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 전문가에게 묻다④]김경수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른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 발생량 감소 등으로 2016년 마련된 관리정책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대두되며,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재공론화 추진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3월 25일 <전문가그룹 의견보고서> 온라인토론회를 지켜본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원전지역 주민들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의 일방통행 소통과 밀실행정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토론회를 지켜 본 원자력계 안팎에서는 “재검토위원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월성원전 포화시점 산정이나 맥스터 추가건설 여부 등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면서 “전문가 합의에도 난항을 겪은 문제를 일반인이 참여한 공론화에서 결론을 낼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전문가 의견수렴은 사용후핵연료 관련 전문적 의제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충분하게 수렴하기 위한 것으로, 의견수렴 결과가 공정하고 균형있게 도출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의견개진과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으며, 전문가들 입장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재검토위원회는 전국민 원전 소재 지역주민 의견수렴을 위한 본격적인 시민참여형 조사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중장기 정책과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 추가 확충에 대한 의견수렴 시민참여단 모집을 위해 2만여명을 대상으로 전화를 활용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시민참여단의 참여의사를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본지는 창간11주년 특집호(제250호)에 <‘뜨거운 감자’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 전문가에게 묻다>라는 주제로 가장 바람직한 공론화 추진을 위한 관련분야 전문가들의 고견을 지면에 담아냈다. <편집자 주>

김경수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
김경수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

코로나19의 창궐로 우리는 그동안 의미가 있든 없든, 아무런 제약 없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영위하여 왔던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강력한 전파력을 지닌 바이러스가 지구상에서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던 행위에 제한을 가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지만 현재까지 그나마 우리나라가 일상의 변화를 가장 최소화하면서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국가로 인정받으면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면서 국가의 시스템을 견고하게 유지해 나가는 글로벌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만들어 내는 밑바탕에는 정부의 리더쉽과 국민의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으로 믿는다.

‘뜨거운 감자’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는 1980년대부터 여태까지 유독 정부와 국민 사이에 골만 깊게 파인 채로 한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는 해묵은 숙제이다. 원자력계의 가장 답답한 병목 구간이면서 친환경을 추구하는 에너지믹스 경쟁에서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문제가 서두의 코로나19를 헤쳐나가는 상황과 너무 극명하게 대비되기에 아쉬움도 더 크고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바이러스는 팬데믹 위협이고, 이에 비하면 사용후핵연료는 핵분열 활동이 끝난 상태로 지극히 국지적인 한 지점에 머무르고 있는 수준이므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해법과 집중력이 그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원론적인 접근 방법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이 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방역 대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정부의 정책과 방역 대책을 신뢰했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정치권에서, 또 언론을 통해서 부정적인 목소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국민과 정부가 서로 신뢰하지 않았으면 이러한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를 대처하는 정부의 우직할 정도의 투명성과 정직성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과적으로 위기 속에서 국가 브랜드를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다.

이런 혼돈한 시기의 중심에서 지난 3월 25일,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산하 전문가검토그룹의 논의 결과에 관한 온라인 토론회가 있었다. 당시 기술 분야의 패널 토의에서는 의제별로 합의, 미합의하는 방식의 문제점과 중장기와 단기 관리방안이 섞여 있어 집중도가 떨어지는 문제점 등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재 재검토위원회는 중장기적인 관리방안과 월성원전 내 맥스터 건식저장시설 증설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다. 따라서 재검토위원회의 활동 막바지에 이르러 공론화의 방법론을 논의하는 것보다는 이후의 의견수렴, 관리정책 재정립 등의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제언하고자 한다.

그 첫째는, 공론화 과정에서 다루는 지극히 기술적인 문제는 철저히 전문가집단에 최종적인 판단을 맡기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고, 시행착오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전문가들의 중지(衆智)가 흔들려서는 아니 된다. 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전문가를 포함하는 일반 국민의 의견은 자칫 놓칠 수도 있는 귀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현재 재검토위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반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의 편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객관적인 정보전달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기술적인 장단점, 우리나라의 현재 기술력과 기술자립 대책, 인문사회적으로 나타나게 될 직간접적인 영향 등을 치우침 없이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해야 한다. 전문가의 기술적인 깊이를 일반 국민에게 설명할 수는 없겠으나 판단에 필요한 경중은 같게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권고안 제출 이후 정부는 관리정책의 재정립 과정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가장 안전하고, 비용면에서도 효율적인 큰길을 뚫길 바란다. 최종적인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관계기관의 전문가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시급성과 시의성이 타당한데도 자칫 국가관리 책임의 무게감을 줄이기 위해 국민의 의견이라는 명분으로 구부러진 길이나 갈래 길을 만들지 않길 바란다. 설령 국민의 의사가 애매하더라도 직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로드맵을 세워야 한다. 우리에게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詩, ‘가지 않는 길’에서 두 갈래 길 중에서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해 얻게 되는 기회비용까지 고려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간 우리가 이 문제를 1980년대부터 미루고 넘겨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구처분에 필요한 부지 확보 문제 등이 부담되어 그 시기를 늦추는 정책은 되레 원자력의 경쟁력은 물론이고 국민의 신뢰를 점점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은 자명하다. 월성원전 내 사일로 건식저장시설의 운영허가가 종료되면 바로 처분할 것인지, 운영 기간 연장을 추진할 계획인지를 결정하여 로드맵을 세우되 처분 시점을 명시하는 것이 원자력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첫 단추이다. 국가가 언제 처분을 시작하겠다는 시점을 약속하는 것은 소내 건식저장시설의 확충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가 표류해 왔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최종적인 처분에 이르기까지의 큰길에 해당하는 로드맵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여건에서는 처분장 부지 마련이 쉽지 않음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일단 한 곳에 저장한 다음에 차후에 여건이 마련되면 처분할 곳을 물색하자는 의견, 저장할 곳이나 처분할 곳이나 부지를 찾는 어려움은 마찬가지이니 하나의 부지에 저장과 처분시설을 같이 두자는 의견, 어차피 원전부지에 임시저장시설을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니 처분부지를 마련한 후에 옮겨 처분하자는 의견 등이 있다. 의견에 따라서는 원전 영구정지 이후의 해체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으로 소내 임시저장시설의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법적 개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면서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이를 원만히 풀어 헤쳐나가려면 고집스럽게 곧고 큰길을 가는 것이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러려면 사용후핵연료의 갈 길과 시간은 가장 먼저 도달하는 처분 시점에 맞추고 관련 이슈가 이 로드맵에 연계되는 것이 바른 길인 정도(正道)일 것이다. 이러한 여정에서 경수로 사용후핵연료는 처분 시기를 늦추어 얻을 수 있는 기술적 이점이 있음으로 저장과 처분 스케줄에 유연성을 부여하거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할 미래기술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에 관한 소통을 개선하기 위한 사고의 전환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크게 보면 원자력계 전반의 안전성에 관한 정보에 따라 신뢰성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 현실에서는 원자력계, 정치계, 언론계, 일반 국민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고 보인다. 우리는 이미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 모든 ‘인지 오류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공동체 내의 소통에 보이지 않는 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갖는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전문가는 기존의 생각, 기준, 신념에 대해서 반대의 증거를 찾는 데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판단의 오류를 줄일 수 있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고 나아가 공동체의 소통에 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기술의 안전성에 반하는 증거를 찾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열린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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