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설비, 불이익(Disadvantage)이 아닌 “혜택(Advantage)”

김필선 한전 인천본부장.
김필선 한전 인천본부장.

올해 초 관내 변전소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기존 옥외변전소 일부를 옥내화 하면서 생긴 유휴부지 활용방안에 대해 관계자들과 협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오랜 기간 상당한 불이익을 감내하며 변전소와 함께 살아온 주민들에게 앞으로 많은 지원을 바란다는 한 관계자의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불이익을 받으셨다니요. 전국에 전주가 1천만기, 철탑 4만2천기, 변전소 890개소가 있는데 우리 전력설비가 있는 곳이 더 발전된 지역이고 더 잘사는 곳입니다. 그동안 혜택을 받으신 겁니다.”

1960~70년대 박치기 한 방으로 외국 선수들을 줄줄이 쓰러뜨리며 국민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선사했던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 세계챔피언에 오른 뒤 대통령의 초대로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소원을 묻자 그는 자신의 고향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전기가 귀했던 그 시절에는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고, 호롱불을 들고 밭일을 했다. 1960년대 당시 전화율(電化率)은 농어촌은 12%, 도시는 51%에 머물러 있었다. 전국 규모로 따지면 25.5%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1965년 12월 30일 제정·공포된 ‘농어촌 전화(電化) 촉진법’에 따라 농어촌 전화사업이 시작되면서 시골마을 진입로 군데군데에 전주가 세워지고 기술자들이 전선뭉치를 들고 다니는 등 가설공사가 한창 벌어졌다. 각 마을에선 공사가 끝나면 전기 개통식이 열리곤 했다. 다 같이 “하나, 둘, 셋”을 외치면 전깃불이 들어왔고, 이를 본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전력설비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 집에도 전기가 들어온다며 전주 공사를 하던 분에게 시원한 물 한 잔 챙겨다주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집값이 떨어지고, 시야를 방해하는 혐오시설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국민들은 반대를 외친다. 축제의 장이었던 전력설비 건설 현장은 어느새 전국 민원의 장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고객에게 품질 좋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한전의 기본 책무이다. 한전은 모든 고객이 안정적인 전력공급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송변전설비 적기 확충은 물론, 체계적인 배전설비 운영과 차세대 전력인프라 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호당 정전시간 8.90분을 기록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계통 신뢰도를 달성하게 되었다.

전기요금도 다른 주요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MWh당 103.9달러로 OECD 회원국 평균(170.1달러/MWh)에 크게 못 미친다. 이는 독일 전기요금의 1/3, 일본 전기요금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처럼 저렴하면서도 세계 최고 수준 품질의 전기를 국민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주변 가까이에 전력설비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력설비는 더 이상 고객에게 불이익(Disadvantage) 대상이 아닌 “혜택(Advantage)”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전은 전력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고객에게 품질 좋은 전기를 공급하기 위하여 최적의 전력계통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전국적으로 전주 994만기, 송전철탑 42,647기, 변전소 892개소 등의 전력설비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들은 Spot Network식, 즉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환상망 계통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전기는 환상망 형식으로 우리 몸 구석구석에 흐르는 혈액과도 같이 유기적으로 조화(harmony)를 이루며 연결되어 조류(current)에 맞게 공급되고 있다. 우리 몸 한 부위가 아프면 다른 신체부위에도 이상이 생기듯 전력설비도 마찬가지로 어느 한 군데라도 균형이 맞지 않으면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곳곳에서 전력공급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결코 내 땅, 내 마을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의 땅과 마을에는 설치돼야 한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막대한 전력설비들은 이미 누군가의 땅에 설치되어 내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웃지역 주민들의 배려 없이는 우리 집 전등 하나 켤 수 없듯 서로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고, 환경 및 사회적 가치가 균형된 따뜻한 에너지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미국의 펜실베니아주에 가면 기독교 메노나이트 분파인 “아미쉬(Amish)”라는 공동체가 있다. 이들은 현대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여전히 말이 끄는 마차를 이동수단으로 사용하고, 전기도 없이 생활하고 있다. 물론 꼭 필요한 전기는 스스로 아주 소형의 자가발전기를 활용하고 있다. 당연히 전주도, 철탑도, 변전소도 없다. 전력설비 없이 문명과 단절된 채 격리된 아미쉬(Amish)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전력설비와 함께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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