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문화재단, ‘국내 사용후핵연료 현황과 전망’ 전문가간담회
정책 방향성과 국민수용성 위한 필요과제 ‘허심탄회’하게 풀어내

▲ 국내 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조 및 건식저장조
전 세계는 지구온도 2℃ 상승을 막기 위한 약속을 담은 신(新)기후체제 합의문인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을 채택했다.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저탄소에너지원 비중을 늘려야 하고 그런 측면에서 원자력발전의 ‘친환경성’은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선택한 원자력발전에 대한 의존이 높아질수록 높은 방사선과 고열을 지닌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할 것인가’는 원전을 운영하는 국가의 영원한 숙제이며, 중대한 도전이 됐다.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목표는 영구처분이다. 사실 처분장이 있으면 간단한 문제이다. 발전소에 저장했다가 열과 방사선이 감소되면 처분장으로 보내면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운영하는 국가가 없을 만큼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마련은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확보를 위해서는 부지 선정에 10~20년, 시설 설계·인허가 및 건설에 10~20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30~40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에 미국, 일본, 프랑스 등 22개 국가는 최종 처분 시설을 만들기 전 중간저장시설을 만들어 관리‧운영 중이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나라인 핀란드는 공론화를 통해 올킬로투 인근의 유라조키(Eurajoki)를 최종 부지로 선정했고 지난해 11월 정부가 건설 인허가를 최종 승인했다. 이에 폐기물관리 전문기업인 포시바(Posiva)는 올해 말 처분장을 착공, 2023년에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1984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계획을 시작했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을 확보하지 못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현재 가동 중인 24기 원전에서 매년 800t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하고 있으며, 원전 내 저장(건식 및 습식) 시설에 안전하게 저장 관리되고 있다. 2014년 말 기준 원전 내 저장시설용량 1만9095t 중 1만3807t(72.3%)이 저장중이며, 현재대로라면 2016년 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수조가 포화 상태에 이른다.

물론 저장 방법을 개선하거나 부지 내의 여유가 있는 저장 수조로 옮기는 등 저장 시설을 확충하더라도 2024년이면 포화가 불가피하다. 이는 2024년 이후부터는 별도의 저장 시설을 확충하지 못하면 원전의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심각한 사태까지 이를 수도 있다.

이에 2013년 10월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관한 국민의견 수렴 기구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공식 출범했고 지난해 6월까지 20개월간 활동했던 결과인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권고안을 토대로 지난해 연말까지 큰 틀의 정책방향 담은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할 방침이었지만 현재까지 답보상태이다.

송기찬 “특별법 마련해 국민과 함께 고민하고 결정해야”
채병곤 “정부, 처분사업 위한 마스터플랜 명확히 세워야”


한편 지난해 12월 16일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부지선정과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방법을 연구하는 두 연구자가 국내 방사성폐기물 관리 정책 방향성과 국민수용성 제고를 위해 필요한 과제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간단회는 김호성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이 좌장을, 송기찬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연료주기기술개발본부장, 채병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환경융합연구센터장이 참석했으며, 국내 사용후핵연료 현황 및 해외의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 건설 현황, 우리나라의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 가능성, 파이로프로세싱 연구 전망, 안전한 관리 방안 등에 대한 논의했다.

송기찬 본부장은 “일관된 정부 정책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추진체계가 원자력 정책의 필수 요건”이라며 “사용후핵연료 관리 특별법(가칭)에 명기해 국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채병곤 센터장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사업은 정부의 의지, 과학기술의 뒷받침, 그리고 사회적 동의가 함께 이뤄져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사업”이라며 “정부가 처분사업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명확히 세우고 이를 국민들에게 설명해 상호 신뢰의 기반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본지는 원자력문화재단이 발행한 무크지(mook誌) <원자력문화-2016년 1월호>에 게재된 ‘국내 사용후핵연료 현황과 전망’ 간담회 내용을 발췌해 옮겼다.

▲ 김호성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좌장ㆍ사진 좌) / 송기찬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연료주기기술개발본부장(사진 중앙) / 채병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환경융합연구센터장(사진 우) 
◆영구처분장 선정, 우리만의 기준 세워야
김호성 이사장=2013년 발족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20개월간의 활동을 끝마치고 지난해 6월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는데요. 2020년까지 지하연구소(URL)와 처분전 보관시설 건설을 위한 부지선정을 완료하고 2050년부터는 최종처분을 시작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일정이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추어 적정한지에 대한 논란이 좀 있습니다.

