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에너지공직자로 내공 “한국의 에너지믹스 정책, 나아가야할 방향” 제언

“2013년 9월 필자가 사장으로 취임할 무렵 한수원은 ‘원전 비리’와 ‘품질보증서 위조’ 문제 등으로 침몰하는 난파선과 같았다. 회사의 시급한 여러 현안을 해결하면서 ‘새로운 에너지 세계’에 대한 관심과 정책 아이디어 개발은 숙명처럼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조석(사진)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출판기념회가 지난 15일 서울시청 주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회에는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해 오영호 前산업부 차관, 이관섭 한수원 사장, 정만기 산업부 차관, 김창섭 가천대 교수 등 원자력계 인사들은 물론 방송인 최불암씨도 참석해 출간을 축하했다.

《새로운 에너지 세계》는 조석 전 사장의 30여년 공직생활과 한수원 3년여의 경험을 통해 세계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와 그에 대응하는 선진 5개국의 정책 및 주요기업의 대응전략을 살펴봄으로써 나아갈 좌표를 찾고자 저술됐다.

이날 조석 전 사장은 “다양한 각도로 에너지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고 생각이 서로 다른 전문가들과 만나 토론하며, 원자력 문제는 새로운 에너지 세계에서 중심 화두가 될 수밖에 없었고 ‘한국보다 앞서 나간 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라는 기본적인 의문에서 이 책은 시작됐다”고 발간취지를 설명했다.

《새로운 에너지 세계》에서는 우리가 머지않아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할 수 있으며, 스마트그리드를 통해 남는 에너지를 사고파는 ‘에너지 프로슈머’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는 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시장의 판도까지 뒤흔든다.

저자는 130여 개의 도표 자료를 통해 이와 같은 흐름과 현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경제 수준이 높고 제조업보다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는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의 국가는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추세다. 독일은 환경 정책을 주로 발의하는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함에 따라 재생에너지법, 발전차액제도 등을 도입해 EU체제 내에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프랑스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원전의 비중을 줄이는 세계적 추세와 달리 발전 비중 가운데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70%로 확대·유지함으로써 에너지안보를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올랑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기존 보수 정당의 에너지 정책 노선을 변경하고, 원전의 질서 있는 퇴각과 신기후체제에 대응하는 에너지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로 인해 프랑스 양대 전력회사인 EDF와 Engie는 경영난을 겪고 있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기존의 에너지 주도세력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며 미국발 에너지 공급 확대를 이룰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에너지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할 것을 예고한다. 트럼프발 변화의 진원지는 셰일가스 발견 및 수압파쇄법이라는 신공법의 기술로 인한 셰일 에너지 현실화이다. 미국은 셰일 에너지를 지원군으로 삼은 채 시장의 선택에 따라 에너지믹스를 조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한 Duke Energy와 기존 사업 운영 효율화에만 집중한 Exelon의 성과가 대비된다.

한편 일본에서는 동경전력이 운영하던 원전이 2011년에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발생하면서 일본 정부는 원전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사고 복구 및 피해 보상에 요구되었다. 점차 전기 요금이 급상승하고 에너지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2015년부터 원전을 단계적으로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반면 중국으로 대표되는 개발도상국은 신기후체제에 대응하고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면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을 확대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은 사고 가능성과 그 위험성 때문에 운영 여부에 관해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나뉘지만 탄소를 적게 배출하면서 경제성도 높은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정부와 국영 원전 기업인 CNNC가 주축이 되어 원전을 건설 및 운영하며 해외로도 원전 및 파이낸싱을 통해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 에너지 정책 동향과 에너지 기업의 전략 그리고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집대성했다. 이는 현직에 있거나 장차 에너지 정책 입안자, 산업 참여자가 될 이들을 위한 조언이다. 이들에게 에너지 정책의 주기가 길다고 해서 정책의 적시성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정책의 신뢰성을 위해서 적시에 적절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조 전 사장은 “에너지 패러다임이 저탄소 에너지 중심으로, 그리고 환경과 안전이 최우선시되는 에너지의 세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고 세계 각국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관한 논의가 하루 빨리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 전 사장은 “새로운 에너지 세계가 우리 논앞에 펼쳐지고 있다. 적시에 대응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모범적이며 성공적인 에너지 국가로 평가받던 한국이 새로운 에너지세계에서 갈라파고스 섬이 될 수도 있다”면서 “그런 위기감 속에서 이 책이 새로운 에너지 세계에 대한 논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조석 전 한수원 사장은 지식경제부 자원정책심의관 겸 에너지정책기획관, 성장동력실장을 역임했다.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전사업기획단장으로 재직 시 19년간 묵은 과제였던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부지 선정을 위해 최초로 주민투표 방식을 도입했다.

최장기 미해결 국책 과제였던 방폐장 부지 선정을 성공으로 이끈 공로로 2006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됐으나 4개월 만에 에너지와 자원 분야에서 쌓아온 정책 경험과 노하우를 인정받아 지식경제부 제2차관으로 발탁됐다.

이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으로 취임해 조직문화와 이미지 혁신을 이끌었다. 2015년 세계원전사업자협회(WANO) 회장 자리에 올라 원전 강국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한편 국제적인 원전 안전 협력을 도모했다. 또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2016 원자력인더스트리서밋에서 국제 핵안보에 기여한 노력을 인정받아 공로상을 수상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경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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