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산업부, 울진군민 38만 염원 ‘모르쇠’ 일관하더니
신한울 3ㆍ4호기 적법한 절차 따라 ‘취소됐다’ 팩스통보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중단 등 무법적, 불법적, 망국적 탈원전 정책으로 우리나라는 이미 에너지망국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원전을 지키는 일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 됐다.”

정부는 전통에너지원인 원자력과 석탄발전을 과감하게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현행 7% 수준에서 오는 2040년 최대 35%로 대폭 확대한다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안)’을 밝혔다.

그러나 제2차 에기본(안)과 제6ㆍ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 건설예정이던 ‘신한울원자력발전소 3ㆍ4호기 건설 백지화’를 기정사실로 확정짓는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신한울 3ㆍ4호기 건설재개 범국민 서명’은 29일 현재 총 45만1465명(온라인 21만6149명/ 오프라인 23만5316명)을 돌파했다.

또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백지화’로 인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지역주민과 원전산업계가 한 목소리를 내며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해 행정적 수단으로 이용된 졸속적인 정부안 발표 공청회 무효”를 규탄하고 나섰다.

지난 23일 경북 울진군의회 원전관련특별위원회(위원장 김창오)와 울진범군민대책위원회(공동대표 장유덕 김윤기 이상균는 경남 창원시의회를 방문해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이날 울진군 원특위와 범대위의 창원시의회 방문은 지난 17일 경북도지사, 18일 국회 각 당 대표, 22일 한수원 경주본사를 차례로 방문해 38만 울진군민의 염원을 담은 서명부 전달과 같은 행보이다. 이에 3개 기관은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중단으로 인해 창원과 울진의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등을 논의했으며, 향후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재개 공동협의체 구성 및 공동성명서 채택 등 실질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기로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진의 아픔’ 67조 원 기회비용 사라져…1조원 매몰비용 국민부담
한편 지난 1월 2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울진군 간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진실ㆍ소통협의체’ 첫 번째 회의에서 울진군 측에서 ▲신한울 3ㆍ4호기 해결방안 마련 기한 설정(2019년 6월까지) ▲한수원(신한울 3ㆍ4호기 준비팀→정리팀) 관련부서 명칭 변경 ▲울진군민 의문사항에 대해 토론회 개최를 통한 답변을 요구한바 있다.

이에 산업부는 “울진군 측의 요구사항을 대통령 및 장ㆍ차관에게 진언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2개월이 넘도록 답변을 받지 못한 울진군과 지난 4일 세종시 소재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를 방문해 최종 답변서를 요구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11일 오후 5시께 산업부는 울진군수(원전안전과장) 수신으로 1장의 공문을 팩스로 보낸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산업부-울진군 소통협의체 관련 요청사항 회신>이라는 제목의 공문에 따르면 산업부는 “신한울 3ㆍ4호기 건설계획은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후속조치 및 에너지전환 로드맵(2017.10.24.국무회의) 및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12.29.공고)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취소됐다”고 답변했다.

또 산업부는 “따라서 우리부(원전산업정책과)는 울진범국민대책위에서 요청한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재개만을 목적으로 한 공론화, 전 국민 여론조사, 전문가토론화 등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다만 에너지전환 정책 관련 울진군과의 소통과 대화는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결국엔 이 공문을 통해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과는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취소’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다.

이에 장유덕 울진범군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신한울 3ㆍ4호기는 이미 1999년도에 정부와 울진군이 합의하고 추진해 온 약속된 사업임에도 일방적으로 중단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울진군민은 대규모 집회를 통한 한울원전 6개호기에 대한 가동중단은 물론 신한울 1ㆍ2호기에 대한 가동심사 중단 등 실력 행위에 나설 뜻”을 예고했다.

울진군이 한국원자력학회에 연구용역에 의뢰해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중단이 울진군 지역경제에 미친 손실 및 파급효과 분석한 ‘정부 탈원전 정책에 따른 지역보완대책 수립’ 보고서에 따르면 신한울 3ㆍ4호기 건설로 원전 평균 가동기간인 60년 동안 지역경제가 누릴 수 있었던 이익을 누적액으로 계산하면 지역 총 산출액 연간 1조1198억 원씩 총 약 67조 원이다. 그에 따라 창출되는 부가가치(GRDP) 연간 3246억 원씩 총 약 19조5000억 원, 개인소득 연간 1261억 원씩 총 약 7조6000억 원, 고용 연간 4052명씩 총 약 24만3000명의 손실을 입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원전 관련 직종에 지역 인구의 상당수가 종사하는 등 원전이 울진 지역경제를 떠받드는 상황에서 신한울 3ㆍ4호기 취소는 원전가동으로 지역경제가 누릴 수 있는 이익이 모두 기회비용으로 사라지고, 일거리가 사라지는 것을 넘어 지역경제 미래가 사라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는 신한울 3ㆍ4호기 매몰비용으로 한수원은 당초 1539억 원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전체 매몰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유한국당 윤한홍 의원은 당초 한수원이 계상한 종합설계용역 785억 원, 용역비 및 관리비 754억 원 총 1539억 원 외에도 건설지역지원금 1400억 원과 협력사 배상 예상비용 3500억 원 등 매몰비용이 최소 6500억 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혀낸바 있다.