채병관 센터장=처분장을 선정하려면 지질특성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적절한 장소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 알려진 해외의 선정 기준과 방법은 일반적인 수준의 내용이라 국내 현실에 바로 적용하기 곤란합니다. 따라서 정밀한 지질조사를 포함해 많은 연구와 기술개발이 이뤄져야 하지요. 다행히 현재 상당한 양의 지질정보가 축적되어 있는데다 해외사례를 참고할 수 있어서 선발주자들에 비해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송기찬 본부장=지질 분야처럼 원자력 분야에서도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 연구자들과 많은 공동연구가 진행 중이고, DB(database)도 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협력을 통해 파악한 외국의 사례를 잘 활용하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채병관=다만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은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러 연구자들이 각자 연구를 진행했습니다만,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대규모 연구를 통해 여러 연구자가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김호성=핀란드와 스웨덴은 이미 이 단계를 거쳐서 최종처분장 건설허가를 완료했거나 대상 부지를 선정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다른 나라들은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 건설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죠?

송기찬=미국은 2008년 6월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 사용후핵연료처분장 건설허가를 신청하고 네바다 주의 유카마운틴 지역에 건설을 추진했지만 2009년 오바마 정부 출범 후 관련 프로젝트가 백지화됐다가 2010년에 재추진할 것을 건의하는 안이 제출된 상태입니다. 일본은 2002년 원자력발전환경정비기구(NUMO)에서 처분장 부지 공모를 진행했는데, 2007년 코치현 토우요우효 지자체가 최초로 응모했다가 철회해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김호성=지난번 방일했을 때 원자력발전환경정비기구(NUMO) 이사장과 대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사장의 고민이 ‘자율신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자율신청을 직접 받기보다 과학적으로 적합한 부지를 선정하고 이후 지역민의 동의를 얻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나눈 바 있죠. 그런데 일본이 당시 이야기한 형태대로 부지선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채병관=사실 자율신청 방법으로는 처분장 건설에 필요한 기술적 요건을 충족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국가가 먼저 일정한 기준에 따라서 후보군을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죠. 다만 주민들에게 한 번쯤은 거부권을 부여하는 것을 고려해보아야 합니다. 주민들에게 결정권을 보장해주는 유연성이 있어야 불안감을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김호성=그렇다면 지역민들의 거부권을 어느 단계까지 인정해야 할지도 고민거리일 것 같습니다. 주민들의 결정권도 필요하지만 거부권을 전 단계에서 가능하게 한다면 사업 추진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채병관=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차 조사단계가 끝나고 정밀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사실 정밀조사를 실시하려면 지역 주민들의 동의와 양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전에 안면도와 영덕의 사례를 보면, 지역 여론이 좋지 않아서 처분장 사업과 전혀 관련 없는 지질조사도 덩달아 못할 정도였어요. 당연히 처분관련 지질조사도 매우 힘들었지요.

◆영구처분장, 지질조사로 찾는다
김호성=핀란드나 스웨덴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지질 상황은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기에 적합할까요?

채병관=핀란드나 스웨덴은 스칸디나비아 순상지라는 매우 안정된 지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진도 거의 없고 대부분 화강암질 암석이므로 영구처분장 건설에는 이상적이지요. 이에 비해 한반도의 지각은 지각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된 편이기는 하지만 지진을 일으키는 활성단층의 분포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 몇군데 있어 면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김호성=방금 화강암을 주로 말씀하셨는데, 지난번 지질자원연구원장님과 이야기했을 때 변성암에 대한 이야기도 들은 바 있습니다. 국내 지각에는 변성암이 많아서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채병관=영구처분에 가장 적합한 암석은 화강암과 이암입니다. 우리나라는 포항 지역에 이암이 약간 있지만 지층이 얇아 처분장 부지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화강암은 풍부하지만 명승지가 많아 처분장 부지를 만들기에는 여러 문제가있고요. 그래서 추가로 고려할만한 것이 바로 화강편마암입니다. 화강편마암은 변성암의 일종으로 화강암과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는데다 우리나라 지각에 풍부합니다. 부지 선정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지요.

