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하나로 냉중성자 연구시설 구축 경험, 정부외교 지원도 한몫
엔지니어링 全과정 국내기술 이뤄져…현장작업자만 현지조달

네덜란드가 국제 경쟁입찰로 발주한 ‘델프트 공대 연구로 출력증강 및 냉중성자 설비 구축사업(일명 OYSTER 프로젝트)’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건설ㆍ현대엔지니어링ㆍ한국원자력연구원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계약금액은 약 1900만유로, 한화로 약 260억원이며 KAERI 컨소시엄은 곧바로 연구로 설계 및 구축 사업에 착수해 오는 2017년 말까지 작업을 완료하게 된다.

김종경(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이번 수주는 유럽시장에서 글로벌 원자력기업을 제쳤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원자력기술의 우수성과 수출경쟁력을 국제무대에서 다시 한 번 인정받은 계기”라며 “아시아권에 머물렀던 원전 수출이 이제 유럽 시장을 향해 가는 중요한 시발점에 서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이 사상 처음으로 유럽에 수출되는 쾌거를 이뤘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원자력 진흥종합계획, 연구개발 5개년 개획 등 국가 주도로 원전 기술 자립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현재 총 23기 원전이 가동 중이며 총 5기 원전이 건설 중이다.

또 기술자립을 바탕으로 ▲하나로(30MWt) 자력설계ㆍ건조ㆍ운영(1995년) ▲UAE 상용원전(1400MWt) 수출(2009년) ▲요르단연구로 시스템(5MWt) 일괄수출 달성(2009년) ▲수출용 신형 연구로(20MWt급) 구축 착수 (2012년∼)를 비롯해 ▲태국 연구용 원자로 개선사업(2009년) ▲말레이시아 연구용 원자로 디지털 시스템 구축 사업추진(2012년) 등 꾸준히 기술확보 및 수출을 진행하며 ‘원전 기술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수출 대상국은 중동·동남아 등에 한정돼 있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번 수주는 세계 최고 성능의 연구로가 존재하는 유럽지역에 국산 연구로 기술 수출에 성공해 국내 원자력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증명했다.

-수주를 성공으로 이끈 주요한 요인은 무엇인지.
“2003년부터 2010년에 걸쳐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HANARO)에 이번 사업 수행을 통해 구축될 동일한 냉중성자 연구시설(CNRF, Cold Neutron Research Facility)을 설계부터 정상운전까지 자력으로 완성한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특히 OYSTER(델프트 공대 연구로 출력증강 및 냉중성자 설비 구축사업) 경우와 같이 가동 중인 원자로라는 고방사선 환경에서 성공적으로 냉중성자 설비를 설치했다는 것이 발주자에게 좋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의 우수성과 컨소시엄 구성사 및 유관기관 간의 긴밀한 팀워크가 성공 요인이다. 이번 사업수주를 위해 구성된 컨소시엄 구성사들은 하나로 냉중성자 연구시설 구축 시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특히 지난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네덜란드 총리, 국왕을 만난 자리에서 연구로 등 원자력 기술 분야에 대한 지속적 협력과 관심을 적극 표명하는 등 정부 차원의 외교ㆍ정책적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이번 연구형 원자로 사업수주는 유럽지역에 국산 연구로 기술에 대한 첫 수출성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09년 수주에 성공한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 건설 사업은 대한민국의 사상 첫 원자력 시스템 일괄 수출로 기록되는 등 연구로 분야 기술력을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아 왔다. 우리나라는 요르단 연구로 수주 뿐 아니라 2009년 그리스 연구로 GRR-1(5MW) 1차 냉각계통 개선 자문사업, 태국 TRR-1(2MW) 계측제어계통 교체 자문사업, 2012년 말레이시아 RTP 계측제어계통 개선사업 등을 수행해오며 기술력을 인정받아 왔지만 이번 사업수주는 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 우선 유럽 지역은 세계 최고 성능의 연구로인 프랑스 ILL, 독일 FRM-2 등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연구로 분야 기술력에서도 최고를 자부하지만 이번 AREVA(프랑스), NUKEM(독일)-NIEKET(러시아) 컨소시엄 등 쟁쟁한 유럽 원자력 기업이 참여한 입찰에서 대한민국이 당당히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서 연구로 시장 공략 무대를 유럽까지 확장하게 됐다. 또 네덜란드는 현재 운영 중인 연구로(HFR)의 노후화로 인해 신규 연구로 건설 프로젝트인 PALLAS 사업을 재추진(2007년 국제입찰 진행 후 무효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이번 사업 수행의 성공 여부에 따라 해당 사업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전 세계 246기의 연구로 중 60%는 40년 이상 경과됐고(2014년 1월 IAEA 통계), 향후 20년 내 신규 및 기존 연구로 대체수요는 30~50기로 추정(사우디, 남아공, 네덜란드, 베트남, 아제르바이잔 등 40여개 국가에서 발생 전망)되는 등 연구로 세계 시장전망의 유망성을 볼 때 이번 사업수주를 통해 제고된 국가 원자력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향후 세계 연구로 시장 선점 뿐 아니라 상용원전 수출 등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연구로의 경우, 연구로 시스템 신규 건설 수요 외에 노후설비 개선을 위한 기기?설비 교체, 핵연료 공급 등 다양한 파생수요도 발생한다.”

