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체기술 선진국 대비 70% 불과…공급망 형성 녹록치 못해
2022년까지 28건 미확보기술 개발, 동남권 유관기관 실증화 지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1세대(1960~1980년대) 건설 원전의 해체시점이 다가오는 2030년대부터 해체시장이 가시화할 가능성이 높다.

2018년 8월 기준으로 전 세계 원자력발전소 675기 원전 중 가동년수가 30년 이상 된 원전이 270기로 가동 원전의 약 60%가 설계수명인 4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다시 말해 1960년대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건설한 원전이 설계수명을 마치는 2020년대부터 오는 2050년까지 총 430여기가 원전을 안전성 검사 및 대규모 교체 작업을 통해 계속운전을 할 것인지 아니면 영구정지하고 제염 해체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특히 원전해체는 천문학적 비용 못지않게 건설시공보다 더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되는데 IAEA는 상업용 원전 해체시장을 2050년까지 약 440조원으로 추산했으며, 연구용 실험로와 핵주기 시설 등 원자력시설 전체 해체 시장은 1000조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가 원전해체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미래 먹거리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원전해체 시장이 원전관련 산업의 ‘블루오션’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과연 원전 해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을까.

아드리안 심퍼(Dr. Adrian Simper) 영국 원자력해체청(NDA, Nuclear Decommissioning Authority) 전략 및 기술이사(Strategy and Technology Director)는 “원자력이라는 특수성을 빼고는 기존의 공장이나 체육관 같은 ‘시설 해체’와 똑같다고 보면 된다. 다만 원전해체의 경우는 방사선이라는 위험 요인이 존재하고, 해체 기간도 짧게는 15년에서 길게는 100년 정도로 오래 걸린다는 점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그는 “물론 영국처럼 수십 기에 달하는 원자력 시설에 대한 해체가 계속 진행된다면 산업의 공급망과 인력고용 창출은 유지되겠지만 신규원전 건설과 같은 ‘블루오션’은 아니지만 내수시장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며 “원전해체 기술은 융‧복합기술로 원자력산업이 존재하는 동안 해체시장은 계속 진행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영구정지 원전은 169기로 국가별 수는 미국 35기, 영국 30기, 독일 29기, 일본 18기 등이다. 그러나 이들 중 21기만 해체가 완료됐으며, 그 중에서 상업용 원전 16기를 해체한 미국이 가장 많은 경험과 다양한 해체 사례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국내의 경우 2017년 6월 영구정지에 들어간 고리 1호기 해체를 통해 원전의 ‘건설-운영-해체(폐기물 관리)’에 걸친 전(全) 주기 원전 산업 체계를 완성하는 기회로 삼아 “국내 원전생태계의 미래 먹거리로 해체산업 육성과 향후 원전해체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고리 1호기는 국내 최초로 해체하는 상업용 원전인 만큼 해체 사업을 위한 여건은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다. 연구로 해체, 대형기기 교체 등의 경험을 통해 일부 해체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만 국내 해체 기술은 선진국 대비 70% 수준이다. 또 본격적인 해체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체 공급망이 다소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해체가 본격 시작되는 2022년까지 28건의 미확보 기술을 개발 완료해 국내 기술로 고리 1호기를 해체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 제1호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는 40년 운영을 마치고 2017년 6월 19일 영구정지에 들어갔다.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특히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원전해체 기술력 확보를 위해 동남권 지역에 원전해체 관련 연구시설 설립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지자체간 해체연구센터(가칭) 유치경쟁이 과열양성으로 흐르기도 했다.

그렇게 2년간 정부는 산·학·연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치고 지자체 등과 입지 및 설립 방안을 협의한 끝에 부산·울산과 경주에 각각 원전해체연구소(경수로 분야)와 중수로해체기술원(중수로 분야)을 설립하기로 했다.

산업부는 “최근 원자력산업은 변곡점을 맞이했지만 이는 관련 산업의 일자리가 축소되는 것이 아닌 원전건설 등 선행주기 중심에서 원전해체, 사용후핵연료 등 후행주기와 신 유망분야 중심으로 구조가 변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2030년까지 12기의 원전이 해체대상이 됨에 따라 관련 분야 인력수요가 ▲2022년 447명 ▲2025년 1142명 ▲2030년 2659명 ▲2034년 3001명 등으로 급증할 전망이며, 특히 원전해체연구소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는 신규 일자리 창출과 원전해체 기업 집적화, 해체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의 파급효과를 기대하는 상황이다.

15일 한국수력원자력은 부산시, 울산시, 경상북도, 경주시와 ‘원전해체연구소 설립 및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한수원과 지자체들은 업무협약을 통해 앞으로 원전해체연구소 설립과 운영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키로 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해체연구소는 지역의 원전해체산업 생태계 기반구축은 물론 고용창출 등을 통해 지역의 동반성장을 크게 견인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하며 정부와 지자체, 국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그간 부산지역에서는 원전해체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해 2014년 결의 및 서명운동에 10만명의 시민이 동참하는 등 국내 최초 해체원전인 고리 1호기의 안전한 해체를 위한 기술개발과 산업 육성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실제로 부산은 지난해 원전해체 경험이 있는 미국 국립아르곤연구소와 업무협약을 체결한데 이어 부산대와 원전해체 전문 인력양성 교육과정을 개설해 연 20명씩 인력양성을 하고 있다. 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동남지역본부와 지역 원전해체 전문기업에 기술개발 지원도 하고 있으며, 부산상공회의소, 부산테크노파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등 산학연이 함께 원전해체산업 육성협의회, 원전해체 기술협의회를 구성해 기업간 네트워크도 구축하는 등 원전해체산업 육성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원전해체 산업은 막대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산업으로서 국내 탈원전 시대를 이끌 미래 산업”이라며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 지역은 이미 원전해체와 연관된 관련 산업과 기술력, 연구 인프라 등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에 지역 기업들과 원전해체연구소가 유기적으로 협력해서 수백조 원 이상의 세계 원전 해체시장을 빠르게 선점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역숙원사업을 부산과 공동으로 유치한 울산지역도 원전해체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해 2015년 결의 및 서명운동에 47만 명의 시민이 동참하는 등 총력전을 펼쳐왔다. 울산은 이미 원전해체 산업에 필요한 울산에너지고교, UNIST(원자력공학부),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등 원전해체 전문 교육기관과 기술개발 및 실증화를 지원할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울산테크노파크 등 연구기관이 집적화돼 있다.

무엇보다 원전해체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의 산업화를 이룰 방사선 측정 관리 연관 분야 200개 기업, 제염기술 연관분야 176개 기업, 해체 및 절단기술 연관분야 1400개 기업, 폐기물 처리와 환경복원기술 연관분야 170개 기업이 울산 미포와 온산국가산업단지 등에 소재하고 있어 최단기간에 세계적인 원전해체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정부의 원전해체산업 육성전략 발표와 원전해체연구소 울산·부산 유치를 계기로 국가와 지역의 원전해체산업 육성 액션 플랜을 차질없이 이행하고, 세계 1위의 원전해체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국가비전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나아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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