또 한수원의 승인을 받아 주기기를 사전 제작한 두산중공업에 대한 배상비용을 한수원은 3230억 원으로 계산하고 있지만 두산중공업은 이를 훨씬 웃도는 약 5000억 원을 청구하고 있어 기타 소송비용 등을 더하면 원자력업계 및 언론은 매몰비용이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붕괴하는 원전산업 ‘창원의 눈물’…물량감소 자금압박 경영난 심각
원전 주기기를 생산해온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원전 관련기업이 창원 인근 지역에 몰려있어 정부의 과격한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생태계가 흔들리면서 이 지역 경제도 고사 위기에 직면한 사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일거리 절벽에 직면한 기업들이 생겨났고 2017년 하반기 신고리 5ㆍ6호기 공론화 과정을 통해 간신히 되살아난 기자재업체 역시 신고리 5ㆍ6호기 납품이 완료되는 올해 연말에서 내년 상반기에는 일거리가 끊겨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는 시간문제이다. 설령 해외원전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수출기회가 생긴다 해도 실제 생산이 이뤄지려면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그때 다시 원전생태계를 복원하려해도 불가능하다는 평가이다.

두산중공업 복수의 협력사 관계자들은 “신고리 5ㆍ6호기의 납품이 완료되면 사실상 일거리가 없는 상황”이라면서 “신한울 3ㆍ4호기 중단되면서 자금압박이 심해졌다. 금융권의 대출상황 요구와 높아진 이자율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고생하는 직원들의 급여를 챙겨야했던 탓에 결국엔 제작설비를 헐값에 팔아야했다”고 말해 탈원전 이후 심각한 경영난을 호소했다.

신한울 3ㆍ4호기 건설은 10년 넘게 정부 계획에 따라 추진되던 사업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지 조성이 완료되고 설계 및 원자로와 같은 고가의 기기 제작이 착수된 상태에서 건설사업이 중지된 것이다. 매몰비용만 7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기기 제작에 참여한 산업계와 일감이 사라진 2000여 중소기업은 큰 타격을 입었으며, 수많은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탈원전 상황이 계속되면 원전 공급망 붕괴와 인력 유출로 인해 국내 원전의 안전운영은 물론 원전수출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1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이 “신한울 3ㆍ4호기 공사 재개로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진 원전기업들의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숨통만이라도 터달라”고 호소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에너지전환 정책의 흐름은 중단없다”며 면전에서 거절했다.

특히 정부는 ‘에너지전환을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과 국민 삶의 질 제고’를 아젠다로 제시하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안)의 중점 추진과제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믹스로의 전환을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2040년까지 30~35%로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노후화된 원자력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의 수명연장과 신규건설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통에너지원으로 역할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천연가스(NLG)를 발전용 에너지원 역할을 확대하며 무모한 도전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가 절박한 환경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로운 클린 에너지 원자력 발전의 환경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다.

원자력산업계 복수의 관계자들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시설의 생산·설치·운영·폐기 등 모든 과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오염이 발생하고, 심각한 간헐성 문제 때문에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쏟아내는 전통에너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기조에 따라 원자력발전을 천연가스발전(LNG)으로 대체하면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세먼지 주범인 화력발전을 축소하고 재생에너지를 늘려가기 위해서도 안정적인 에너지원인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의 상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지가 ‘환경의 영웅’으로 선정한 마이클 쉘렌버거(Michael Shellenberger) 미국 청정에너지 연구단체인 환경발전(Environmental Progress) 대표는 2017년 10월 방한 당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전체 에너지사용량에 95%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현실부터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의 수장이라면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한 원자력발전의 기여도와 위험도 등을 분석한 후, 국가의 전체적인 손익을 평가해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언급했던 제언을 다시금 새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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