-그럼 원자력 연구로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우리나라는 하나로 자력 설계ㆍ건조ㆍ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 12월 1억3000만 달러에 요르단 연구로 시스템 일괄수출을 달성했고, 수출용 신형 연구로 구축, 네덜란드 연구로 개선사업 수주 뿐 아니라 러시아ㆍ리비아ㆍ말레이시아 등 총 10여개 국에 30여개의 연구로 기술을 수출하며 풍부한 경험을 확보했다. 기존 사업들을 통해 연구로 핵심계통 설계 및 건설 기술을 입증했으며 23기의 상용원전 건설경험을 통해 원전 기기제작사들의 경우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냉중성자 연구시설은 무엇이며 기술 국산화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원자력연구원은 미래부 원자력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03년 7월부터 7년여에 걸쳐 396억 원을 투입해 냉중성자 연구시설 구축을 완료하고, 2011년 본격 가동을 시작해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은 첨단 기술력이 요구되는 냉중성자원(냉중성자를 발생시키는 근원으로 하나로에서 발생한 열중성자를 액체수소와 같은 온도로 냉각시키는 장치)과 시설 계통, 중성자 유도관(냉중성자를 실험장치까지 보내는 설비로 내부는 진공상태)을 자체 개발한 데 이어 냉중성자 산란장치(중성자가 물질내의 원자핵과 반응하여 나타내는 산란, 회절 특성을 이용해 재료의 결정구조, 결함, 미세구조 등을 분석하는 장치)도 자체적으로 개발·설치하고, 성능 검증과 안전운영 체계 확보를 완료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냉중성자 연구시설을 가동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 미국, 독일, 호주, 일본, 러시아, 헝가리 등 7개국으로 원자력연구원의 냉중성자 연구시설은 품질 면에서 프랑스, 미국 등에 이어 세계 3위권의 우수한 성능을 확인했다. 연구로에서 생산되는 열중성자를 영하 250℃의 액체수소로 된 감속재에 통과시켜 차갑게 만든 냉중성자(Cold Neutron)는 4~20 옹스트롬(Å)의 파장을 갖고 있어 기본적으로 1~100 나노미터(nm) 영역의 물질 구조를 연구하는데 주요 수단이 되며 X-선이나 레이저와 달리 극히 낮은 밀리전자볼트(meV)의 에너지를 가지기 때문에 살아있는 세포 생체물질을 파괴하지 않고 볼 수 있어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개발에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냉중성자는 일종의 빔(Beam) 형태로 X선보다 투과 성능이 우수하기 때문에 기존에 국내에서는 어려웠던 나노 단위의 연구를 비롯해 살아있는 원자, 분자 및 바이오 물질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생체 재료 내에서 약물이 전달되는 물질 구조를 분석하는 연구에 활용될 수 있어 신약개발 등에 획기적인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극저온 헬륨냉동기 등 일부 완성품 기기를 제외하고는 설계, 제작, 설치, 시운전 등 엔지니어링 전 과정을 국내기술로 가능하다. 다만 핵심 기술인력을 제외한 현장작업자의 경우는 현지 조달을 생각하고 있다.”

-최우선협상자로 선정됐는데 이것이 곧 입찰 수주를 의미하는 것인가. 또 계약까지 남은 절차는.
“최우선 협상 대상자(the most preferred bidder) 는 3개 입찰 참여기관 중에서 종합적인 평가에서 1위를 했다는 의미이며계약 협상 과정 중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최종 낙찰자를 의미한다. 입찰 전 과정을 통해 델프트 공대 측과 연구용 원자로 성능 개선 및 냉중성자 실험시설 구축 계획 등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해온 만큼 이변이 없는 한 최종 계약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계약까지 남은 절차는 당초 정해진 일정대로 상세 공급범위, 수행 체계 등 사업 수행을 위한 제반 사항을 협의하는 과정을 거친 뒤 이달 중으로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계약 체결 후 오는 2017년까지 냉중성자 실험시설 구축을 완료할 계획이다.”

-수주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아울러 향후 연구용 원자로 세계 시장을 지속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유럽의 원자력 프로젝트 수행 경험없이 유럽의 원자력 분야에 진출하고자 시도한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특히 원자력분야에 있어 유럽지역은 미국의 기술기준 대비 보다 엄격하고 차별화된 설계기준과 요건의 준수를 요구하기 때문에 유럽의 설계기준을 파악하며 기술제안서를 준비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또 국내 엔지니어링 및 건설사들 역시 유럽에서 원자력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설계요건 파악 및 가격산정 등에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국내 원자력발전의 모태가 미국인 관계로 국내 원자력분야 설계·제작업체들은 대부분 미국의 설계기준에 익숙하며 그간 우리나라가 수주한 해외 원자력프로젝트 역시 미국의 설계요건에 따라 수행되고 있다. 향후 유럽의 연구용 원자로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설계기준이나 기술기준을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OYSTER사업의 수행을 통해 앞서 언급한 우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유럽 원자력분야의 사업수행 경험을 쌓아 향후 유럽을 포함한 세계 원자력 시장진출의 튼튼한 교두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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