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룡 한국전력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교수

“설계수명이 종료된 원전의 폐쇄는 당연하다”는 인식이 최근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이미 설계수명이 지난 고리 1호기는 안전성 확보 여부와는 상관없이 더 이상 계속운전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보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국내외적으로 원전이 큰 사고와 각종 비리로 얼룩져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음은 이미 잘 느끼고 있고, 평생을 원전 기술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국민들께 죄송스럽고 그래서 조용히 자숙하고 있다.

그러나 “고리1호기 폐쇄 예정” 이라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전문가의 양심을 걸고 꼭 한 말씀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고리 1호기는 1978년에 가동을 시작하여 지난 2007년에 설계수명 30년이 지났으나, 10년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2017년까지 운전이 허용된 발전소이다. 설계수명이 지났는데 어떻게 계속 운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설계수명이란 기계나 부품의 설계 시에 고려하는 제품의 사용기간을 나타내는 것이다. 원전의 설계수명이 30년이라 함은 적어도 30년 운전을 상정하고 설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운전할 수 있는 기간은 설계수명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그럼 안전성은? 안전성은 당연히 설계수명기간 뿐만 아니라 운전기간 내내 안전해야 한다. 전혀 다른 개념이다.

자동차나 집안의 가전제품의 설계수명이 몇 년인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마 잘 모를 것이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폐기해야 하는 것은 설계수명이 다했을 때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설계수명 만료일에 아직 멀쩡한 제품을 버리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설계수명이 30년이라고 30년 밖에 쓸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설계수명을 이유로 고리1호기를 폐쇄한다면 이는 세계적인 첫 사례가 될 것이다. 이는 사람으로 치면 고려장에 해당한다.

인간에게 설계수명이란 게 있을까. 유전공학에서 말하는 DNA 지도에 설계수명이 미리 설계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누가 알겠는가. 다만 밖으로 드러나는 수명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며, 평균수명은 의술과 기술의 발전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신체나이는 아직도 젊은데 일정나이가 지났다고 이제 그만 살고 죽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고려장이지 않은가.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원전 설계수명은 40년이나 이미 70% 이상의 원전이 20년 연장운전 허가를 받은 상태이고, 20%는 현재 심사 중이며 나머지 10%는 연장운전 의향서를 제출한 상태이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관·산·학·연이 공동으로 ‘60년 이후(Beyond 60)’ 라는 프로젝트를 출범시켜 80년 운전을 목표로 열심히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뿐만이 아니라, 원전을 가진 나라는 대부분이 원전의 안전성과 성능이 보장되는 한 설계수명과는 무관하게 계속운전을 허가하고 있다.

고리 1호기의 폐쇄에 대해서는 원전의 안전성을 충분히 검토하여 이를 토대로 결정해야 한다. 안전성이 보장된다면 계속운전을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일부에서는 폐쇄 및 해체를 통하여 해체기술을 개발하여 언젠가 다가올 원전해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전의 운전가능 기간과 설계수명은 엄연히 다르다. 안전성이나 설비의 문제가 아닌 설계수명을 이유로 고리1호기를 폐쇄한다면 향후 우리나라 모든 원전은 설계수명 종료에 따라 모두 정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세워진다. 국가 에너지 수급 안정성을 심각히 고민하여 결정할 문제이다.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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