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한국형 고준위방폐물 처분기술의 산실 'KURT를 가다'
원자력연구원 내 산중턱 말굽형태 터널…방사성물질 전혀 쓰지않고 '소금물'로 실험

사용후핵연료에서 나오는 높은 열과 방사선으로부터 인간과 환경이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영구처분(Final Disposal)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그야말로 영구처분은 사용후핵연료를 인간의 관리 없이 영구적으로 인간생활권에서 격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경제성과 안전성 등 종합적인 관점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의 영구처분 방식으로 심층처분이 가장 적절하다고 권고하고 있으며, 미국, 스웨덴, 스위스, 일본, 핀란드 등 원전 선진국들은 이미 수 십년 전부터 심층처분 방식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건설을 위한 연구를 추진 중이다.

특히 이웃나라 일본은 1970년대부터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연구를 수행하고 제도 등을 마련했으며, 이 과정에서 실험실 연구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규모의 지하연구시설(Underground Research Laboratory, URL)을 건설했다. 현재 홋카이도 지하시험시설(Horonobe Underground Research Center)에서 지하 500m 깊이의 퇴적암을 대상으로 연구와 기후현의 도키 지역 지하시험시설(Mizunami Underground Research Laboratory)에서 지하 1000m 깊이의 화성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지하연구시설(URL)은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하기 전에 땅 속의 환경을 조사, 시험 및 검증하고 안전한 처분시설을 설계하기 위해 설치하는 연구시설이다.

대개는 영구처분시설이 들어서는 곳에 건설하며, 동일한 부지의 지질학적 특성을 반영해 연구하지만 그 목적에 따라 연구용과 인허가용으로 구분한다. 연구용(Generic URL)은 기반암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 안전성평가를 위한 모델 시험 및 검증, 처분개념 연구 및 실증 시험 등이 주목적이며, 인허가용(Site specific URL)은 향후 동 URL 부지에 처분을 고려해 해당 부지의 부지특성자료 수집이 주목적이다. 영구처분을 결정한 주요 국가는 지하연구시설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다.

URL의 중요성은 첫째 자국의 심부환경에 위치해 심층처분시스템(천층처분방식)의 상용화를 위한 근거로써 성능 및 안전성에 대한 현장 실증 및 시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방사성폐기물처분사업은 국민수용성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심층처분안전성에 대한 대국민 신뢰도 향상에 기여할 수 있으며, 최종 처분을 위한 처분장 부지선정, 건설 및 운영 인?허가 등의 전체 프로그램에서 조기 확보가 필수이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이달 19일까지 입법예고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절차에 관한 법률」제정(안)에서 관리시설로 인허가용 지하연구시설(URL),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을 동일 부지에 확보하는 방안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은 별도부지에 확보하기로 했다.

고준위 정책과 관련해 원전 선진국에 비해 다소 늦은 첫 발을 내딛었지만 우리나라도 1997년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중심으로 고준위폐기물 처분에 관한 연구를 시작됐고 2006년 11월 연구원 내에 지하처분연구시설(KURT, KAERI Underground Research Tunnel)을 이용해 본격적인 현장실험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대전시 대덕구에 자리한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지 뒤쪽 산 중턱에 위치한 KURT는 산 중턱에 폭 6m, 높이 6m의 말굽 모양의 단면으로 굴착된 총연장 543m의 T자형 지하 터널로, 180m m 길이의 진입 터널과 고준위폐기물을 지하 깊은 곳에 안전하게 묻는 영구처분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총 6곳의 연구 모듈로 이뤄져 있다.
김경수 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성폐기물처분연구부장은 “KURT는 국가정책방향과 국내외 기술개발 추세, 국민적 공감대 하에 앞으로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이 건설될 때를 대비해 한국형 처분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된 국내 유일의 지하 처분 연구시설로, 지하 처분 시스템의 기술적 타당성과 적합성을 실험적으로 검증하는 순수 기초 연구시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부장은 “연구원은 KURT를 이용해 고준위 폐기물의 방사능과 독성이 인간과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안전성이 검증된 처분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비롯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국가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제공, 심부 지하 환경의 특성 규명과 이해 증진을 통한 지하 공간 개발과 자연 환경 보존 등 관련 학문 분야의 수준을 높이는데도 이바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하에서 방사성 물질을 써서 실험을 진행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부장은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김 부장은 “KURT는 시설 전역에서 어떠한 방사성 물질도 사용할 수 없는 ‘일반 시설’로 분류돼 있으며, 현행법상 고준위 폐기물은 물론 어떤 방사성 물질도 KURT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면서 “이에 KURT에서 수행하는 모든 실험에 방사성 물질이 아닌 일반 염료와 소금물 등을 사용해 환경오염의 우려도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KURT에는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기 위한 장비들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는데, 지름 90㎝의 구리 용기를 4m 깊이로 묻어 놨고 섭씨 100~150도의 열을 내는 전기 히터를 사용후핵연료 대신 삽입해 주변에 있는 150개의 정밀한 센서를 통해 땅속을 흐르는 지하수의 압력, 온도 변화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심층처분은 사용후핵연료를 부식되지 않고 충격에도 강한 금속제 용기에 넣어 밀봉한 후 견고한 암반에 건설된 동굴형태의 처분장에 넣어 불투수성 완충재와 밀봉재 및 뒷채움재로 빈 공간을 메워 생태계로부터 완전 격리시키는 방식이다.

최근 KURT에는 고준위폐기물이 처분용기와 완충재, 뒷채움재 등의 대구모 공학적 방벽과 주위 암반, 수백m 깊이의 암반층 등의 처분기술과 설치방법에 대한 개발 및 검증을 위한 ‘공학규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스템의 성능 검증시험’에 돌입했으며, 이 시험을 통해 국내산 벤토나이트 완충재의 열-수리-역학(THM) 복합거동 특성을 규명할 계획이다.

김경수 부장은 “일반부지 조건에서의 공학적 방벽 처분시스템의 구성요소 거동 특성과 완충재와 암반에서의 열-수리-역학 복합거동 해석에 관한 Safety case를 구축해 향후 우리나라 고유의 실제 규모의 처분시스템 개발에 대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저작권자 © 한국원자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