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각자 직업윤리 지키고 ‘청렴의식’으로 무장해서
부정과 비리 유혹과 맞닥뜨렸을 때 “한국인답게 행동하자”
'제도와 절차' 보다 ‘결과’ 우선시하는 병리현상 치료해야

남영규 한수원 정보보안처장
남영규 한수원 정보보안처장

“한국인답게 행동하라”

대한민국의 정신은 어디 있나?

내년에 첫 항해를 목표로 타이타닉호를 다시 건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무척 흥미롭다. 내년에 타이타닉Ⅱ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1912년에 침몰한 타이타닉호가 110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남녀 주인공이 뱃머리에 올라 두 팔을 벌리고 새처럼 바람을 맞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영화로 더 친숙하다.

영화도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실제 타이타닉은 더욱 감동적인 교훈을 줬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에도 ‘여자들과 아이’들을 먼저 구명정에 태운 것이다. 타이타닉호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의 동상에는 “영국인 답게 행동하라(Be British)”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는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선원들에게 “영국인답게 행동하라”고 영국의 정신을 일깨웠다. 죽음 앞에서도 영국인들을 그처럼 의연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영국인들에게는 ‘버큰헤드 정신 (Birkenhead Spirit)’이 있기 때문이다.

1852년 2월 26일 영국 해군의 버큰헤드함은 남아프리카 희망봉 근처에서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기 시작했다. 함장 알렉산더 세튼 대령은 “여자와 아이 먼저” 구명보트에 태우라고 명령했다. 군인들은 구명보트의 가족들에게 경례로 이별을 하고 버큰헤드함과 운명을 같이했다.

이렇게 탄생한 ‘버큰헤드 정신’은 영국의 사회규범이 되었고, 나아가 직업윤리로까지 자리잡게 되었다. 버큰헤드 정신은 영국의 정신으로 남아서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영국인 답게 행동하도록” 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의 승객이 사망했다. 세월호 침몰 장면은 실시간으로 방송되었고,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SNS 등으로 접했기 때문에 더욱 비통하고 충격적이었다. 수학여행 길에 오른 고등학생들은 어른들이 구조해 줄 것으로 믿고 선내에서 기다리다가 희생당했다.

국민들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과 선장, 선원들 그리고 정부 당국에 분노했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나? 우리는 ‘촛불’로 분노를 표시했지만 그 이후에는 무엇을 했나?

우리나라는 전후 ‘한강의 기적’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고속 · 압축 성장을 해왔다. 고속 경제성장을 일궈내는 과정에서 안전이나 인권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제도와 절차, 즉 프로세스는 미비하거나 도외시되기 일쑤였다. 빠른 추격자였던 대한민국이 '제도와 절차'보다 ‘결과’가 우선하는 병리현상이 자리 잡았다.

세월호도 규정과 절차를 지키지 않은 병리현상의 결과물이다. ‘세월호’는 우리를 분노하게 했고, 우리는 관계자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숙제를 남겼다. 세월호의 선장이나 선원, 불법행위를 단속하지 못한 ‘공무원’들을 거리낌 없이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 볼 숙제 말이다. 우리는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법과 절차’에 따라서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비단 물리적인 사고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 잠복해 있는 병리현상은 없는지 우리 각자가 고민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사회 곳곳에서 또 다른 형태의 세월호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우리 각자가 직업윤리를 지키고 ‘청렴의식’으로 무장해야한다.

우리 모두 '청렴의식'으로 무장하면 빠른 추격자였던 대한민국에 내재되어 있는 병리현상을 치료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도 사회규범으로서 “한국인답게 행동하라”는 ‘대한민국 정신’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타이타닉호처럼 재난상황 또는 부정과 비리의 유혹과 맞닥뜨렸을 때 “한국인답게 행동하라”를 따르면 되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더 이상 부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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