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모두가 마피아라면 아무도 마피아가 아닐 수도 있다. 아무에게나 마피아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정곡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원전 마피아라는 말이 오르내릴수록 비리의 본질은 덮여버릴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 상황이 그렇다. 마피아라는 허상보다는 비리의 근원을 찾아 본질을 송두리째 뽑아야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늦지 않았다.

특정 대학 출신에 의해 주도되는 원전 마피아가 자신들의 집단 이익만을 위해 국가의 원자력 정책과 연구 방향을 주도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들이 원전 이용을 주장하는 것은 지속가능하고, 온실기체 배출이 적은 원자력 외에 현실적 차선이 당장은 없어 보인다는 소명의식에 근거한 것이지 통째로 부도덕한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붙이는 건 결국 아무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다만 원자력이 원천적으로 안전성 확보에 여느 전력 원 보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고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처분이 원전가동의 선결 조건인 만큼 꾸준한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와 같은 비도덕적이고 원칙에 위배된 행위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원전 산업계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만 이는 우리 사회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이해 당사자 간 일반적인 유착의 관행이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리와 원칙에 어긋나는 행태는 뿌리째 뽑아야 한다. 더 나아가 원자력 산업 전종사자에 대한 안전의식 강화와 안전문화 확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한다.

우리 원전 뒤안길, 40년 가까이 고인 물에서 비리와 부실이 하나씩 불거지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국민 안전을 담보로 사리사익을 챙긴 사건들이 또 터질지도 모른다. 뱃속까지 곪았을지도 모른다는 수 차례 예고와 경고에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던 정부는 이제야 원전 비리를 ‘천인공노할 범죄’라며 정조준하고 나섰다. 그들의 먹이사슬을 끊겠다며 퇴직자 재취업 제한, 외부 전문가 영입, 징벌적 손해배상 등의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이런 미봉책으로 원전 비리를 도려낼 수 있을까.

돌아보건대 비리는 업계와 학계, 정계에서 설계, 건설, 운영, 감독 등을 움켜쥐는 그들만의 울타리에서 자라오진 않았을까. 혹여라도 자만과 과신, 독점의 폐쇄성으로 스스로 치유할 능력마저 잃어버린 건 아닐까. 아무리 조직과 제도를 뜯어 고쳐도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게 원전 비리 척결의 요체다.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사건이 터지면서 환경단체는 물론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 등도 연일 한 목소리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국정조사와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서와 논평도 이어지고 있다. 원전이 소재한 5개 자치단체 시·군의회도 지난 10일 대정부 건의서를 채택하고 원전 비리 전면 재조사를 요구했다.

전력수급경보가 벌써 몇 차례 발령되며 국민 안전과 맞바꾼 원전 비리 때문에 서민들만 폭염 속에 고통 받게 된 건 아닐까. 가히 우리 원전은 비리의 온상인가, 전력대란 경고와 함께 하루하루 살얼음 위를 걷는 느낌이다. 신고리, 신월성 제어동선 외에 추가위조 건은 없을까. 한편에서는 원전비리의 끝이 어디일지 모른다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판이다.

과연 운영자도 규제자도 암처럼 번진 비리를 모르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무능한 거고, 알았다면 이들은 제 식구 감싸고 돌기다. 검증서가 위조된 불량부품은 한국원전을 다시 한 번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자정결의와 인적쇄신으로 비리 사슬을 끊겠다고 공언해 온 운영자의 구태의연에 국민 불신만 더해가는 건 아닐까. 더욱이 수출원전인 신형경수로에서도 비리가 나왔다면 우리 원전 수출 전선에 빨간 등이 여럿 켜진 거나 마찬가지다.

원전은 무엇보다 안전이 생명인데도 불구하고, 왜 있을 수도 없는, 있어서도 안 될 비리가 되풀이되는 걸까. 현 정부가 원전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가동중단을 일으킨 부품위조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기로 했다는데, 이를 계기로, 뿌리 깊은 비리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지난달 원전 3기를 발목 잡은 비리의 검은 사슬이 드러나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전부품의 검증과 승인이 한 지붕 밑에서 이루어지는 형국이다. 원전 운영, 설계, 부품 감리 업체 출신이 하청업체나 공공기관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부품 검증업체 자격인증, 부품성능 시험검증, 시험승인, 최종납품으로 이어지는 고리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험성적 위조라는 합작품을 만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끈끈한 먹이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원전을 짓는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기술회사가 원전을 설계하고 부품을 발주한다. 제조업체는 부품을 만들어 검증업체에 성능시험을 의뢰한다. 검증업체는 해당부품이 사고 시 극한상황에서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한다.

제조업체는 검증업체의 시험결과를 기술회사에 제출한다. 기술회사가 이를 승인해야 제조업체는 운영사에 납품할 수 있다. 독자적인 검증능력은 민간업체보다 월등한 장비와 인력을 갖춘 기계연구원, 산업기술시험원 등 공공기관이 훨씬 뛰어나다. 그런데도 원전부품 검증은 주로 민간업체가 맡아왔다. 제조사가 누군가의 눈치를 봤거나 압력을 받았던 건 아닐까. 공기업인 한수원이 23기 원전 운영을 독점하는 데 비해 미국은 104기의 원전을 26개 민영회사가 운영한다. 무한경쟁을 하다 보니 상호견제 능력을 갖추고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원전 사태의 추리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착잡한 심정이다. 특정 회사 출신들이 원전 납품비리를 주도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경악하고 있다. 승인 권한을 무기로 부품 제조업체에 대한 검증을 자신의 선배들이 대주주로 있는 곳에 맡기도록 압력을 행사했다고 제조업체 관계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일과성 처방이 아닌 40년 가까이 원전의 비리 사슬과 난맥상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술적인 전문성을 무시하고 혹여라도 마녀사냥이나 표적수사가 되어선 안 된다. 전방위적 비리색출과 재발방지를 위한 정책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괜히 전문기술까지 들춰서 해답도 없는 주장에 휘둘리고 실적에 치우친 수사는 애꿎은 희생양을 불러올 테니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결국 기술자들의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수반되어야겠다. 꼬리만 자르면 언젠가 다시 자란다. 이번 기회에 머리와 몸통도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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