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일본 원자력 80년, 아직도 초창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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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일본 원자력 80년, 아직도 초창기인가?
  • 한국원자력신문
  • 승인 2020.09.2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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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무라 유키타카(北村 行孝) 과학저널리스트
키타무라 유키타카(北村 行孝) 과학저널리스트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39년, 유럽 물리학계에서는 독일의 오토 한(Otto Hahn)과 그의
연구진이 발견한 우라늄의 핵분열 현상이 화제가 되었다.
물리학자들이 추가 실험에 도전했고, 이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아사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郎)도 유학 중이던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열기를 끄트머리에서 느끼고 있었다.
원자력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먼저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으로 그 위력을 과시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의 종료와 함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본격화되었다. 구소련이 원자력발전소의운전을 개시하고 미국, 영국 등의 국가들이 원자력 발전을 빠르게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1956년에 원자력위원회와 일본원자력연구소, 원자력연료공사의 출범에 따라 연구개발 체계가 급속도로 마련됐다. 일본원자력문화진흥재단(일본원자력문화재단의 전신)이 탄생한 것은 그 후 10년이 지난 1969년이었다.
일본이 원자력 연구개발과 병행하여 해외 기술 기반으로 건설한 상용 원전의 발전이 본격화됐다. 1970년 일본원자력발전의 쓰루가 1호기(357 MWe, BWR)와 간사이전력(関西電力)의 미하마 1호기(340 MWe,PWR)의 상업 운전이 시작되었고, 경수로 중심의 원자력발전이 빠르게 진전됐다.
필자가 원자력계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쇼와 시대가 끝나고 헤이세이 시대가 시작된 1990년대였다. 당시전국 규모 신문사의 기자로서 사회부에서 과학부로 자리를 옮겨 원자력정책과 안전규제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청(현 문부과학성) 담당 기자로 다양한 취재에 참여했다.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六ヶ所村)에서 핵연료주기시설의 건설 계획이 본격화 되던 시기에는 재처리공장에 대한 공청회에 참여하고, 후쿠이현 쓰루가시에 위치한 고속증식로 ‘몬쥬(もんじゅ)’준공식 취재를 나서기도 했다. 당시 필자의 주요한 관심사항은 국산 원자로 개발 노선의 이행 현황과 안전 문제였다.
1994년 4월 몬쥬가 최초 임계를 달성하였지만,1995년 12월 나트륨 누출 사고 당시 대응 과정의 졸렬함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초래했다.
1999년 9월에 이바라키현 토카이시에서 발생한 JCO임계 사고 중에는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했.
되돌아보면 고속증식로를 핵심으로 하는 핵연료주기 체계에 한계가 느껴졌지만, 상용 원자로의 주류인경수로 분야에서는 높은 국산화율을 토대로 고도화를 진행하는 등 비교적으로 순조로웠던 시기에 기자 생활을 했던 것 같다.
보도 현장을 떠난 지 약 10년 후인 2011년에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세계의 원자력 관계자는 체르노빌 사고에서 지옥의 바닥을 보았다’는 현역 시절 연구자들의 이야기는 잊지 않았지만 설마 그에 필적하는 사고가 일본에서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현역 시절 안전 연구의 부족이나 중대사고 대책의 필요성 등을 지적하기도 했었지만, 그때는 얼마나 달콤했었는가? 방사선의 인체 피해 방지를 근간으로 하여 수립된 안전 대책은 매우 관념적이었다. 환경 파괴, 가족과 지역 사회의 붕괴, 피난 생활에 따른 고뇌까지 그 영향은 훨씬 광범위하고 심각했다.
원자력에 미래는 없는 것일까? 인류 역사의 관점에서 에너지의 이용을 되돌아보면, 20만 년 전에는 유인원이 불의 이용을 시작하고 호모사피엔스가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등 에너지 이용을 고도화했다.
1만 년 전 쯤 농업 시작을 전후로 야생 동물을 가축화하여 동력원으로 삼았다. 불의 활용은 금속 이용의 길을 열었고, 문명의 탄생에도 기여하였다. 증기를 활용한 동력을 얻게 된 것은 불과 250년 전인 18세기였다. 석탄에서 석유로의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했고, 내연기관 등 엔진이 발명되었다. 전력을 동력원으로 하는 것 또한 약 150년 전인 19세기 후반에서야 가능했다.
왜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기술 혁신이나 사회의 변화가 심해서인지 현대인은 아주 단기간에 무언가를 연마하는 데 익숙해졌다.
원자력 이야기로 돌아가면, 에너지 이용의 역사는 불과 반세기 남짓이다. 게다가 원자로의 기본 콘셉트는 제1세대에 머물러 있으며, 천연우라늄을 어느 정도농축해서 화석연료처럼 사용하고 버리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고고학의 세계에서는 시대를 구분할 때 ‘조몬 초기’,‘어떤 시대 초기’ 등으로 표현하곤 한다. 원자력의 세계에서 이를 빗대자면 아직도 ‘초창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에너지에 한정하지 않고 원자핵 반응 관련으로 확장한다면 의학 분야에서 검사 기기나 치료 기기가 활약하고 있으며, 방사선의 산업적인 이용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실리에서 벗어난 분야에서도가속기는 물질의 근원과 우주의 수수께끼에 다가서고 있으며, 방사광시설 등 다양한 연구 분야에 공헌하고 있다.
이렇듯 광범위한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가 필수적이고, 인류의 남은 과제인 핵확산 방지, 핵군축, 폐기 등에도 전문 인재가 필요하다. 일본도 이와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류 문명의 급속적인 확장이 지구의 변화까지 불러오면서, 지금의 지질 연대 명을 ‘인류신세(人新新世)’라고 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다. 화석연료 고갈 이후 ‘인류신세’를 살아가야 하는 인류가 원자력 관련 지식과 기술을 포기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