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나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정책연구실장(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심화된 자유화 요구…7중 하청구조, 제염 현장 내몰린 일용직노동자

원자력의 안전한 운영과 노동조합의 역할, 사회?제도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원자력 관련 노동조합(한국수력원자력노동조합, 한전KPS노동조합, 한국전력기술노동조합, 한전원자력연료노동조합)과 함께 2013년 초부터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에너지 산업 전반에 대한 민영화 정책 비판, 산업별 대안 모색, 공공성 확보 방안 등의 연구가 상당히 활발하게 추진되어 왔지만 원자력을 주제로 한 연구는 상당히 뒤늦은 바 없지 않다. 한국의 원자력 문제는 탈핵 혹은 반핵의 공방을 넘어 원자력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사회적 과제라는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야 할 시기이다.

과연 원자력이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해당 노동자들의 현황은 어떠한지, 정부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원자력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중장기 대안은 무엇인지. 이를 위해 원자력 산업의 현황에 대해 보다 면밀히 조사하고 원자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 또한 들어야 한다.

이번 연구를 시작하면서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원자력 종주국이자 수출국, 원자력 안전신화의 원천국인 일본에서 원자력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의 충격으로 전 세계는 원자력 르네상스 흐름을 접고 원전축소 분위기로 되돌아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인접국인 한국은 원자력 확대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과연 일본 원자력 사태의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원자력과 관련한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사를 준비하였다. 특히 10여개의 민간 전력회사가 일본의 전력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자력의 사고와 민영화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에 대해 주요한 실사의 초점을 맞췄다.

실사의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고, 충격적이었다. 후쿠시마 사고의 장본인인 동경전력의 패권, 패권의 파트너인 동경전력 노동조합, 건설 및 메이커 업자들이 주도하는 원자력 현장, 6~7중 하청구조, 원자력 사고 이후 더 심화된 자유화 조치 요구, 제염작업으로 몰리는 일용직 가난한 노동자들의 현실.

감히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본의 현실이었다. 한국의 원자력은 민영화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선진화 요구, 경쟁압력으로 한국 역시 민간업체의 진입과, 하청구조의 가속화가 이루어지는 조건이다. 아직까지 일본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민영화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원자력 산업의 선진화?합리화 조치가 한국의 원자력 산업을 후진화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향후 한국의 원자력 발전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 노동자와 환경 및 제반 사회적 활동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향후 과제는 우리의 연구 결과를 통해 사회화시켜나갈 것이다.

이번에 우리는 도쿄전력에 종사하는 현직 노동자, 원자력에 종사하였다 해고당했던 하청노동자, 최근 후쿠시마에서 제염 작업에 종사하였던 일용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이들과 함께 연대하는 피폭노동자연대회의, 후쿠시마핵사고긴급회의 등 노동?사회 연대단체와도 면담을 가질 수 있었다. 비정규직?하청노동자의 전국조직인 전국일반노조를 만났는데 이들은 일본 전노련 산하 조직이다. 일본의 전노련은 우리의 민주노총과 연대하는 조직이다. 한국의 공무원노조와 비슷한 조직이자 활발히 연대하고 있는 전일본자치로를 만났고 같은 자리에서 환경?평화단체인 평화를 위한 포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원자력연구개발노동조합을 만났는데, 역시 한국의 원자력연구소노동조합과 비슷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었다. 그러나 원자력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를 피력하고 있는 이례적인 노동조합 조직이었다. 원자력 종사들의 피폭 상황을 조사하고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원자력자료정보실 그리고 일본의 전력정책 전문가이자 도쿄전력의 폐해를 연구해왔던 전문가를 만나 일본 전력산업 전반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다양한 노동집단과 시민단체, 전문가 등 짧은 시간이었지만 일본의 원자력 산업 전반의 현황과 문제에 대해 생생히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1)민영화와 하청구조
일본의 전력산업은 국영기업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전쟁 이후 9개로 분할되어 민간지역독점 회사로 유지되고 있다. 1960~7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 시기, 소위 “민간 활력”이라는 이름으로 원자력에 대한 활발한 국가투자가, 민간지원 형태로 진행됐다. 민간회사라 할지라도 국가의 지원 하에 원자력 발전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원자력은 도시바, 미쯔비시 등 소위 메이커 회사와 건설 회사가 주도하면서 설비-건설-유지?보수 전반에 개입하는 양상이다.

동경전력만을 보더라도 동경전력과 정규직은 운영만을 담당하고 설비업자와 건설업체들이 향후 운영 전반을 분업하는 양상으로 볼 수 있다. 원자력의 유지ㆍ보수 전반을 이들 메이커 업자와 건설업자가 주도하면서 전형적인 일본의 다중 하청 구조를 양산해 왔다.

이로 인해 노동현실은 6~7중을 넘어서는 하청구조로 유지되어 왔다. 예를 들어 지역별로 집중되는 계획예방정비에 수천 명의 일용직이 동원되는 구조로 원자력에 전문지식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고선량 작업에 인해전술식으로 대거 투입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안전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원자력 현장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 현장 지휘권조차도 불투명해져 왔다. 인터뷰 과정에서 대다수 노동자들과 시민단체는 일본의 하청구조와 민영화가 후쿠시마 사고의 원인이라고 했다.