김호성=사용후핵연료는 적어도 10만 년 간 격리돼야 그 안전성이 자연 상태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긴 기간 동안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요?

채병관=지질조사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긴 시간 동안의 안전성을 예측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지질학은 오랜 기간 동안 지층이 변화해 온 과정을 세세하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10만 년은 물론 수 억 년 이후의 미래 시나리오도 설정할 수 있지요.

송기찬=안전성 확보에 대해 첨언하자면, 연구자들이 설정하는 안전성의 기준이 매우 높습니다. 지질안전성을 평가할 때는 사용후핵연료 용기부터 처분장의 방벽까지 모든 방호시설이 방사성물질 유출을 막는 데 실패했을 경우를 가정합니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것이지요.
▲ 지난해 12월 16일 대전에서 김호성 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이 좌장을, 송기찬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연료주기기술개발본부장, 채병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환경융합연구센터장이 참석해 국내 방사성폐기물 관리 정책 방향성과 국민수용성 제고를 위해 필요한 과제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폐기물을 연료로 재활용하는 파이로프로세싱
김호성=권고안에는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송기찬=영구처분장 부지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급적 적은 면적의 부지로도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수 있도록 방사성폐기물을 최대한 압축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사용후핵연료로 CANDU형 원자로용 연료봉을 만들려던 DUPIC((Direct Use of spent PWR fuel In CANDU, 핵비확산성 사용후핵연료 건식재가공) 프로젝트와 건식 핵연료 재처리 방법인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이 바로 그러한 고민의 소산입니다. 사용후핵연료를 한 번 더 연료로 가공하여 위험성이 높은 핵종을 태워 없앰으로써 영구처분 할 양을 크게 줄일 수 있으니까요.

김호성=지금은 DUPIC(듀픽)을 연구하지 않죠? PRIDE((PyRoprocess Integrated inactive DEmonstration facility, 공학규모 파이로 일관공정 시험시설)에서 파이로프로세싱만 연구 중인 것으로 압니다.
송기찬=기술개발에 거의 성공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가 CANDU형 원자로를 더 이상 짓지 않기로 하면서 결국 연구를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DUPIC 연구 과정에서 얻은 기술은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에 거의 모두 활용됐습니다.

김호성=PRIDE는 이름을 참 잘 지은 사례 같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파이로프로세싱 전 과정을 구현한 연구시설이죠. 어떤 연구를 진행 중인가요?

송기찬=파이로프로세싱은 크게 전처리와 전해환원, 전해정련과 전해제련의 두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PRIDE에서는 이러한 전 과정을 산업적인 규모로 키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후반부 공정인 전해정련과 전해제련은 우리 단독으로 연구할 수 없지만 현재 미국과 공동연구(JFCS)를 통해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적 타당성과 경제적 실효성, 핵비확산 수용성을 검증하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준비, 늦지 않게 시작해야
김호성=두 분의 말씀을 듣고 나니 사용후핵연료에 관한 기술개발과 안전한 처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기찬=지난해 6월 발표된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권고안’이 나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준비의 첫걸음을 뗀 것이지요.

김호성=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는 기술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수용성 문제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지역간 갈등에 대해서는 스위스와 독일의 사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스위스에서 사용후핵연료 처분 연구시설을 건설한 곳이 독일과의 접경지대인데, 처음에는 독일에서 반발이 컸어요. 스위스는 유럽 곳곳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것은 스위스 국민뿐 아니라 유럽, 나아가서는 인류 전체에 매우 중요하다고 독일을 설득했는데, 독일은 대승적인 관점에서 수긍하는 것으로 화답했습니다. 어차피 유럽의 국경이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해 왔을 뿐 아니라 ‘후손을 위한 일’이라는 점에 공감했던 것입니다.

송기찬=외국의 사례를 참고삼아 원자력계가 반성하고 앞으로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데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정부에서는 민간 기업들이 마음껏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경직된 규제를 해소해야 합니다.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국내 수주 실적이 없으면 정부 입찰에 참여할 수가 없는데, 이러한 규제를 완화하면 민간기업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안전 기술도 한층 빠르게 발전하리라 생각합니다.

김호성=두 분 말씀대로 일관성 있는 정책에 따라 관련 연구를 추진해 나가고, 이해관계자들이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두 분을 포함한 연구자 여러분께 열쇠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재단 역시 전문가와 일반 국민들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긴 시간 대담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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