 보유하면서도 군사무기 개발로 전용하지 않을 것이란 국제적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폭탄 피해국’이었다는 특수한 사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속증식원형로 ‘몬주’의 잦은 보수관리 문제 발생과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일본 내에서 원자력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자국민들은 원자력 기술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신뢰가 쌓여있다는 것이다. 이는 집권당의 교체에도 1956년 세워진 ‘원자력의 개발 이용에 관한 장기계획’에 기조는 변하지 않았고 꾸준히 추진됐기 때문이다.

1983년부터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정책을 시작하고 30여년 동안 이제 겨우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 1단계 운영을 시작하고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법안 마련을 앞두고 있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재처리와 관련된 외교안보적 여건은 미뤄두더라도 결국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숙제는 국민적 수용성을 어떻게 아우르며, 가장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에 우리만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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