한국의 원자력은 민영화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유지ㆍ보수를 담당하는 한전KPS는 정부의 정비시장 개방 등 민영화 요구에 의해 민간정비 회사에게 자기 업무를 내주어야만 했다. 원자력은 아직까지 핵심부문에까지 민간시장 개방을 확대하지 않았지만 점점 확대되는 양상이다. 원자력 중 비핵심 부문 즉 2차 측과 화력 등은 민간 정비업체가 상당부문 진입하였다. 전력산업 전반의 민영화, 시장개방, 선진화 조치로 인해 원자력 및 전력산업 전반에 하청구조가 형성되어온 조건이다. 그러나 한수원과 한전KPS 등 현장 인원부족이 계속되는 조건에서 하청의 확산은 결국 일본과 같은 원자력 현장의 위험성을 증대시키는 결과로 나아가기 쉽다.

(2)노동조합의 현황과 대응 양상
이번 실사에서 동경전력 노동조합, 일본의 전력총련(전력관련 노동조합 연대체)등을 만나기 위해 시도하였다. 일본의 전력관련 노동조합들이 폐쇄적이고 민주적이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어 왔다. 그러나 실상 일본에 가서 전력관련 정규직 노동조합의 현실을 보고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경전력 등 전력총련을 만날 수 없다는 말에 다들 ‘만나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전력관련 노동조합은 1950년대 이후 민영화되는 과정에서 민주적 노동조합이 몰락하고 소위 어용노조가 득세하였다. 회사와의 파트너쉽을 통해 노동조합은 비민주적?패권적으로 공고화되었고, 정규직만의 노동조건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노동조합이 운영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도 동경전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지난 수십년 동안 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해 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노출하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한국에서도 노동조합 민주화 투쟁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 정규직의 신분으로 비공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또한 놀라웠다. 동경전력 등 전력관련 노동조합은 일본사회에서 상당한 권력을 지녔으나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존재였다. 물론 우리가 만난 현장노동자와 같이 힘겹게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다.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동경전력은 수십조 원에 달하는 구조조정 플랜에 직면해 있다. 이제 직접적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통해 후쿠시마 사고 수습 비용의 일부를 마련해야 할 처지이다. 구조조정에 맞선 일본 전력노동조합의 선택에 대해 향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반면 우리가 만날 수 있었던 일본의 원자력연구소 노동조합은 상당히 진보적인 조직이었다. 물론 같은 조직 내 더 큰 규모의 노동조합이 있고 이들은 동경전력 등 노동조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했다. 소수 노조이지만 이들은 원자력 정책, 노동조건 등 제반의 문제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당당한 조직이었다. 기술전문가로서 솔직하게 원자력 정책에 대해 말해주었고 또한 기술자 노동자로서의 자부심과 정책 제언도 해줬다.

한국의 전력관련 노동조합은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으로 인해 한전에서 한수원과 화력 5개사로 2001년 분할됐다. 원자력의 설계, 원자력 연료 생산,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조직은 한전의 자회사로 존재하는 양상이다. 전력관련 노동조합 연대체가 존재하고 관련 노동조합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으로 분화되어 있다.

그러나 원자력 관련 정책과 관련해서는 자유롭지 못하였다. 특히 원자력 정책을 둘러싼 민주노조 내 그리고 시민환경 단체와의 관계 모색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원자력 확대 정책이 고용 및 노동조건의 안정화와 직결될 것인가, 원자력 확대 정책이 과연 해당 노동자들에게 순기능으로 작용할 것인가, 원자력에 종사하는 고위험 노동자들의 인권과 건강권이 과연 확보되어 왔는가 등이 향후 원자력 관련 노동조합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원자력의 안전한 운영의 주체인 노동자들의 자기 권리 확보는 안전한 운영을 해야만 할 노동자로서의 의무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제부터 많은 고민이 요구되는 사회적 과제이다.

(3)일본의 자유화 조치와 한국사회의 과제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동경전력 등 전력산업의 자유화 조치가 진행되고 있다. 동경전력이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우선적 비용은 해당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 비용으로 충당) 동경전력의 경쟁력 있는 부문을 매각하여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자유화 조치 흐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효율성이 높은 가압경수로를 매각하여 그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음으로 송배전을 분리해야 한다는 정부 정책인데 이는 전형적인 일본의 지역독점 구조를 해체하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지역독점 민간기업으로 고착된 일본의 전력산업이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더욱 분화된 민간 경쟁구조로의 진입 양상 경향으로 판단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이건,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던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 지역독점 구조식 전력산업의 경쟁 강화, 비정규직-하청노동자들의 노동권의 지속적 하락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향후 일본의 자유화 조치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것이다. 어떠한 방향이건 자유화 및 민영화 정책으로 인한 일본의 현실이 한국사회에 이식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력 및 원자력 산업은 역시 경쟁강화와 민영화 요구에 의해 점점 더 안전성을 잃어가고 있다. 잇따른 사고, 은폐되는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와 스트레스, 비정규직 및 하청의 증가, 비용절감 위주의 경영방식, 비효율적 병영적?관료적 경영 등은 한국의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자력이 운영되는 한, 반드시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안전한 운영에 있어 가장 큰 의무와 책임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있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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